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0화 : 나의 도전 벽
예전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 김삿갓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본인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아무런 사실을 모르는)에서 할아버지를 욕되게 한 마음의 빚으로 평생 동안 할아버지가 계시는 하늘을 쳐다보지 않겠다고 쓰고 다닌 삿갓이 그의 평생 이름이 되어버린 방랑시인 김삿갓!
평범한 필부에 지나지 않은 내가 왜 천재시인인 그 분을 좋아할까?
아마 내게도 그 분의 방랑벽이 조금은 있어서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나는 또 한 번 엉뚱한 여행을 하고 왔으니 그게 「우리말 겨루기 패자부활전」 참가이다.
11월도 막바지에 이른 어느 날.
난 우연히 12월 중에 우리말 겨루기 패자부활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생뚱맞은 고유어와 부사 등을 묻는 요즘의 문제 추세 하에서 예전의 나의 실력으로 도전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어불성설이었지만 어떻게든 연말을 뜻있게 보내자고 생각하고 있는 내게 그 우리말 겨루기 패자부활전은 좋은 기회였다.
KBS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자세히 알아보니 11월 27일 : 예선전(필기시험 및 면접), 11월 30일 : 합격자 발표, 12월 13일 : 녹화, 12월 26일 : 방송 등으로 스케줄이 짜여 있다.
하여 나는 망설임 없이 11월 27일 오후 2시에 서울의 KBS방송국에 있는 시험장을 찾아갔다.
약 40여명의 응시자 가운데 필기시험을 6등으로 통과하였는데 1등은 그 바닥에서 속칭 ‘선수’라고 통하는 어떤 여자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자는 우리말 겨루기뿐만 아니라 1대 100, 퀴즈 대한민국, 퀴즈 영웅 등 모든 방송에 출연한 그 분야의 거물이었다)
한 그룹을 성적순인 여섯 명으로 나누어 실시된 면접장에서 직감적으로 1등인 그 여자는 합격하겠구나 생각한 나는 담담히 나의 상황을 이야기하였다.(도전 동기를 묻는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 요지 : 우리말 전도사라는 긍지로 우리말을 소개하는 ‘우리말을 찾아서’라는 수필집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 책의 부제로 ‘우리말 달인과 함께 하는 우리말 여행’이라고 쓰고 싶어 도전하게 되었다. 또한 내가 운영하는 사무실 상호에 달인이라는 칭호를 넣었는데 명실상부한 달인이 아니어서 마음 한 켠에 아쉬움이 남아있어 그걸 탈피하고자 도전하게 되었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발표일을 기다리면서 나는 다시 예전에 공부했던 노트를 꺼내들고 공부를 시작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합격자 다섯 사람 중에 내 이름이 두 번째로 떡하니 들어있지 않은가! 물론 일등은 나의 직감대로 그 여자 몫이었다.
그 때부터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어차피 우승이야 그 여자일 것이라는 생각에 큰 부담은 없었지만 창피는 당하지 말아야 할 것인데 공부할 시간이 절대 부족하여서이다.
일찍이 계획되어 있는 12월 3일부터 2박 3일의 가족여행(24명의 대가족이 움직이는 여행이었다)을 필두로 연일 계속되는 연말의 각종 부부동반 모임, 꼭 참석을 해야만 하는 대전의 모 결혼식 등등 모든 것이 악조건이었다.(가족 여행 및 부부모임은 전부 참석하였으나 12월 11일에 있었던 대전의 모 결혼식엔 집사람만 보냈음)
강원도를 거쳐 동해안을 따라 내려오는 여행 내내 짬짬이 책을 보며 시간을 아꼈지만 나 때문에 가족여행을 망칠 수는 없었다. 하여 같이 술 마시며 떠들고 게임을 하는 등 모처럼의 가족 여행을 즐기다가 급기야는 1박2일 프로그램을 흉내 낸 ‘나만 아니면 돼’의 복불복 게임으로 동해의 차고 짭짤한 바닷물에 나의 몸을 내던진 재미(?)도 만끽하면서까지 분위기에 휩쓸렸지만그래도 내 마음은 온통 우리말 겨루기에 가 있었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래, 마음을 비우자! 출연하여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자!
드디어 녹화일!
오전 10시까지 방송국으로 가야하는 일정 때문에 나는 새벽 열차(5시 20분)를 탈 수밖에 없어 잠을 한숨도 못 이루고 방송국에 도착했다.
2년여 전에 한 번 와본 곳이라 그리 낯설지도 않았고 출연자들 모두 경험해본 준비과정도 서툴지 않아 우리는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면서 방송 관계자들(엄지인 아나운서와 김종무 프로듀서, 그리고 작가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엄지인 아나운서는 이전에 내가 출연했던 방송을 다시 보았는지 그 때 너무나 아쉽게 되었다는 등 말을 많이 걸어왔다. 나는 출제경향에 대하여 평소의 의견을 제시하였는데 제작에 참고하겠다고 약속을 해주었다.
그리고 예정된 시간이 되어 녹화를 시작했는데 결과는 역시 그녀가 1등이고 나는 공동 4위(꼴등!)이었다. 그러나 나는 부끄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거웠다.
오는 12월 26일에 방송될 그 프로그램이 어떻게 편집되어 나의 모습이 어떻게 비쳐질지는 나도 아직 모르지만 방송 내내 즐거운 마음으로 녹화에 임했 다는 것은 방송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한 나의 도전기를 이렇게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당당히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언제 다시 또 이러한 도전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무엇인가에의 도전은 나의 삶이자 철학이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자, 또 다른 새로운 도전을 위하여 아자, 아자!
벽(癖) : ①무엇을 치우치게 즐기는 성벽(性癖).
②고치기 어렵게 굳어 버린 버릇.
어불성설(語不成說) : 말이 조금도 사리에 맞지 아니함. ≒불성설.
복불복(福不福) : 복분(福分)의 좋고 좋지 않음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운수 를 이르는 말.
어제는 정말 즐거운 하루였다.
긴 시간의 녹화 내내 나의 응원단으로 함께 해준
박경순님(김병옥의 처)께 감사드린다.
비록 우리말 달인 도전은 또 실패했지만
세무사로서는 꼭 달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