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어릴 때는 어땠어?
엄마 어릴 때 얘기 해 주세요."
올해 아홉 살 난 아들아이가 조른다. 그래 엄마 어릴때는 말이지?......
나는 박하사탕영화처럼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돌린다
아들아이 나이쯤, 조금 더 나아가 더 어린 시절로......
그러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장나무와 화면 가득 펼쳐지는 수 많은 등장인물들....
그 속에서 오늘은 하얀 모시 한복을 깨끗하게 차려입고
여자 아이들에게는 그저 짖궂은 장난을 좋아하시는 재미있는 분 정도로,
하지만 또래의 남자 아이들에게는 저승사자보다 더 무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할아버지 한분을 만나볼까 한다.
아직도 자손들이 석정에서 살고 있는 관계로 누가 될까 하여 실명을 피하고
그냥 우리 동네에서 가장 잘 살았던 집 할아버지로 기억한다.
매미가 한창 우는 계절이면 온 동네 아이들, 특히 사장에서 가까이 사는 집 아이들은
거의 매일 사장나무 밑으로 출근을 해서 날이 저물도록 놀았다.
개작대기며 비석치기(일명돌쓰러뜨리기), 땅따먹기 ,나무타기, 꼼박질, 고무줄뛰기, 38선,
그리고 이름도 괴상한 붕알놀이등등... 그날 그날 생각나는대로 형편되는 대로
놀이 종류는 끝이 없었고 놀 친구가 있어 더 없이 좋았던 시절이었다.
한마디로 사장나무밑은 아이들의 천국이었다.
어디 아이들뿐이랴?
밭일 갯일에 바쁜 어른들에게도 오며 가며 시원한 그늘과 더불어 바람까지 서늘했던
사장나무밑은 꿀맛 같은 휴식을 제공하던 동네 쉼터였다.
잠깐씩 앉아 쉬면서 자식들 뛰어 노는 모습을 지켜 보는 재미도 쏠쏠했으리라.
노동의 일선에서 물러선 노인들이 한가롭게 앉아서 부채질을 하고
아이들의 함성소리가 끊이지 않아 생기 넘치던 이 여름 사장나무께에
한 가지 복병이 있었으니 바로 '고추 따 먹는 할아버지'의 등장이었다.
그 할아버지는 그때 당시 유일하게 있었던 대흥 경노당으로 출근을 하셨다.
아침에 가셨다 오후에나 오셨는데 동네 관문인 사장나무를 지나서 가셨고
또 사장나무를 지나서 댁으로 돌아가셨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사장나무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할아버지의 목표물은 나 같은 여자 아이들은 철저히 열외였다.
고추라는 물건을 단 남자아이들의 그 고추가 할아버지의 최종목적지였다.
"이 놈들 고추 한 번 따 먹자" 크게 소리지르면서 할아버지가 쫓아오시면
놀이에 빠져 정신 없이 놀던 남자 아이들은 혼비 백산 하고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을 쳤다.
그도 그럴것이 운이 없거나 미처 놀이에 빠져 할아버지에게 뒷덜미를 붙들리는 날이면
끌려가서 곤혹을 치러야 했다.
할아버지 앞에 끌려가 차렷, 열중쉬어, 차렷을 당한 다음에 바지를 내리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다른 사람들이 다 보는 데서 떨어지는 명령을 수행하기란 쉽지 않았다.
수치심에 울먹울먹 망설이고 있노라며 가차없이 이어지는 할아버지의 다음 말
"말 안 들으면 고추 따 버린다." 그래도 망설이고 있노라며 이어지는
할아버지의 다음 행동,
허리 춤 이곳 저곳을 뒤적이며 "어 이놈의 칼이 어디 갔지?"
금방이라도 칼을 꺼낼듯한 기세 앞에 거의 공포의 경지에 다다른 아이는
주춤주춤 바지를 내리고....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 할아버지는 고추를 한 번 쓰~윽 쓰다듬은 다음 입에 손을 쪽 맞추고
"아따 고 놈 고추 꼬시네"하셨다.
