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위를 호령하던 박치기왕. 하지만 일본에서 돌아올 때는 병들고 늙은 몸이었다. 을지병원에 머물며 치료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링위에서 팬들에게 인사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마지막 소원이다. 링을 떠난 것은 80년 5월. 제주도 경기후 링위에 서본 적이 없다. 5·18로 어수선했던 시절. 제주도에서 대규모 국제대회를 준비중이었다. 그때 제주도만 제외하고 전국적으로 계엄령이 내려졌다. 군중집회나 대규모 행사는 꿈도 못꿀 때였다. 하지만 이미 경기 포스터가 나붙었고 경기 당일 제주 공설운동장에는 관중들이 몰려들었다. 인산인해라고 할까. 어림잡아 5만명이 될 듯 싶었다. 계엄군들이 깜짝 놀랐다. 계엄령하에서 레슬링경기라니. 하지만 이미 모인 사람들을 되돌려 보낼 수도 없는 노릇. 오히려 이들을 해산시키면 한바탕 소동이 일어날 판이었다. 처음에는 바짝 긴장하던 군에서도 결국 경기를 진행하도록 허락했다.
그날이 마지막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이후 김일체육관이 문화방송으로 넘어가고 한때 장안동에 체육관을 세웠지만 그것도 어려웠다. 그때 나이가 52세.
병상에 있을 때 일본에서 연락이 왔다. 내 은퇴식을 일본에서 거행하자는 제의. 은퇴경기는 일본의 스포츠 기자단이 생각해낸 아이디어였다. 일본에 레슬링을 심어놓은 역도산과 그 뒤를 잇는 수제자. 오키 긴타로라는 이름으로 일본 레슬링계에서 이노키, 바바와 어깨를 겨루던 삼두마차.
일본에서는 내 경기를 보지 못했던 10∼20대의 젊은이들도 명성은 알고 있다.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기록까지 모두 줄줄 외댄다. 실제로 나는 역도산 선생이 가졌던 모든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WWA 챔피언, 인터내셔널 헤비급챔피언, 아시아 헤비급 챔피언 등. 이노키와 바바는 기록 면에서도 나보다 뒤진다.
행사는 일본 잡지사인 「벤츠모로 만가」의 이키다 사장이 주관했다.
95년 4월2일. 은퇴식은 동경돔에서 열렸다. 6만명이나 모였다. 모두 오키 긴타로를 연호했다. 링을 떠난 지 15년만에 은퇴식을 열다니. 고희를 앞둔 67세의 레슬러에게는 가장 기쁜 링이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휠체어를 타고 행사장에 들어갔다. 내 휠체어를 밀어준 사람은 바로 루 테스. 전설적인 헤비급 챔피언이었다. 그와도 미국에서 경기를 가진 적이 있었다. 60년대 중반쯤 미국 휴스턴에서 그와 겨뤘다. 하지만 실력을 판가름하지는 못했다. 관중이 던진 병에 내가 눈 언저리를 맞아 「닥터 스톱」으로 경기가 중단됐다. 그는 챔피언을 지낸 OB 모임의 회장이었다. 바바와 함께 수많은 레슬러가 참석했다. 라이벌 이노키는 불참했다.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됐던 사각의 링. 은퇴 레슬러를 위해 울려주는 12번의 공소리. 화려했던 레슬링 인생을 접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서는 갖지 못한 은퇴식. 고국의 링위에서 팬들에게 인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수많은 팬들의 연호속에서도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허전했다.<최병준 기자>
그날이 마지막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이후 김일체육관이 문화방송으로 넘어가고 한때 장안동에 체육관을 세웠지만 그것도 어려웠다. 그때 나이가 52세.
병상에 있을 때 일본에서 연락이 왔다. 내 은퇴식을 일본에서 거행하자는 제의. 은퇴경기는 일본의 스포츠 기자단이 생각해낸 아이디어였다. 일본에 레슬링을 심어놓은 역도산과 그 뒤를 잇는 수제자. 오키 긴타로라는 이름으로 일본 레슬링계에서 이노키, 바바와 어깨를 겨루던 삼두마차.
일본에서는 내 경기를 보지 못했던 10∼20대의 젊은이들도 명성은 알고 있다.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기록까지 모두 줄줄 외댄다. 실제로 나는 역도산 선생이 가졌던 모든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WWA 챔피언, 인터내셔널 헤비급챔피언, 아시아 헤비급 챔피언 등. 이노키와 바바는 기록 면에서도 나보다 뒤진다.
행사는 일본 잡지사인 「벤츠모로 만가」의 이키다 사장이 주관했다.
95년 4월2일. 은퇴식은 동경돔에서 열렸다. 6만명이나 모였다. 모두 오키 긴타로를 연호했다. 링을 떠난 지 15년만에 은퇴식을 열다니. 고희를 앞둔 67세의 레슬러에게는 가장 기쁜 링이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휠체어를 타고 행사장에 들어갔다. 내 휠체어를 밀어준 사람은 바로 루 테스. 전설적인 헤비급 챔피언이었다. 그와도 미국에서 경기를 가진 적이 있었다. 60년대 중반쯤 미국 휴스턴에서 그와 겨뤘다. 하지만 실력을 판가름하지는 못했다. 관중이 던진 병에 내가 눈 언저리를 맞아 「닥터 스톱」으로 경기가 중단됐다. 그는 챔피언을 지낸 OB 모임의 회장이었다. 바바와 함께 수많은 레슬러가 참석했다. 라이벌 이노키는 불참했다.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됐던 사각의 링. 은퇴 레슬러를 위해 울려주는 12번의 공소리. 화려했던 레슬링 인생을 접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서는 갖지 못한 은퇴식. 고국의 링위에서 팬들에게 인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수많은 팬들의 연호속에서도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허전했다.<최병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