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 들메
고무신.
그것도 태화고무 타이어표 검정고무신!(내 기억이 맞나???)
아버지들은 하얀 고무신을 신었는데 우리들은 한번 신으면 발이 커서 맞지 않을 때까지 신어야 했던 질기디 질긴 검정고무신.
우리는 초등학교시절 내내 이 검정고무신을 산 넘고 들 건너 10리 길인 학교까지 신고 다녀야 했다.
뜨거운 여름날이면 양말조차 신지 않은 신발의 바닥은 땀으로 가득 차서 금방이라도 벗겨질 듯 질척거렸고,
산에서 나무를 해 조락⁽¹⁾에 담아 메고 내리막길을 내려올 때면 왜 그리도 미끄럽고 잘도 벗겨졌는지!
그래서 우린 고무신의 앞부분 위를 칼로 오려내어 바람구멍을 만들어 신곤 했다.
달리기라도 하려면 신발을 벗어 들고 달려야 했으며,
축구라도 하려면 신을 신은 채 끈으로 동여매야 했는데 우리가 그렇게 신이 벗겨지지 않도록 동여매는 일을 ‘들메’라고 한단다.
고무신에 얽힌 이야기 하나.
조르박재!
왜 이런 지명이 붙었는지 모르지만 어르신들과 우리 세대는 거기가 어디인지 다 안다. 거기는 귀신이 자주 나온다는 풍문 때문에 어린 우리들이 혼자 다니기엔 굉장히 무서운 곳이었지만 평평한 공터가 있기에 구슬치기 등을 할 수가 있어 여럿이 모여 학교에 다니는 우리들의 놀이터로도 이용되는 곳이기도 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말쯤인 어느 날,
무슨 일이 있어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넷(기도, 정화, 쌀밴 그리고 나)이 평소보다 늦게 집에를 오는데 하라패⁽²⁾를 지날 때쯤 해가 져서 조루박재를 지날 때에는 사방이 어둑해진 시간이었다. 귀신이 자주 나온다는 그 곳을 지나면서부터는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빨리 가려고 말 없는 경쟁을 하고 있었는데 돌연 산속에서 ‘쉬이, 쉬이,' 하는 요상한 소리가 계속 나면서 어떤 불이 번쩍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무서움에 가슴 졸이고 있던 우리는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엄마야 !' 하면서 내달리기 시작했다. 30여 미터 쯤 뛰었을까? 당시는 운동화가 아니라 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시절이라 아뿔싸! 내 고무신이 벗겨져 버린 것이다. 다급한 마음에 '내 신! 내 신!'하고 외쳤지만 어느 누구 하나 멈춰 줄 생각도 하지 않고 도망가기에 바쁘다. 나도 벗겨진 신을 되찾을 엄두도 못 내고 어쩔 수 없이 아픈 발바닥으로 쩔룩이며 뛰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와~하하하' 하는 웃는 소리가 들린다. 당시 중학교에 다니던 동네 형 일행이 몰래 숨어 우리를 놀래준 것이었다. 그 후유증으로 난 아파 누워 며칠간 학교엘 가지 못했고, 동네 형 중 한 사람인 복용이 형은 울 엄마한테 혼나게 야단을 맞았던.
그렇게 질겼던 검정고무신도 중학교에 가면서부터 운동화에 밀려 자기 생명을 다하고 엿장수에게 팔려나갔는데 지금은 무엇으로 재생되어서 이 사회에 공헌하고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들메 - 신이 벗어지지 않도록 신을 끈으로 발에 동여매는 일.
⁽¹⁾조락 : 대나무를 가느다랗게 쪼개어 만든 운반용 바구니. 주로 해태 채취와 가 리나무를 할 때 사용되었음.
⁽²⁾하라패 : 궁전(弓前 : 활의 앞)이라는 마을 이름. 그 마을을 지나면 산길로 들 어선다.
새 신을 신고 뛰어보자 폴짝.......
검정 고무신이라도 좋았다.
새 신이라면!
나이론 양말을 신고 신은
왜 그리 미끄러웠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