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 가대기
각 부두에는 항운노조라는 것이 있다.
‘노조’는 ‘노동조합’의 준말로 근무하는 회사와 대립되는 개념인데 항운노조의 경우 근무하는 회사가 없이 근무하는 사람들로만 조합을 결성하였으니 그 상대는 결국 하역회사가 될 것이다. 곧, 선주나 화주는 배에다가 짐을 싣고 내리는 일을 하역회사에 위탁하고 그 위탁을 받은 하역회사는 행정적인 일만 처리하고 실제로 짐을 싣고 내리는 일은 항운노조가 전담하고 있는 구조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항운노조를 직접 상대해 본 일이 없어 자세히는 모르지만 영화나 소설 등에서 보면 그 단체의 힘이 아주 막강하다는 것을 느낀다. 아니 그 단체보다 그 단체의 장인 조합장의 힘이 막강하다고 할까!
반면 조합원인 노동자들은 작업 순서에 따라 일을 배당받는데 예전의 영화나 소설 속에서와 같이 등짐을 지고 갑판을 오르내리는 작업을 하게 된다. 그러나 요즈음은 대부분 컨테이너를 이용하여 짐을 싣고 내리는 작업을 하기 때문에 직접 등짐을 하는 모습은 자주 볼 수 없다.
각설하고,
아직 해우⁽¹⁾를 시작하기 전의 쇠머리 늦가을의 오후.
우리 더벅머리 청년들은 광장에 혹은 막걸리 판에 끼리끼리 모여서 모처럼의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이때 마을 공동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안내방송이 있으니
"아, 아! 청년회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빼깽이⁽²⁾를 실을 배가 막 도착했습니다. 한가마니에 ○○원씩 하기로 하였으니 청년회원들은 이 방송을 들은 즉시 광장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늦가을에 밭에서 수확한 고구마는 상태가 좋은 것은 식용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집에다 보관하고 나머지는 빼깽이로 만들어 파는 것이 연례 행사였다. 이 빼깽이는 공판을 거쳐 마을공동창고에 보관되어 있는데 이것들을 싣고 갈 배가 왔으니 옮겨 실어야 한다는 안내방송인데 그 옮겨 싣는 삯이 한가마니에 ○○○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우리 청년회에서 도맡아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합동으로 일을 하여 우리 청년회의 공동경비를 마련하곤 하였는데 이렇게 마련된 돈은 해우가 끝난 이듬해에 우리 청년들의 봄나들이 경비로 사용되곤 하였다.(이 ‘봄나들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밝힌 적이 있으므로 생략한다).
이렇게 창고에서 배로 어떤 짐을 어깨에 메고 나르는 일을 '가대기'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을 부락 청년들이 공동으로 하지 않고 각자가 각각의 일한 만큼의 삯을 받는다면 어떻게 했을까?
분명 배에 있는 감독자가 한 가마니, 한 가마니를 실을 때마다 그것을 메고 온 사람에게 어떤 증표를 주어 일이 다 끝난 다음에 삯을 계산했을 것이다. 이렇게 나중에 삯을 계산하기 위하여 인부에게 일한 만큼의 증거로 준 증표를 ‘만보’라고 한단다.
그러나 지금은 시골에 청년들도 남아있지 않고 예전같이 고구마도 많이 심지 않아 광장에 있었던 우리 마을 공동창고도 없어졌으니 가는 세월이 하 수상하기만 하다.
한편, ‘벽이나 담 따위에 임시로 덧붙여 만든 허술한 건조물.’을 순우리말로 ‘까대기’라고 하는 것을 밝히며 맺는다.
⁽¹⁾해우 : ‘김’의 전라도 사투리. 완도, 고흥, 진도 등 김이 생산되는 지역에서 많이
사용함. 김을 한자로 ‘海苔’라고도 쓰는데 이것도 잘못이라고 함.
⁽²⁾빼깽이 : 절간고구마(切干--- : 얇게 썰어서 볕에 말린 고구마)의 사투리. 또한
‘빽배기’라고도 하였음.
가대기 - 창고나 부두 따위에서, 인부들이 쌀가마니 따위의 무거운 짐을 갈고리에 찍어 당겨서 어깨에 메고 나르는 일.
만보 - 노동판에서 인부에게 한 가지 일을 할 때마다 한 장씩 주어 나중에 그 수에 따라 삯을 치르게 된 표.
감기기운이 있어 종일 집안에만 있으려니 많이 답답하다.
지금쯤 석교 해안에서 바라보는 거금대교의 불빛을 빨아드린
바다는 형형색색으로 빛나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