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1화 : 반추(反芻)
(부제 : 우리말 달인 도전기)
어떤 장르의 글을 막론하고 글을 쓴다는 게 참 어렵다.
써야 되는 필연적인 이유야 있건 없건 기승전결을 구성해야하고 상황에 알맞는 어휘를 선택해야하고 또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맞게 되었는지 등등등.
나는 이 중 띄어쓰기가 가장 어렵다고 느낀다. 단어와 단어는 띄어 쓴다는 지극히 간단한 법칙이야 알고 있지만 단어 하나하나가 독립된 단어인지 다른 단어에 빌붙어야만 생명을 얻는 보조사인지가 무척 헷갈린다.
하여 어려운 띄어쓰기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내가 감히 「KBS의 우리말 겨루기」프로그램에 출연한 자초지종을 순서대로 써본다.
2009년 어느 날.
탁월한 어휘 구사능력과 문장력으로 평소에 내가 부러워하면서도 존경하는 김〇〇 여사님이 “KBS광주방송국에서 있었던 「KBS의 우리말 겨루기」지역예심에 참가해서 필기시험은 합격했는데 면접에서 떨어졌다.”면서 나보고 한번 나가보라고 권유하셨다.
나도 그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어 언젠가는 한번 출연해 보고 싶은 마음으로 틈틈이 우리말을 공부하고 있던 터이고, 마침 2009년 10월의 세무사시험 최종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도 올라있어 잠시 만사를 잊고 우리말 겨루기에 참가해 보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던 중 드디어 광주지역 예심이 2009. 11. 28에 있다는 안내가 나왔다.
그 날을 D-day로 정하고 공부하면서 출제유형과 면접방법 및 분위기를 알아보고자 그보다 1주일 전(2009. 11. 21.)에 있었던 본사의 예심에 참가하였다. 마침 그날은 서울에서 친구의 딸 결혼식이 있고, 또 4개월에 한 번씩 모이는 직장동료들의 모임이 있기에 일거삼득의 효과를 볼 수 있어 편안한 마음으로 여의도에 있는 KBS방송국으로 향하였다.
드디어 연출자의 안내에 따라 시험이 시작되었다.
필기시험 성적은 공부한 보람이 있어서인지 총 응시자 90여 명 중 3등이었다. 곧이어 필기시험 통과자 40여명을 1개조 5명씩 상위 성적순으로 면접을 실시하였는데 면접관은 연출자를 포함하여 남자 2명 여자 3명(작가라고 한다)으로 생각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었다.
면접관들은 응시자가 필기시험지에 간략하게 쓴 자기소개서를 보고 질문을 하는데 나에게의 첫 질문이 내가 발간한 「거금도닷컴」에 실린 재미있는 속담을 하나 소개하란다.
나는 웃으면서 ‘방송용이 아닌 진짜로 재미있는 것을 소개해도 되겠느냐?’라고 물었더니 ‘괜찮다’는 대답이다.
‘봄 보지는 쇠저를 녹이고 가을 자지는 쇠판도 뚫는다.’라는 속담 한 방으로 면접실을 웃음바다로 만든 나는 유유히 면접실에서 나와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결혼식 피로연장으로 향했는데 10여일 후 최종예선합격자 명단에 나의 이름이 버젓이 올라있었다.
본선 출연을 위하여 설렘⦁긴장과 함께 나의 공부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기출문제의 풀이와 예상문제 작성, 그리고 또다시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표준국어대사전의 정독!
매회의 출연자를 점검하면서 2달여를 보내고 있는데 드디어 나에게도 출연일자가 확정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날이 우리 국세청 인사이동일과 같은 날인 2010년 2월 18일이다. 나도 이번 인사에 근무처를 옮겨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연가를 내자.
드디어 녹화일인 2010년 2월 18일!
'제 17대 우리말 달인 등극'이라는 청운의 꿈을 안고 응원단 2명(아내와 딸)과 함께 아침 6시 40분의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10시에 강남고속터미널에 도착하여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고 KBS 본관 로비에 도착하니 11시 20분.
11시 30분에 출연자(5명) 대기실에 입실하여 담당 PD의 녹화 시 주의사항을 듣고 분장, 포즈사진 촬영, 번호, 구호 등을 정하고 녹화실로 간 시각이 14시.
스텝들의 바쁜 손놀림과 함께 여러 이름 모를 장비들이 움직이고 조명은 번득이고………
드디어 녹화가 시작되었다.
