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화 : 해어화(解語花)
가수 이선희는 대학 재학 중 강변가요제에서 ‘J에게’ 라는 노래로 대상을 수상하고 그 여세로 1984년 가요계에 데뷔, 이후 줄곧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며 90년대 초까지 가장 인기 있는 여가수였다. 귀여우면서도 보이시한 이미지를 동시에 가진 그의 외모와 복장은 여성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어냈다. 그녀는 작은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최고의 가창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는데 특이하게도 1991년에 최연소 서울시의원으로도 당선된 이력도 있다.
그녀가 불렀던 노래 중에 내 마음을 아리게 했던 노래가 있었으니 그것은 1986년에 발표한 이선희의 3집 앨범에 실려 있는 아래의 ‘알고 싶어요’이다.
1. 달 밝은 밤에 그대는 누구를 생각 하세요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꾸시나요.
깊은 밤에 홀로 깨어 눈물 흘린 적 없나요.
때로는 일기장에 내 얘기도 쓰시나요.
날 만나 행복했나요. 나의 사랑 믿나요.
그대생각 하다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
2. 하루 중에서 내 생각 얼만큼 많이 하나요.
내가 정말 그대의 마음에 드시나요.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귀여운가요.
바쁠 때 전화해도 내목소리 반갑나요.
내가 많이 어여쁜가요. 진정 날 사랑한가요.
난 정말 알고 싶어요. 얘기를 해주세요.
왜 내가 때 아니게 이 노래를 상기하는가?
그것은 이 노래의 노랫말에 얽힌 사연을 알리는데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원래 이 노래는 조선시대의 명기 황진이가 선비 소세양과 한 달간 동거를 하고 헤어진 후 그리움을 적은 한시 형식의 편지인데 이 노래의 작사자인 양인자님이 번안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위의 노랫말과 황진이의 시(?)를 비교하기 위하여 시의 전문을 실어 본다.
蕭寥月夜思何事 (소요월야사하사)
달 밝은 밤이면 그대는 무엇을 생각하나요?
寢宵轉輾夢似樣 (침소전전몽사양)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을 꾸시나요?
問君有時錄忘言 (문군유시녹망언)
붓을 들면 때로는 제 이름도 적어보나요?
此世緣分果信良 (차세연분과신량)
저를 만나 기쁘셨나요?
悠悠憶君疑未盡 (유유억군의미진)
그대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
日日念我幾許量 (일일염아기허량)
하루에 제 생각 얼마만큼 하나요?
忙中要顧煩或喜 (망중요고번혹희)
바쁠 때 얘기해도 제 말이 재미있나요?
喧喧如雀情如常 (훤훤여작정여상)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정겨운가요?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
유교사상에 절은 조선시대에 과연 어떤 여인이 이토록 절절하고 솔직하고 애틋하게 연서를 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황진이이기에 가능하다고 하면 할 말이 없다. 부르는 이름이 기생일 뿐 황진이는 당대 최고의 시인이자 가객이며 예술가였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닌가! 오히려 기생이었기에 더욱 당당하고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게 아닐까하고 생각해 본다.
그런데 이 노래의 작사자인 양인자님의 의견은 이와 정반대이다.
이 노래는 1986년 이전에 만들어졌는데 1995년에 조선일보의 기자 이재윤이 주간조선에 연재하는 ‘청사홍사’의 「황진이편」을 쓰면서 이 노랫말을 한시로 번역하고 싶다고 양해를 구하여 허락하였다는 것이다.
어느 주장이 맞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순전히 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후자(양인자)의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몇 가지의 이유야 있지만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가 그것을 밝히는 것이 아니고 말을 하는 꽃, 곧 해어화(解語花)를 설명하기 위함이므로 그 이유는 생략한다.
해어화(解語花)는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는 의미로 양귀비와 같은 미인을 뜻하거나 기생을 말한다.
관련고사는 다음과 같다.
「당나라의 현종과 양귀비는 연꽃을 감상하기 위해 태액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현종의 눈에는 그 어느 것도 옆에 앉아 있는 양귀비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었다.그래서 주위의 궁녀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여기 있는 연꽃도 해어화(解語花)보다는 아름답지 않구나!"」
동서고금에 이렇게 해어화로 불리는 양귀비와 맞먹는 미인들은 누구누구가 있을까?
흔히 ‘중국의 4대 미인’하면 초선(貂禅), 왕소군(王昭君), 양귀비(杨贵妃), 서시(西施)을 꼽는다.(중국에서는 이들의 초상화를 위의 순서대로 1부터 4까지 번호를 매겨「4대 미인도」라 하여 소중하게 다루고 있는데 1부터 4의 숫자가 미인의 순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초선(貂禅)은 ‘달이 부끄러워 얼굴을 구름 뒤로 가릴 정도로 아름답다’고 하여 폐월(閉月)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왕소군(王昭君)은 ‘날아가던 기러기가 왕소군의 미모를 보고는 날개 짓을 잃고 땅으로 떨어질 정도로 아름답다’고 하여 낙안(落雁)이라고 불리었고,
양귀비(杨贵妃)는 ‘꽃이 부끄러워 바로 잎을 말아 올렸다’고 하여 수화(羞花)라 불리었고.
서시(西施)는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어버릴 만큼 아름답다’는 뜻으로 침어(沉鱼)라고 불리었다고 전한다.
서양의 미인 중에서는 클레오파트라를 단연 최고로 치는데 ‘그녀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라는 파스칼의 유명한 말은 지금까지 인류에게 회자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 우리 한국의 역대 미인들은?
일반적으로 고구려의 관나부인(삼국사기), 백제의 도미부인(삼국사기, 도미설화), 신라의 미실(화랑세기), 신라의 선화공주(삼국사기, 서동요), 고려의 기왕후, 조선시대의 어우동∙장록수∙황진이∙장희빈 등을 한국의 역대 10대 미인으로 꼽고 있다고 하는데 이수광님이 지은 한국역사의 미인(천년의 향기)편에서는 이들 외에도 소서노, 수로부인, 선덕여왕과 명성황후 등을 꼽고 있으나 역시 최고의 미인은 황진이가 아닐까?
오늘 해어화라는 단어를 소개하면서 역대의 미인들을 두루 만나 보았는데 우리가 진정 원하는 미인은 외모뿐이 아닌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맺는다.
노랫말과
시와
중국의 4대미인과
클레오파트라와
그리고 한국의 미인들을 두루 만나느라 글이 길어졌다.
그러나 이들보다도 더욱 아름다운 사람이 있으니
그 이름은 엄마!
아, 어머니!
당신은 그 어디메에 계시느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