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 모릿줄
지난 8월 초에 녹동에 있는 고흥수협 공판장에 들렀는데 낚을 고기는 귀하다는데도 활어는 그런대로 구경할 수 있었다.
무엇으로 잡느냐는 물음에 대부분이 주낙이라는 대답이다.
‘주낙’하면 떠오르는 단상이 있으니......!
200 ~ 300 m 정도의 줄(모릿줄이라 함)에 1m 정도의 간격으로 가짓줄을 달고 그 끝에 낚시를 달아 바다에 빠뜨려놓았다가 12시간 후 쯤에 건지면 거기엔 별의 별 고기가 다 물려 있었다.
때로는 불청객이 주인 몰래 몇 마리의 고기를 슬쩍해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 주낙이 누구네 것인 줄을 알기 때문에 그런 경우는 많지 않았다. 다만 10여 년 전 내가 지금까지도 누구네 것인 줄 모르는 남의 주낙에서 60Cm 급의 농어를 슬쩍했던 이야기는 이미 ‘쇠머리의 추억’이라는 수필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하여 오늘은 주낙을 생업으로 삼는 어촌 부부의 하루를 픽션으로 써 본다.
이른 새벽부터 부부는 바다로 나가야 한다.
어제 잡아서 물 칸에 살려놓은 놓은 고기와 어제 오후 느지막이 놓은 주낙에 물려 있어 오늘 잡을 고기를 팔아 외상으로 산 기름 값도 갚아야 하고 도회지의 학교에 다니고 있는 자식들에게 학비도 보내야 할 생각으로 마음이 괜히 바쁘다.
이번에는 ‘좀 더 많은……’ 하는 기대로 주낙을 거두어 올리지만 항상 생각보다는 많이 잡히지 않는 현실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어제 잡아 놓은 2Kg 급 능성어 한 마리가 이들의 손놀림을 가볍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서둘러야 한다.
아침 7시 반부터 시작하여 9시경에 끝나는 오전 활어 공판시간에 맞추어 녹동까지 가야 하기 때문이다.
남편이 배를 몰고 가는 동안 부인은 저금통장을 꺼내 들고 잔고를 확인해 가며 이리저리 손가락까지 동원하여 셈을 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날그날 변하는 시세를 감안해도 오늘은 목돈(?)을 받아 그 동안 미뤄왔던 외상값 정리 및 자식들 학비를 송금할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볍다.
드디어 공판장에 도착.
먼저 오늘의 시세를 눈여겨본다.
관광철인지라 멀리 도회지로 보내는 도매를 주로 하는 중매인보다는 현지에서 관광객에게 소매를 주로 하는 중매인의 단가가 더 센 것 같다.
어떡할까? 하고 생각 중인데 아는 중매인이 다가온다.
무엇? 능성어. 오케이! 이러면 이미 값은 정해진다.
2Kg 급 능성어는 오늘의 최고가로 그 중매인에게 낙찰될 것이다.
그 중매인은 입찰에 관여하지 않고, 경매사는 최곳값을 써 넣은 다른 중매인의 값보다 조금 높은 가격으로 그 중매인에게 낙찰시켜 주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일견 불법 거래 같지만 생산자는 더욱 좋은 값으로 팔고, 수협은 더욱 많은 수수료를 얻을 수 있으며, 중매인의 그 고기를 찾는 사람에게 원활하게 공급할 수 있어 모든 중매인의 묵인 하에 이용되고 있는 윈윈전략인 것이다.
위판을 마쳤으니 이제 다시 집으로 가서 오늘 다시 놓을 주낙을 손질해야 된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급한 것은 늦은 아침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 공판장 부근에는 이들을 위한 해장국집이 지천이다.
그렇다고 이들은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지 않는다.
항상 이들을 반겨 주는 단골집이 있는 것이다. 그 집 주인은 이들의 얼굴색만 보아도 오늘은 무엇을 먹을 것인지를 안다. 또한 막걸리를 마실지 소주를 마실지, 아니 오늘은 맥주를 마실 것을 것을 안다.
금산횟집, 금당횟집, 나로도횟집 등등 주로 지명으로 상호를 정한 그 해장국 집들. 나룻배가 오가는 선착장 부근에는 주로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식당이 많지만 공판장 부근은 뱃사람과 중매인들을 주로 상대하기 때문에 거의가 다 단골이 정하여져 있다.
같은 동향이라는 끈으로, 먼 친척이라는 끈으로, 동창이라는 끈으로, 또또 어떤 끈으로든지 연결되어 다들 단골이 정하여진 것이다.
늦은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통통배를 몰고 집으로 향하는 이들 부부의 머릿 속엔 이따가 건질 주낙에 물려 있을 농어가 제법 크다.
(2010년 9월 중순 추석을 앞두고)
주낙 - 물고기를 잡는 기구의 하나. 긴 낚싯줄에 여러 개의 낚시를 달아 물속에 늘어뜨려 고기를 잡는다.
모릿줄 - 주낙에서 낚시를 매단 가짓줄을 연결하는 긴 줄.
내일 금산에서 먹을 회(양식 광어)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군침이 돈다.
같이 먹고 싶은 사람 있으시면 연락하셔요!
(010-4604-4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