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가재미'는 암으로 세상 등진 큰어머니에 대한 기억"
‘현대시학’ 2004년 9월호에 실려 그해 문인들에게 회자되어 올해의 시로 평가
받았다. 지난 10년 대표적인 시 한편 가재미가 언급 되고 있다.
가재미는 강렬한 첫인상과 긴 여운이 있는 시이다.
서정시란 시인의 감정에 따라 내가 슬프면 세계가 슬프고
내가 기쁘면 세계가 기쁘기 쉽다. 이 시는 자아만 남는 걸 경계......
독자들의 마음을 단박에 사로잡는 매력과 지속적인 사유가 존재하는 작품이라 평가 받고 있다.
‘가재미’는 말기암 환자에 대한 기억 속 장면들이 언어의 표면으로 서서히
인화되는 순간을 채록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탐색한 작품이다.
두 눈이 한쪽에 몰려 붙어 있는 가재미는 목전에 다가온 죽음만을 응시하는 환자를 상징하고 있다.
시인은 이 시가 “어렸을 적부터 고향(김천시 봉산면 )
마을에서 같이 살다가 돌아가신 큰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1. 가재미 -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름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읽다가도 자세를 고쳐 긴 호흡으로 다시 읽게 하는 주옥같은 작품이 있습니다.
그중 가재미는 읽을수록 여운이 남는 작품입니다.
참고로 장편소설은 김훈의 칼의 노래,김연수 밤은 노래한다.황석영의 손님,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천명관 고래,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등이 지난 10년 대표작으로 언급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김연수 작품이외는 다 읽었으며,
김훈의 칼의 노래는 많은 분들이 작품에 찬사를 보냈던 작품입니다.
삶과 죽음을 다시 생각하며 ....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 주면서
먼 눈으로 술잔의 수위만을 아깝게 바라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