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 밀뵙기
이제 정확하게 3일 후면 우리 고유의 명절인 설인데 역 귀성객이 많다는 보도다. 지난 추석에도 그랬고 이번 설에도 그러한 것으로 보아 아마 이런 풍습은 계속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음은 오늘부터 귀성차량이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가 이를 증명한다. 바야흐로 설과 추석에만 볼 수 있는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 설 연휴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합하여 5일간인데 음력설의 3일 휴무에 대해서 구정이니 이중과세니 하면서 말들이 참 많다.
그래서 오늘은 설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먼저 설에 대한 정부의 입장 추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10년 한국을 강점한 일본은 민족혼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수 천년 동안 관습화된 음력설을 없애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 일제는 19세기 을미개혁 당시 태양력과 함께 도입된 양력설을 공식적인 '설'로 인정하고, 음력설을 지내지 못하게 했는데 이 영향으로 인하여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도 지속적으로 양력설(新正)에만 사흘씩 쉬어 오다가 1985년에 와서야 음력설을 처음으로 공휴일로 제정하고 하루를 쉬었는데, 이때 음력설에 「민속의 날」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이는 정부에서 아무리 양력설만을 계몽하여도 우리 국민들은 이에 따르지 않고 수 천년동안 민족의 얼과 혼이 담겨 있는 음력설만을 진정한 설로 여기는데 기인한 것이리라!
이어 1989년부터 민속의 날을 ‘설날’로 개칭하고 사흘의 연휴 기간으로 늘려 양력설과 동등하게 대우하였다가 1991년부터는 신정 휴일을 사흘에서 이틀로, 1999년부터는 하루로 줄임으로써 드디어 음력설이 양력설과의 오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럼 설은 언제부터 우리 고유의 명절이 되었을까?
설은 원단(元旦), 세수(歲首), 년수(年首), 신일(愼日)이라고도 하는데 일년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또, 삼원지일(三元之日: 일년의 첫날, 달의 첫날, 날의 첫날)이기 때문에 원조(元朝)라고 한다.
설을 언제부터 쇠기 시작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신라 때 정월 초하루에는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일월신을 배례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역사가 오래 된 것은 분명한 듯하다.
한편, 일부에서 주장하고 있는 음력설의 이중과세에 대한 나의 의견은?
먼저 그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첫째, 신정(양력 1월 1일)이 있는데 구정(설)을 쇠는 것은 이중과세로 불합 리하고 비능률적이다.
둘째, 설을 쇠는 나라가 동양의 일부국가에 국한되어 있다.
셋째, 설이 명절보다는 공휴일이라는 개념이 더욱 강하다.
이에 대한 나의 의견은 이렇다.
첫째, 양력 1월 1일은 설이 아닌 그냥 공휴일에 불과하다. 설(음력 1월 1일)은 우리 역사와 함께 시작되어 동화되어온 관습이다.
둘째, 가장 고유한 것이 가장 한국적이다. 다른 나라가 씨름을 하지 않으니 우리도 씨름을 하지 말라는 말인가?
셋째, 민족의 대이동을 보라. 그들은 설이라는 의미 하나로 몇 시간의 피로한 귀성에도 부모님을 뵙고 친구들을 만나고 정든 고향엘 간다는 그 자체로 마음이 들떠 있다. 물론 밀뵙기를 하고나서 자신들의 충전을 위해 해외여행 등을 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그들이 과연 우리 국민의 몇 %나 되겠는가?
물론 나의 의견이 100%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나는 인간의 삶을 획일적인 능률과 비능률(이는 경제 용어이다)로만 평가하지 말자는 것이다.
막말로 아무리 현대인의 가치를 부의 크기로 평가한다고 해도 부가 본인의 행․불행을 결정하지는 않을 것이며, 남이 볼 때 가장 비능률적으로 보이는 것이 내게는 가장 능률적일 수도 있으므로.
나도 이번 설 연휴기간 동안 사무실 문을 닫고 고향엘 갈 것이다. 물론 이제 내가 세배를 드려야 할 사람보다 내게 세배를 할 사람이 훨씬 많은 나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설은 즐거운 명절이기에.
고향에 가서 부모님의 산소도 들러보고 친구들도 만나고 또 가족끼리 세토도 치고 술도 한잔 마시고……
이번 설은 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아 옛날의 설다운 설이 되기를 바라면서 명절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뜻있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 (2011년 1월에)
밀뵙기 : 설, 추석 따위의 명절에 부득이 그날 찾아가 인사를 하지 못할 경 우, 그 전에 미리 찾아가는 일.
오는 날들이 지난 날들보다 더 희망 차야만 하는데
우리들의 나이에는 그런 것이 없을까?
설을 며칠 남겨 놓은 감회가
1년 전이나 오늘이나 별반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설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이 있으니
나도 즐거워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