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시작하면서>
초등학교 시절부터 남달리 우리말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조정래 선생님의 ‘태백산맥’과 최명희 님의 ‘혼불’을 만나고부터 더욱더 우리말에 매료되었다.
그리하여 ‘전라도 사투리 모음’을 필두로 ‘재미있는 속담들’, ‘순우리말 모음’에 이어 ‘알고 느끼는 사자성어’까지 모으고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아무래도 이런 작업은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다.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여건(나이나 건강 등등)이 허락되지 않을 그 언젠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우리의 글인 ‘한글’은 겨레의 위대한 스승이신 세종대왕께서 손수 창조하신(잠깐 : 세간에는 세종대왕의 명에 의하여 집현전 학자들이 만든 것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음. 집현전 학자들은 한문이 있는데 굳이 훈민정음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이 없다고 세종에게 강하게 반대하여 어쩔 수 없이 세종대왕 혼자서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임) ‘훈민정음’을 주시경 선생님께서 1913년부터 ‘한글’로 명명한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자다.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으로 1997년에 유네스코에 최초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는 사실은 한글이 그만큼 우수하다는 것을 전 세계가 인정한 단적인 예이며, 특히 컴퓨터가 일상화된 작금에서의 한글의 가치는 더 따져서 무엇 하랴 할 정도로 보배로운 우리의 말이자 글인 것이다. 또한 인도네시아의 어느 소수민족집단이 ‘한글’을 공용어로 지정하였다는 낭보(2009년 8월)는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무한한 자긍심을 느끼게 한다.
그럼 이토록 세계적으로 인정된 아름답고 우수한 우리의 ‘한글’을 발전시켜 나가는 길은 무엇일까?
우리의 말이 여러 가지의 형상과 뜻을 나타내는 더 좋은 말들로 가꾸어지기 위해서는 글을 쓰는 사람들, 즉 소설가, 시인, 수필가 나아가 국어학자들의 창조가 있어야 하고 또한 창조된 그 단어들이 많이 사용되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단어 중의 하나인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라고 국어사전에 설명되어 있다.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는 모르지만 추억의 저 편에 있는 섬 머스마였던 소년시절의 나는 남해의 그 반짝이는 윤슬을 바라보면서 육지를 향한 미래를 꿈꾸곤 하였다.
이렇듯 선각자들에 의해 어려운 산고를 거쳐 탄생한 아름다운 우리말들이 우리들의 무관심에 의해 사장되어 버린다고 생각하면 우리들도 우리말을 아름답게 가꾸지 못한 죄인의 범주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반문해 보면서 자주 쓰이지는 않지만 잊혀서는 안 될 단어를 중심으로 그 단어에 담겨 있는 의미들을 모아 이야기 형식으로 글을 써 보고자 한다.
본연의 직무 때문에 쉼 없이 이어가지는 못하겠지만 여건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이어가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꼭 지키고 싶다.
2009년 초가을의 문턱에 서서
김 철 용
제1화 : 뚜껑밥
예전에는 쌀밥에 대응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상징이었던 보리밥이 이제 어엿한 현대인의 웰빙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 내가 거주하고 있는 광주광역시의 경우 지산유원지 부근의 보리밥집과 지원동 무등산 등산로에 있는 보리밥집들이 유명한데 요즘에는 시내에서도 심심찮게 보리밥집을 볼 수 있다.
나는 지산유원지의 보리밥집인 ‘할머니집’을 주로 이용하는데 그 집은 갈 때마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손님이 많다.
등산으로 적당히 땀을 흘리고 허기져 배가 출출한데도 기다려야 하는 고통을 감내하는 이유는 그 집의 밥맛이 내게는 최고이기 때문이다.
장작불로 갓 지은 보리밥에 참기름을 듬뿍 치고 고추장과 갖은 산나물을 넣고 비벼서 비빔밥을 만들어 열무의 잎이나 배추 잎에 싸서(젓갈도 조금 넣어야 제 맛?) 크게 한입 먹는 그 맛을 먹어보지 아니한 사람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곁들여 마시는 동동주의 맛도 30년산 양주가 부럽지 아니하고!
