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 감똥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무슨 꽃일까?
진흙에서 자라지만 그 더러움이 물들지 않아 화중군자(花中君子)라고 불리는 연꽃?
화중신선(花中神仙)으로 불리는 해당화?
찬 서리에도 굴하지 않고 고고하게 핀 국화?
그것도 아니면 그 청초함으로 가을날의 여심을 흔드는 코스모스?
그러나 이 질문은 정말 어리석은 질문이다.
모든 꽃은 각각의 특징으로 나름대로 충분히 아름다운데 말이다.
그럼 사람들은 무슨 꽃을 가장 좋아할까?
이것도 정말 어리석은 질문이다.
초봄의 매화와 이화(배꽃), 봄의 진달래와 철쭉 그리고 개나리, 여름의 장미, 가을의 국화와 코스모스, 겨울의 동백꽃 등등의 꽃을 사람들은 각각의 개성이 다르듯 저마다 좋아하는 꽃이 다른데 말이다.
그럼 나는 무슨 꽃을 좋아하는가?
꽃을 유별나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파란 가을 하늘 아래 평화롭게 펼쳐진 마을의 집집마다에 주렁주렁 달려 빨갛게 익어가고 있는 감을, 나는 감꽃이라 부르며 특히 좋아한다고나 할까!
하나의 감이 이렇게 익어갈 수 있을 때까지에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이다.
채 열매를 맺지 못하고 떨어져 버린 감꽃도 있었을 것이며, 여름날의 그 모진 태풍에 가지가 찢어지는 아픔도 보았을 것이다.
또한 이제는 다 이루었다 하고 마음을 놓는 그 순간, 달콤한 즙을 노리면서 그 때를 기다려온 온갖 벌레들의 공격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역경을 견뎌내고 자기의 역할을 다 한, 그리고 우리에게 평화와 풍요를 안겨 준 그 가을의 빨간 감꽃을 나는 특히 좋아한다.
그러나 오늘의 소재는 내가 좋아한다는 그 빨간 감꽃이 아니고 그 빨간 감꽃을 피우기 위해 희생된, 산과 들의 나무들이 연두색 옷을 벗고 초록으로 물들어 갈 때쯤 하나씩 하나씩 꽃망울을 터뜨리면서 늦은 봄을 유혹하는 노란 감꽃이다.
우리 부모님께서 당신의 자식들이 태어날 때마다 집 텃밭에다 기념으로 심으셨다는 감나무는 그 연륜에 따라 크기도 다를 뿐 아니라 품종도 달랐다. 즉, 부모님께서 의식적으로 딸과 아들별로 구분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위로 두 분 누나의 감나무와 아래로 우리 삼형제의 감나무는 품종이 서로 달랐다.
누나들의 감나무 품종은 홍시를 만들 수 있는 장두감(?) 종류였고, 우리들의 감나무 품종은 단감 종류였다.
초등학교 시절의 늦은 봄날.
이제 갓 10여년이 된 막내의 감나무부터 20여년이 조금 넘은 큰누나의 감나무에 이르기까지 다섯 그루의 감나무는 저마다 꽃을 피워 자태를 자랑했다. 우리는 각자의 감나무 아래서 이따금씩 떨어지는 감꽃을 ‘감똥’이라고 부르며 주워서 먹기도 하고 실에 꿰어 목걸이도 만들곤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표준말을 정리하면서 찾아보니
감또개 - 꽃과 함께 떨어진 어린 감. 감똑이라고도 함. 이라고 되어 있다.
우리가 잘못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야 나는 감또개(=감똑)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혹시라도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위하여 제 역할을 다 하고 떨어지는 그 감꽃을 주워 먹을 기회가 다시 온다면 나는 역시 그 꽃잎을 ‘감똥’이라고 부르면서 맛있게 씹어 먹고 싶다.
그리고 목걸이를 만들어서 내 사랑하는 반쪽님에게 걸어주고도 싶다.
또 내가 좋아하는 꽃(?)은
노랗게 익어 향기를 내뿜는 감귤과 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