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 민낯
요즈음 TV에 나오는 여자들을 보면 왜 그리도 하나같이 예쁜지!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팔등신이고, 피부도 그렇게나 곱고.
그 미인들의 이름을 여기에다 다 쓰려면 100명도 넘게 써야 하고, 자기 이름을 쓰지 않았다고 토라질 어떤 여자의 투기를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이름을 나열할 수는 없지만 하여튼 50년을 넘게 산 지금의 내가 봐도 한 번쯤은 안아(?)보고 싶을 정도로 예쁜 여자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런데 조금은 이상하다.
TV를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도 예쁜 여자들이 시쳇말로 쌩얼을 사진기로 찍으려고만 하면 기겁을 하고 카메라는 피하는 것이다.
또한 누구는 어디를, 누구는 몇 번을, 누구는 어디에서 등의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그것만이 아니다.
누구의 뒷모습은 누가 배역이고, 또 누구의 다리는 어느 누가 배역이고 등 등 등 등.
아니, 또 하나 있다.
얼굴은 그렇게도 예쁜 아줌마들의 손가락과 목 줄기는 왜 그리 안 예쁜지!
각설하고,
우리 엄마는 주로 언제 화장을 하셨을까?
나는 우리 엄마가 화장을 한 모습을 몇 번이나 보았을까?
3대 독자이신 아버지에게 시집오셔서 우리 5남매를 낳아 기르시느라 마음 놓고 화장을 할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겠냐마는 나의 희미한 기억으론 이따금씩 5일 만에 섰던 대흥장터에 가실 경우에 화장을 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는 우리 엄마의 화장하신 얼굴이 있으니 그것은 우리 부모님의 금혼식 때의 얼굴이다.
1920년에 태어나신 엄마는 20살이 되던 해에 동갑인 아버지와 결혼을 하시고 60년을 함께 사시다가 지난 2001년 4월에 저 세상으로 가셨는데 세상 이치가 묘한 것이 어머니의 여덟 번째 제삿날 다음 날에 아버지께서도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즉, 어머니와 아버지의 제삿날이 같은 날이 된 것이다.
우리 자식들은 부모님의 결혼 50주년이 되던 1991년에 우리 시골에서는 처음으로 금혼식을 올려 드릴 수 있었다.(‘부모님의 금혼식’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바 있기에 행사 내용은 생략함)
처음으로 시도해 본 금혼식인지라 우리들 마음대로 행사를 진행시킬 수 없어 여러 곳에서 자문도 받고 전통혼례의 방법을 숙지하여 거기에 사용되는 혼례용품을 준비하고 혼례 진행자도 섭외하는 등 준비를 철저히 하였다.
지금은 헐어져 없어진 우리 집 안마당에서 치러진 혼례의 백미는 역시 신부입장이었다. 늘그막에 민낯으로만 지내셨던 그날의 주인공인 신부도 모처럼 한 화장이 싫지만은 않으신 듯 수줍은 얼굴로 두 딸의 부축을 받으며 입장하여 전통혼례를 끝까지 재현하셨다.
아버지께서도 흥겨우셨는지 식이 끝나고 밤의 가족끼리의 여흥시간에 ‘이 세상의 모든 꽃 중 종례화가 제일 예쁘다!’시며 웃으셨다.
종례는 우리 엄마의 이름이다.
그날 행사의 전 과정을 비디오로 녹화하여 지금도 돌려보곤 하는데 그날 의 우리 엄마 얼굴이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얼굴인 것 같다.
결혼 60주년 행사도 치러드리려고 준비하고 있는 2001년 바로 그 해 초부터 몸져누우시더니 끝내 일어나시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신 우리 엄마가 오늘 따라 새삼 보고 싶다. 엄마, 사랑합니다.
민낯 - 화장을 하지 않은 여자의 얼굴.
올해로 93세가 되신 우리 엄마가 살아계신다면
우리에게 꼭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다.
"일썽 몸 성하고 남에게 정개 들을 일은 하지 말아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