할아버지는 목표를 달성하셔서 흐믓한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지으시고 지켜보는
우리들은 흥미진진했지만 당하는 당사자는 죽을맛이었으리라...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마는 아이도 더러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남자아이들에게 그 할아버지는저승사자보다 더 무섭고 절대로
잡히면 안되는 대상이 된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할아버지의 퇴근 시간이 정확하지가 않았고 또 가끔 경노당 안 가시는
날도 있어서 남자 아이들은 사장나무아래서 재미있게 놀다가도 한 번씩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여름 한 철 그 천국 같은 놀이터에 한 번 씩 나타나는 느닷 없는 폭풍같은 복병,
그래서 그 여름들은 더 흥미진진하고 즐거웠는지도 모른다.
얘기를 다 듣고 난 아들아이가 묻는다.
"엄마 그런데 고추를 따 버리면 어떻게 돼?"
"글쎄! 아마 아빠가 될 수 없을 걸"
"그런데 그 할아버지는 고추를 뭘로 따?"
"으~응 아~마 작은 주머니칼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을까?"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칼에 대해 이야기한다. 실감나는 이야기의 마무리를 위해....
아들아이는 더 이상 질문이 없다.
그 당시 남자아이들이 느꼈을 난감함과 공포를 느끼는지 아니면 잡히지 않을 방법들을
궁리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생각이 많은 얼굴이다.
그 때는 그냥 할아버지가 심심해서 장난삼아 괜히 그러시는 줄 알았던 행동들이 사실은
동네 아이들이 마냥 귀엽고 예뻐서 어쩔줄 모르셨던 할아버지만의 애정표현이었음을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되고 내 아들에게 같은 추억을 만들어 줄 사람이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고향통신에 따르면 지금은 하늘 나라에 가신 지 오래라는 할아버지의 명복을 빌며
아들과의 이야기를 접는다.
*알아 주는 이 있어 기쁜 마음으로 내가 누구이기를 말한다면
석정 김미방여사의 둘째딸이자 유철희의 누나 애자입니다.
그리고 순천댁으로 글을 올린 동생의 이름은 옥순이이고요.
엄마 어릴 때 얘기 해 주세요."
올해 아홉 살 난 아들아이가 조른다. 그래 엄마 어릴때는 말이지?......
나는 박하사탕영화처럼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돌린다
아들아이 나이쯤, 조금 더 나아가 더 어린 시절로......
그러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장나무와 화면 가득 펼쳐지는 수 많은 등장인물들....
그 속에서 오늘은 하얀 모시 한복을 깨끗하게 차려입고
여자 아이들에게는 그저 짖궂은 장난을 좋아하시는 재미있는 분 정도로,
하지만 또래의 남자 아이들에게는 저승사자보다 더 무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할아버지 한분을 만나볼까 한다.
아직도 자손들이 석정에서 살고 있는 관계로 누가 될까 하여 실명을 피하고
그냥 우리 동네에서 가장 잘 살았던 집 할아버지로 기억한다.
매미가 한창 우는 계절이면 온 동네 아이들, 특히 사장에서 가까이 사는 집 아이들은
거의 매일 사장나무 밑으로 출근을 해서 날이 저물도록 놀았다.
개작대기며 비석치기(일명돌쓰러뜨리기), 땅따먹기 ,나무타기, 꼼박질, 고무줄뛰기, 38선,
그리고 이름도 괴상한 붕알놀이등등... 그날 그날 생각나는대로 형편되는 대로
놀이 종류는 끝이 없었고 놀 친구가 있어 더 없이 좋았던 시절이었다.
한마디로 사장나무밑은 아이들의 천국이었다.
어디 아이들뿐이랴?
밭일 갯일에 바쁜 어른들에게도 오며 가며 시원한 그늘과 더불어 바람까지 서늘했던
사장나무밑은 꿀맛 같은 휴식을 제공하던 동네 쉼터였다.
잠깐씩 앉아 쉬면서 자식들 뛰어 노는 모습을 지켜 보는 재미도 쏠쏠했으리라.
노동의 일선에서 물러선 노인들이 한가롭게 앉아서 부채질을 하고
아이들의 함성소리가 끊이지 않아 생기 넘치던 이 여름 사장나무께에
한 가지 복병이 있었으니 바로 '고추 따 먹는 할아버지'의 등장이었다.
그 할아버지는 그때 당시 유일하게 있었던 대흥 경노당으로 출근을 하셨다.
아침에 가셨다 오후에나 오셨는데 동네 관문인 사장나무를 지나서 가셨고
또 사장나무를 지나서 댁으로 돌아가셨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사장나무를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할아버지의 목표물은 나 같은 여자 아이들은 철저히 열외였다.
