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 화 : 먼가래와 묵뫼
언젠가 지리산 계곡에 있는 달궁마을에서 시작하여 반야봉을 오를 때.
새벽부터 오르는 산의 정상 부근에 거의 다 와서 마지막 호흡을 조절하고 다리쉼을 한 곳은 누군가가 돌본 흔적도 보이지 않고 곳곳이 패인 오래된 무덤이었다.
우리나라의 산은 무덤이 많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그렇게 높은 지대에
있는 무덤은 나의 상식으로는 조금 의아하였다.
누가 이렇게 높은 곳에 무덤을 썼을까?
후손들은 성묘를 하는 걸까?
혹시 빨치산의 무덤? 그것도 아니면 빨치산에게 희생된 사람의?
또 그것도 아니면 산을 타다가 사고를 당한 산악인? 심마니?
갖가지 추측을 해보지만 무덤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그 어떤 표식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새삼스럽게 오늘 다시 한 번 그 무덤이 왜 거기에 생겼는가를 유추해 본다.
가꾸지 않아 곳곳이 패인 것으로 보아 후손들이 찾지 않는지 찾지 못하는지는 모르지만, 이 높은 곳까지는 상여를 못 메고 왔을 터!
그렇다면 정상적인 장례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시로 묻힌????
임시로 그 곳에 묻혔다면 죽은 장소도 그 부근????
왜 이 높은 곳까지 와서 죽었을까????
내가 내린 결론은 심마니 내지는 산악인인데 100년도 더 된 것 같은 무덤인 걸로 보아 심마니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러면 심마니의 무덤으로 가정하고 나머지 이야기를 계속하자.
같이 온 동료 심마니는 사고로 죽은 심마니의 시체를 들고 산을 내려 올 수가 없다. 그래서 임시로 그곳에 매장을 하고 그 사람의 가족에게 알려 준다.
소식을 들은 그 사람의 집은 남편(혹은 아버지?)을 당연히 집으로 모시고 장례를 치러야 했지만, 그럴만한 치를 여력도 없어 차일피일 미룬 것이 이제는 주인 없는 묘로 변하여 100여년의 세월을 풍상에 시달리며 피폐되어 간 것이리라. 전국에 이렇게 방치된 무덤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것들을 정비(?)할 방법은 없는가?
별스런 생각을 다 하면서 오늘의 단어를 소개한다.
이렇게 ‘객지에서 죽은 사람을 임시로 그 곳에서 묻는 일’을 ‘먼가래’라고 하며, 위 무덤과 같이 ‘오래되어 거칠게 된 무덤’을 ‘묵뫼’라고 한다. 또한 ‘오랫동안 곡식을 심지 않아 거칠어진 밭’을 ‘묵정밭’ 혹은 ‘묵밭’이라고 한다.
먼가래 - 객지에서 죽은 사람의 송장을 임시로 그 곳에 묻는 일.
묵뫼 -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 거칠게 된 무덤.
묵정밭 - 오래 내버려 두어 거칠어진 밭. ‘묵밭’이라고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