50대인 내가 유년시절부터(그 훨씬 이전부터이리라)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시절까지 우리 집의 밭은 우리 고향 거금도의 밭들이 거의 그러했듯이 보리․마늘과 고구마의 이모작(二毛作)으로 경작되었다. 곧, 가을에는 보리와 마늘을 심어 봄에 수확하고 난 뒤 다시 거기에다 고구마를 심는 이모작이다. 이렇게 한 해에 두 가지 작물을 번갈아 심는 것을 뜻하는 우리의 고유어가 ‘그루갈이’이다. 그루갈이를 하여 생산된 보리와 고구마는 우리의 주식이 될 수밖에 없었으나 그것마저 없어서 못 먹었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먼 훗날에야 알았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엄마는 무척이나 식탐이 많았던 동생의 밥그릇에 아니 우리의 밥그릇 하나에 바닥에다 작은 접시를 엎어 놓고 밥을 담아서 내오시곤 하셨다.
그러면 동생은 속에 작은 접시가 든 밥그릇이 가장 고봉인지라 그 밥그릇을 자기가 먼저 챙겨 먹었던 것이다.(우리 식구들은 그 밥그릇이 동생의 차지가 될 것임을 이미 다 알고 있다)
허겁지겁 먹다 보면 어느덧 밥은 다 없어지고 속에 빈 접시가 엎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 동생 녀석은 울음보를 터뜨리고.......
그러면 곁에서 같이 지켜보시던 할머니께서는 웃으시면서 당신의 밥을 동생에게 덜어 주시고.
그렇게 우리의 밥은 순도 90% 정도의 보리밥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밥은 위에는 조금 쌀이었으니 우리는 어떻게 할머니의 밥을 조금이나마 더 얻어먹을 수 있을까 신경전이었다.
별미를 즐기고자 꽁보리밥집을 찾아가고, 전기밥솥이 나오고, 공기라는 밥그릇이 등장하고 이제는 그 작은 공기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르는 세상이 되었으니 이 글을 읽으신 사람 중에 몇 사람이나 그 시절의 그러한 애환을 알까?
순 우리말인 고유어를 찾아 헤매던 중에 ‘뚜껑밥'이라는 아주 귀한 단어를 발견하고 기쁘고도 아련한 마음에 이 글을 쓴다.
내가 참고로 하고 있는 국어대사전에는 ‘뚜껑밥'이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① 사발 바닥에다 작은 그릇이나 접시를 엎어 놓고 담은 밥.
② 밑에는 잡곡밥을 담고 위만 쌀밥을 담은 밥.
③ 잘 먹이는 듯이 겉치레로 잘 차린 음식.
또한 할머니의 밥에 조금 넣은 쌀을 ‘웁쌀’이라고 한다.
앞으로는 이러한 ‘뚜껑밥'이나 ‘웁쌀’같은 단어들이 잘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 나 같은 정신없는 놈들이나 이런 단어를 발견하고 희열을 느끼지 젊은 사람들이야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고 그런 단어가 있었구나! 할 정도의 작은 의미에 불과할 것이므로.
그루갈이 - 한 해에 같은 땅에서 두 번 농사짓는 일. 또는 그렇게 지은 농사.
웁쌀 : 솥 밑에 잡곡을 깔고 그 위에 조금 얹어 안치는 쌀.
한입 : ① 입에 음식물 따위가 가득 찬 상태.(입에 밥이 ~이다.)
② (주로 ‘한입에’ 꼴로 쓰여) 한 번 입을 벌린 상태.
③ 똑같은 말을 하는 여러 사람의 입.
'우리말을 찾아서'라는 글을 쓰기 시작한지가 벌써 2년이 넘었나 보다.
그 동안 몇 번의 교정을 보고 보충한 글을 다시 연재하기로 하였다.
독자들의 눈높이에는 못 미치겠지만 어쩌랴! 나의 글 솜씨가 이뿐인 걸.
또한 이 글들은
우리말 겨루기에 출연한 사람들의 모임체인 '우출모'라는 카페에도
같이 연재되고 있음을 밝힌다.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