고추라는 물건을 단 남자아이들의 그 고추가 할아버지의 최종목적지였다.
"이 놈들 고추 한 번 따 먹자" 크게 소리지르면서 할아버지가 쫓아오시면
놀이에 빠져 정신 없이 놀던 남자 아이들은 혼비 백산 하고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을 쳤다.
그도 그럴것이 운이 없거나 미처 놀이에 빠져 할아버지에게 뒷덜미를 붙들리는 날이면
끌려가서 곤혹을 치러야 했다.
할아버지 앞에 끌려가 차렷, 열중쉬어, 차렷을 당한 다음에 바지를 내리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다른 사람들이 다 보는 데서 떨어지는 명령을 수행하기란 쉽지 않았다.
수치심에 울먹울먹 망설이고 있노라며 가차없이 이어지는 할아버지의 다음 말
"말 안 들으면 고추 따 버린다." 그래도 망설이고 있노라며 이어지는
할아버지의 다음 행동,
허리 춤 이곳 저곳을 뒤적이며 "어 이놈의 칼이 어디 갔지?"
금방이라도 칼을 꺼낼듯한 기세 앞에 거의 공포의 경지에 다다른 아이는
주춤주춤 바지를 내리고....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 할아버지는 고추를 한 번 쓰~윽 쓰다듬은 다음 입에 손을 쪽 맞추고
"아따 고 놈 고추 꼬시네"하셨다.
할아버지는 목표를 달성하셔서 흐믓한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지으시고 지켜보는
우리들은 흥미진진했지만 당하는 당사자는 죽을맛이었으리라...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마는 아이도 더러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남자아이들에게 그 할아버지는저승사자보다 더 무섭고 절대로
잡히면 안되는 대상이 된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할아버지의 퇴근 시간이 정확하지가 않았고 또 가끔 경노당 안 가시는
날도 있어서 남자 아이들은 사장나무아래서 재미있게 놀다가도 한 번씩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여름 한 철 그 천국 같은 놀이터에 한 번 씩 나타나는 느닷 없는 폭풍같은 복병,
그래서 그 여름들은 더 흥미진진하고 즐거웠는지도 모른다.
얘기를 다 듣고 난 아들아이가 묻는다.
"엄마 그런데 고추를 따 버리면 어떻게 돼?"
"글쎄! 아마 아빠가 될 수 없을 걸"
"그런데 그 할아버지는 고추를 뭘로 따?"
"으~응 아~마 작은 주머니칼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을까?"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칼에 대해 이야기한다. 실감나는 이야기의 마무리를 위해....
아들아이는 더 이상 질문이 없다.
그 당시 남자아이들이 느꼈을 난감함과 공포를 느끼는지 아니면 잡히지 않을 방법들을
궁리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생각이 많은 얼굴이다.
그 때는 그냥 할아버지가 심심해서 장난삼아 괜히 그러시는 줄 알았던 행동들이 사실은
동네 아이들이 마냥 귀엽고 예뻐서 어쩔줄 모르셨던 할아버지만의 애정표현이었음을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되고 내 아들에게 같은 추억을 만들어 줄 사람이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고향통신에 따르면 지금은 하늘 나라에 가신 지 오래라는 할아버지의 명복을 빌며
아들과의 이야기를 접는다.
*알아 주는 이 있어 기쁜 마음으로 내가 누구이기를 말한다면
석정 김미방여사의 둘째딸이자 유철희의 누나 애자입니다.
그리고 순천댁으로 글을 올린 동생의 이름은 옥순이이고요.
너의글 감명 깊게 잘 읽었다.
어쩜 글 솜씨가 이렇게도 잘 썼니 ??
너의글을 보니 울 동네 사장께가 필름처럼
내 머리에 스쳐간다
몇십년만인지 셀수가 없구나..
넘 보고싶다..
옛날 학교 다닐때도 넌 아주 똑똑하구
날 항상 너의 따뜻한 손으로 나 손을 잡구
학교에 다녔었지..그땐 철이 없어서 그냥 손 잡구
다녔었는데..나의 그 차가운 손을 항상 따뜻하게 해줬어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니 넘 고마웠어..
애자야 !!너의 목소리라도 듣구 싶다.
어떻게 잘 살구 있지??
내가 전화 몇번했었는데
전번이 바꿨는지 통화가 되지 않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