1단계 : 단어 완성 문제(버저 방식) : 10개, 개당 50점
문제가 채 나오기도 전에 버저를 누르는 참가자들의 성급함에 난 4문제가 출제될 때까지 버저도 못 눌러 보고.......
결과는 내가 150점, 세 사람이 100점 씩, 한 사람이 50점.(결과에 만족)
2단계 : 단어 연상 문제로 각자 2문제(1대 4 대결 방식)
3위만 하면 되니까 안전 운행. 그래도 총 10문제 중 9문제를 맞춤.
결과는 1위 1200점, 2위(나) 1150점, 3위 900점. (4,5위는 탈락)
3단계 : 우리말 뜻풀이 문제로 각자 1문제. 1위부터 시작
문제 : 쩌금거리다(1위가 단어를 못 맞혀 2위인 나에게 패스)
내가 단어 4개와 뜻풀이를 완벽하게 맞혀 500점 추가 획득.(다음 문제 풀 이와 상관없이 결승 진출 확정)
4단계(결승전) : 단어 퍼즐 문제.(첫 단어 200점, 각 단어 100점, 틀릴 경우 100점 감점, 상대방이 틀린 문제를 다른 사람이 맞출 경우 200점, 마지막 단어 500점) 1000점에서 시작.
첫 단어인 ‘볼’을 내가 기분 좋게 맞혔는데 다음부터는 엎치락뒤치락.
내가 마지막 문제에 먼저 도착했는데 못 맞춤(이때 나의 점수가 2,400점). 드디어 상대방도 마지막 문제에 도달했는데 그의 점수가 2,000점으로 만약 그가 마지막 문제를 맞히면 2,500점으로 역전할 수 있는 찬스!
다행히 상대방도 못 맞추어 다시 나에게 다시 기회가!!!!!!
‘마지막 5초 드리겠습니다.’라는 사회자의 멘트는 사정없이 나의 귀를 파고 파고드는데………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던 나에게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달 인도전으로 가는 마지막 열쇠였던 ‘쑥대밭’이었다!
드디어 우리말달인에 도전!
첫 번째 관문 : 맞는 단어 고르기 3문제
1. 성공하기를 (바란다, 바랜다).
2. (허구한 날, 허구헌 날) 걱정만 한다.
3. 그는 축구라면 (사족, 사죽)을 못 쓴다.
(어렵지 않게 통과, 오랫동안 기다리는 달인 탄생을 기대하는 웅성거림 을 느낌)
두 번째 관문 : 띄어쓰기 문제(제일 어려운 부분으로 여기만 통과하면 내가 가장 자신하는 어휘 문제다)
1. 나이가 (몇이냐, 몇 이냐)?
2. 내가 (너보다, 너 보다) 크다.
3. (저녁무렵, 저녁 무렵)에 보자.
역시 시험은 시험이었다. 두 번째 관문인 띄어쓰기에서 1번과 2번을 맞추고 3번을 듣는 순간 ‘왜 당연히 띄어 쓰는 이렇게 쉬운 문제를 냈을까?’하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새벽녘’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새벽녘’은 붙여 쓰는데!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느라 만감이 교차하였지만 선택은 순간이었다.
아, 아! 역시 가장 상식적인 것이 진리이거늘………
이렇게 아쉬움을 남긴 채 나의 우리말 달인에의 도전은 끝이 났지만 아직도 내가 꿈꾸는 달인이 있으니 그게 바로 ‘세무사로서의 달인’이다.
모든 것은 항상 지나고 나면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하고 후회가 따르는 법. 우리말 겨루기에 출연했던 날이 벌써 1년 하고도 반이 지나갔다.
오늘도 그날의 추억을 반추하며 이제는 내가 꿈꾸는 ‘세무사로서의 달인’이 되기 위하여 가일층 노력해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반추(反芻) - ①한번 삼킨 먹이를 다시 게워 내어 씹음. ②어떤 일을 되풀이 하여 음미하거나 생각함.
어제 저녁에 방송되었던 '우리말을 찾아서'의 달인도전 낱말퍼즐문제에서
1번부터 14번까지 일사천리로 풀어나가던 도전자가
'머드러기'를 '무드러기'로 잘못알아(그래서 다음 문제의 답인
'머리끄덩이'도 놓침) 도전에 실패한 것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 올렸던 저의 출연소감을 옮겨 실었습니다.
기회가 오면 다시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는 강력한 욕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