제133화 : 도남(圖南)
아직도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많이 두어지고 있는 ‘장기’라는 놀이는 진나라가 쇠퇴해가는 틈을 타 초나라를 세운 항우와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기나긴 전쟁을 빗대어 만들어진 놀이라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또한 그네들의 전쟁사를 그린 초한지라는 소설도 삼국지 못지않게 유명한 소설이다.
그 시절에 처음에는 초나라의 무장으로 항우를 섬기다가 중용되지 않자 나중 한나라 유방의 수하가 되어 책사 장량과 더불어 한제국(漢帝國)을 완성시킨 한신(韓信)은 왕으로 봉해졌다가 후일 권력에서 밀려나자 작금의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도 자주 사용되고 있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말로 유방을 원망하며 반역을 꾀하다가 결국 죽임을 당했는데 그가 젊은 시절에 시정(市井) 무뢰배의 가랑이 밑을 태연히 기어나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면 후일 왕이 된 한신은 자기를 모욕한 그 사람을 어떻게 대했을까?
한신은 그 사람을 찾아 중급의 관직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친구는 장사이다. 나를 욕보일 때에 내 어찌 이 친구를 죽일 수 없었겠는가? 죽인다 하더라도 이름날 것 없었기 때문에 그 때 참고서 오늘의 일을 성취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대부분의 학자들은 한신의 대인배스러움이나 모욕을 참고서도 끝내 공업을 이룬 뒤의 영광을 보여주는 일화로 해석하고 있으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 일은 한신의 고단수적인 복수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즉 ‘나를 욕보일 때’를 언급하면서 ‘그 때 참았기에 오늘날의 일을 성취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 자체가 ‘나는 그때의 치욕을 절대 잊지 않고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란다.
어느 해석이 맞는지는 각자가 판단하기로 하고 내가 여기에서 말하고자 함은 인간은 누구나 꿈이 있고 생각하는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생활의 환경과 본인의 노력여하에 따라 꿈과 목표는 바뀌고 성취도도 다르겠지만.
나의 어릴 적 꿈은 교사가 되는 것이었고 히틀러는 목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빌게이츠는 워싱턴주 의회의 급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나.
그럼 한신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불행히도 한신이 무엇을 어떻게 하고자 했다고 자세히 전해주는 문헌은 없다. 다만 막연히 ‘원대한 꿈’을 가지고 때를 기다리다가 혹정에 시달리던 항우가 의병을 일으키자 그를 찾아가 수하가 되었다고 소설은 말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의 행적에 의하여 조심히 그의 뜻을 유추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이쯤에서 생각나는 것이 「옛날 옛날에 황해도에 구월산 줄기가 바다를 향해 쭉 뻗다가, 뚝 끊어진 곳에 '장산곶' 이라는 마을이 있었다.」라고 시작되는 백기완 선생님의 ‘장산곶매’이다.
이 장산곶 숲속에 날짐승 중 으뜸이라 할 수 있는 매가 살았는데 그 중 으뜸인 장수매를 일컬어 ‘장산곶 매’라 하였단다.
이놈은 주변의 약한 동물은 괴롭히지 않고 일 년에 딱 두 번 대륙으로 사냥을 나가는데 떠나기 전날 밤 부리질을 하며 자기 둥지를 부수어 버린다.
장산곶매가 한 번 사냥을 나선다는 건 생명을 건 혼신의 싸움이었으므로 그 부리질은 마지막 입질 연습이요, 또한 그것을 통해 자신의 마지막 안식처까지 부수어 내며 자신의 정신적 상황을 점검했던 것이다.
이 장산곶매가 무사히 부리질을 끝내고 사냥을 떠나면 이 마을에는 행운이 찾아든다고 했다.
그래서 장산곶 사람들은 매가 부리질을 딱-딱-- 시작하면 마음을 조이다가
드디어 사냥을 떠나면 바로 그 순간 봉화를 올리고 춤을 추며 기뻐하였던 것이다.
-중략-
적은 (민중의) 힘으로 독수리를 물리치고 구렁이를 물리치고 나서 하늘로 힘차게 날아오를 때 막 동편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며 마을에는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였다는.
이러한 선생님의 뜻이야말로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도남’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뜻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도남(圖南) - 붕새가 날개를 펴고 남명(南冥 : 남쪽에 있다고 하는 큰 바다) 으로 날아가려고 한다는 뜻으로, 웅대한 일을 계획하고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도남의 날개 - 남쪽을 향하여 벌리려는 붕새의 날개라는 뜻으로, 어느 곳에 가서 큰 사업을 하여 보겠다는 계획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비가 오다가 그치다를 반복한다.
오늘 밤에도 중부지방에는 200mm가 내린다는 예보다.
하늘이 구멍이라도 뚫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