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5화 : 막걸리 한잔, 어떻습니까?
지난 일요일(2011년 10월 16일) 있었던 제7회 재광고흥군향우회(체육대회)는 2년마다 열리는 재광고흥군민의 축제의 장이었다.
높고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서 고흥군 관할 면 대항으로 배구와 씨름, 그리고 윷놀이와 400m 계주 4가지 종목으로 승부를 가리는 대회지만 그보다는 모처럼 고향 선후배들을 만나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잠시 잊고 술을 권하며 하루를 즐기는 그런 날이었다.
내빈들을 보면(매번 그렇지만) 고흥군수를 비롯하여 고흥지역구 국회의원, 고흥출신 타지역구 국회의원들 등 주로 정치인이 많았으며 우리 금산면에서도 면장과 군의원, 농협조합장, 체육회상임부회장 등 관계자들이 참여하였다.
주최 측의 사회자는 장내를 정리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안내를 하다가 드디어 입장식에 대한 안내를 하는데 그 멘트는 역시 “곧 입장식이 거행되겠으니 내외빈께서는 단상의 자리에 착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였다.
나는 그 ‘내외빈’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귀에 거슬려 풀밭에 누워 한가로이 흘러가며 세계지도를 그려내고 있는 구름을 쳐다보며 또 한 가지 염려를 하고 있었는데 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역시 마이크에서는 “지금으로부터 입장식을 시작하겠습니다.”라는 멘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바로 내가 이 수필 제149화(헷갈리는 우리말)에서 잘못 쓰이고 있다고 언급했던 단어들이 그대로 답습되고 있는 것이었다!
각설하고,
나도 모처럼 하루를 모든 근심걱정을 내팽개치고 배구코트로, 씨름장으로 응원을 다니면서 틈나는 대로 우리 금산면 본부석에 들러 금산에서 공수해 왔다는 유자막걸리를 한 잔씩 쭈욱 들이켰더니 행사가 끝나갈 쯤에는 제법 취기가 올랐다.
나의 경우 술을 마다하지 않은 체질이지만 위장이 크지 않아서인지 량이 많은 맥주나 막걸리는 좋아하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막걸리를 꽤 많이 마셨는데도 예전 같은 거북함(트림이나 머리아픔)이 없었다. 물론 화장실엔 몇 번 들락거렸지만 말이다.
그 이유를 어떤 친구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예전에는 막걸리의 수요량은 많고 생산설비는 부족하여 숙성기간이 2~3일로 아주 짧았는데 지금은 일주일 이상씩 숙성시켜 그렇다는 것이다.
막걸리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서민적인 술이란 것에 대하여는 이론이 없을 것이다. 사극 같은 것을 보아도 갓 쓰고 도포 입은 양반들은 청주를 마시지만 바지고름을 걷어 부친 농부나 하인들인 우리 조상의 대부분인 사람들은 막걸리를 마신다.
그렇지만 젊고 가난했던 우리는 그 막걸리마저도 마음대로 마실 수 있는 형편이 못되었다. 하여 때로는 막걸리 내기 화투놀이도 하였고 또 이따금씩 대흥에 있는 주조장엘 들러 일명 빼주라고 불리는 독한 술을 한 잔씩 얻어 마시곤 하였다.
예전의 시골 주조장은 향리에서 최고인 부의 상징이었다.
나의 경우 세무서에서 근무했던 관계로 시골의 나이 지긋한 주조장 사장님들을 여러 분 만나 볼 기회가 있었는데 하나같이 면이나 읍 단위의 유지로 행세하셨다.
그러던 주조장이 소주와 맥주, 그리고 위스키에 밀려 사양길로 접어들었다가 요즘에야 다시 활기를 띄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예전 같기야 하랴마는 몇몇의 주조장은 시설을 더욱 현대화하여 저마다의 특색 있는 상품을 개발하여 술꾼들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가형인 달그림자님도 평생을 소주만 즐기시더니 지금 당신의 손으로 집을 짓는 노동을 하시면서부터 막걸리 애호가가 되셨다고 한다. 그래서 주말에 내가 그곳을 찾을 때는 어김없이 주조장엘 들러 막걸리를 사가지고 가야 하는데 우리 마나님도 덩달아 막걸리는 한잔씩 하고 싶다나!
나는 아직까지 막걸리에 대한 매력을 크게 못 느끼고 있지만 그래도 막걸리에 대한 추억만큼은 한 아름 앉고 있으니 그 추억을 하나하나 풀어내면서 누구 막걸리 한잔(-盞) 같이하고 싶은 사람 없나요?
한잔(-盞) : 간단하게 한 차례 마시는 차나 술 따위.
(‘한’이 하나, 둘 등의 뜻을 가진 관형사로 쓰이면 ‘한 잔’으로 띄어 쓰지만
이렇게 ‘간단하게 한 차례 마시는 차나 술 따위’를 나타낼 때는 붙여 씁니다.
예를 들면 ‘나는 오늘 술을 세 잔이나 마셨다!’, ‘오늘 우리 한잔 할까?’ 와 같습니다)
하늘은 쾌청한데 바람이 불어 날씨가 많이 쌀쌀하다.
아직은 아닌데도
벌써 가을이 다 갔나? 하는 생각에
곧 바람에 흩날릴 낙엽들이 눈에 선하다.
그래도 낙엽들은 다시 봄이 오면 새잎으로 태어날텐데
우리 인생의 가을은 새봄을 기약할 수 없으니..........
날씨가 차서인지 기분이 많이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