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 삭정이
자주는 아니지만 이따금씩 오르는 산은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는 곳이다’라는 명제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산을 생각하면 같이 연상되는 나무와 숲, 그리고 바위와 계곡 등등등……
예부터 이 모든 것이 글과 노래와 그림의 소재가 되었으며 격언이나 명언의 주제가 되어 왔으나 오늘 나는 이 중 나무, 그것도 소나무에 대하여 격언이나 명언과는 거리가 먼 우리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어렸을 적 우리 마을의 주 연료는 소나무로부터 공급되었다.
밥을 하는 연료는 솔잎(솔가리나무라고 함)이었으며 대사를 치를 때 가마솥의 국을 끓일 때에 때는 나무도 소나무장작이었다. 또한 군불용 땔감도 조금은 덜 마른 솔가지와 소나무장작이었는데 그 이유는 우리 쇠머리 주위에 있는 산의 수종은 소나무가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그러하였으리라.
우리가 어렸을 때는 담살이⁽¹⁾와 머슴이 없는 보통집의 우리 또래들은 학교에 가지 않은 일요일이나 다른 기념일에는 너도 나도 산으로 가서 솔가리나무를 긁어모으는 일을 하였다(이런 일을 ‘나무하러 간다.’고 했다.)
요즈음에는 연료가 기름과 전기 및 가스로 대체되어 우리들 같이 산으로 나무하러 가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산의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모두가 솔가리나무들이 푹신거릴 정도로 많이 쌓여 있다. 삭정이(금산 사투리로 ‘자장개비’라고 했다)도 사람의 손을 타지 않으니까 제멋대로 지천이고.
(실제로 내가 군 생활을 할 때 내무반에서 근무할 사무실엘 가려면 조그마한 동산을 하나 넘어야 했는데, 그 길 양옆에 쌓여 있는 솔가리나무를 보며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오메, 나무 많은 거?’ 였다.)
요즘 나는 등산을 하면서 이렇게 바라보기만 해도 탐스러운 그런 나무들을 보면서 귀향을 꿈꾼다. 정말이지 너무나 아깝지 않은가?
물론 솔잎들은 썩어서 거름이 되겠지만 그것들이 아니더라도 거름이 될 것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걱정할 것은 없다.
지금은 헐어진 공터만 남은 우리 옛 집터에다 조그마한 흙집을 지어(지붕은 빨간색으로 해야지!) 지금은 산마다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솔가리나무를 조금씩 긁어모아 단을 만들어 놓고, 삭정이와 화라지도 꺾어다가 불을 지피기 좋게 잘게 손질해 놓고, 아, 참! 그냥은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우거져 버린 우리 산에서 내 허벅지만큼 되는 소나무를 베어다가 도끼로 패서 장작도 만들어 놔야지.
(장작을 팰 때 밑에 받치는 나무토막을 ‘모탕’이라고 하며, 대장간에서 불에 달군 쇠를 두드릴 때 받침으로 쓰는 쇠판을 ‘모루’라고 한다.)
그리고 멀리서 벗이라도 찾아오는 날이면 내가 준비해 둔 솔가리 나무로 밥을 짓고 내가 준비해 둔 삭정이로 국을 끓이고 또 내가 준비해 둔 장작으로 벽난로를 피우며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고 싶지만
‘여보, 일어나서 출근해야지요.’라고 들려오는 마누라의 말소리에 나의 귀향은 또 한낱 나 혼자만의 꿈으로 끝나고 만다. (2010년 봄에)
⁽¹⁾담살이 : 의식주만 해결해 주고 새경은 주지 않은 어린 머슴.
삭정이 : 살아 있는 나무에 붙어 있는 말라 죽은 가지.
화라지 : 옆으로 길게 뻗어 나간 나뭇가지를 땔나무로 이르는 말.
모탕 - ①나무를 패거나 자를 때에 받쳐 놓는 나무토막.
②곡식이나 물건을 땅바닥에 놓거나 쌓을 때 밑에 괴는 나무토막
모루 - 대장간에서 불린 쇠를 올려놓고 두드릴 때 받침으로 쓰는 쇳덩이.
어제 보다는 덜했지만 오늘도 무척 추웠다.
이런 저런 일로 허둥대다가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끝나가고 있다.
마무리하고 퇴근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