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딸이 넷이다.
바람 많은 동네 녹동에 사는 언니와 둘째인 나, 셋째인 아싸! 태양, 그리고 까르페디엠(오늘을 즐겨라)
이라는 멋진 닉네임으로 석정 카페에 상큼한 글을 올렸던 막내까지.
이 자매들과 울고 웃으면서 함께 자랐고 또 사이좋게 같이 늙어 갔으면 좋겠다.
때로는 동지로 때로는 경쟁자로 외로울 때는 좋은 길동무로,
결혼을 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이만큼 좋은 인간관계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설명이 필요 없는 관계, 깊은 애정과 이해와 동지애를 느끼는 내 분신 같은 존재들,
자매들이란 그런 존재가 아닌가 싶다.
남들이 보면 상당히 닮은 것 같이 보이는 자매들이 태어나는 순서에 따라
아주 특징적인 독특한 면모를 보이는데 이것은 비단 우리 집만의 문제가 아니고 대부분의
형제 많은 집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어서 한 번 정리해 보기로 한다.
먼저 첫째,
주위의 모든 시선과 관심을 한 몸에 받고 태어난다.
젊은 부부의 시행착오의 대상이 대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더 넘치는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축복 속에서 왕으로 대접받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일단은 긍정적인 자아가 형성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계속될 줄 알았던 이런 행복은 둘째가 태어나면서 갑자기 막을 내리고
주위의 관심과 시선을 둘째에게 허무하게 뺏기게 된다.
부모에게 말할 수 없는 섭섭함과 배신감을 느끼게 되고 새로 생긴 동생을 향한
시기와 적대감으로 몹시 혼란스럽고 힘든 시기를 경험하게 된다.
타개책으로 부모에게 치대 보기도 하고 동생을 괴롭혀 보기도 하지만 점점 세월이 흐르면서
현실을 인정하게 되고 양보를 배우게 된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셋째 넷째 동생이 태어나면 그때부터는 부모로부터 끊임없이
첫째의 책임감이 주입되고 행동으로 나타내 보이기를 강요당한다.
그 결과 점점 주위의 눈치를 보면서 나를 못 들어내고 주장이 약해져 가면서
아이 어른이 되어야하는 장녀의 고달픔이 시작된다.
세상을 보는 시점도 나보다는 부모님과 동생들의 입장까지도 헤아리는 사려 깊음을
보이지만 그로인해 행동이 많은 제약을 당하고 소심해져서
돈키호테보다는 햄릿형에 가까운 사람이 된다.
배려가 많고 신중하지만 쉽사리 행동으로 옮기지 못해 추진력이 떨어진다.
도전보다는 안정적인 체념을 택하고 그래서 둘째의 비난을 사기도 한다.
양보를 안하려고 하는 둘째의 기가 너무 강하면 사는 것이 상당히 피곤해진다.
되도록이면 봐줄려고 애쓰지만 마음속으로는 심히 부담스럽고 외롭다.
드물게 첫째중에서 활동적이며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본인의 기본 자질이 출중하게 뛰어났거나
첫째의 권위를 세워주려고 의도적으로 사사건건 둘째의 기를 죽였던
부모님들이 존재하고 있는 경우이다.
둘째, 태어나자마자 막강한 경쟁자가 버티고 있다.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면 어떻게 해서든지 경쟁자를 제쳐야 하기 때문에
투쟁적이 될 수밖에 없다. 경쟁자보다 신체적으로도 그렇고 서열상으로도 불리하다고
판단하고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두 동원하면서 승부욕을 불태운다.
둘째에게 있어 첫째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뛰어 넘어야 할 대상이다.
그래야 부모님이나 주위의 시선과 관심이 자신의 차지가 될 것 같으니까?
둘째의 비극은 타협을 모른다는 것이다. 강경 일변도의 투쟁노선을 선택하기 때문에
격하고 고집스러우며 도전적인 성향으로 자라게 된다.
세상을 보는 시점도 부모나 형제가 아닌 나부터 시작하고 몹시 독립적이며 외골수적인 기질은
셋째가 태어나도 양보를 배우지 않는다.
셋째는 깊게 생각해볼 가치도 없는 첫째에 이어 나타난 새로운 경쟁자일 뿐이다.
단지 나보다 힘이 약한, 그래서 만만하긴 하지만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위로는 치받아야 하고 아래로는 누르는 것만이 내가 살길이다라고 느끼면서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자라다 보니까 둘째들은 중간이 없고 독립적이며 도전적인 자아가 형성이 된다.
둘째는 판단과 행동이 빠르며 승부욕과 도전적인 기질때문에 대체로 머리가 좋다는 평가를 받으며
일찍 주목을 받거나 아니면 집안의 문제아가 되는 둘 중의 하나가 된다.
일찍 주목을 받은 둘째는 자긍심이 몹시 강한 사람으로 살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기가 잘 죽지 않지만
문제아로 낙인이 찍히면 울분에 가까운 피해의식을 느끼며 부정적인 자아를 갖는다.
둘째는 스스로 택한 투쟁노선으로 인해 굳어진 성격때문에 주위와 잘 화합을 하지 못하고 고단하게 산다.
예민하고 한 성질하는 것이 둘째의 큰 특징중의 하나이다.
드물게 아주 순한 둘째들이 있는데 그것은 첫째가 너무 크고 높은 산이어서
게임이 안 되어 일찍 꼬리를 내린 경우이다.
셋째, 둘째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 태어난다.
막강한 경쟁자가 두 명이나 된다. 게임이 안 되는 첫째와 성질 더러운 둘째까지,
그래서 빨리 타협을 배운다. 사랑과 관심을 받으려는 본능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재빨리
틈새를 파고드는 전략이 자기가 갈 길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셋째에게 있어 둘째는 좋은 반면교사다.
강경노선 때문에 끊임없이 깨지고 야단맞는 둘째를 보면서 확실하게 그 반대의 노선을 선택한다.
시끄러운 것을 싫어해서 멧돼지처럼 정면승부를 하는 둘째에게
좋은 점수를 주지 않지만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내색을 하지도 않는다.
잘못 건드리면 되로 주고 말로 받기 때문에 참고 받아 주는 척 하면서 오히려
둘째를 선봉에 내세우며 자기의 잇속을 챙긴다.
둘째가 도전적이면서 이상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셋째는 순종적이면서 몹시 현실적이다.
둘째와 셋째가 싸우게 되면 둘째는 이기는데 목숨을 걸고 셋째는 싸워서 얻는 이익에 더 민감하다.
얼핏 보면 순종적이고 착해 보이지만 겉과 속이 따로 노는 유형이 많고
자기 속을 잘 드러내지 않아서 가끔씩 뒤통수치는 딸들 중에 셋째가 많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향이 비슷한 첫째와는 비교적 잘 지내고 호의적이지만
내면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첫째가 이타에서 시작을 하고 주변을 많이 생각한다면 세째는 철저히 이기로 시작을 하고
표현을 안해서 잘 나타나지 않을뿐이지 둘째보다 훨씬 더 자기 중심적이다.
자기 자신의 일이 아닌 것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과격함과 기에 눌려서 표현을 잘 못하지만 둘째에게 불만이 많고 잘 지내지 못한다.
세째에게 있어 둘째는 멀리 하고픈 당신이다.
그리고 태생적인 서열의 불리함으로 인해
마음속에 뚜렷한 대상이 없는 허기진 피해의식을 가지고 산다.
세째는 '세째딸은 얼굴도 안보고 며느리로 데려 간다'라는 옛말이 있을 정도로 순종적이고
착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것은 밖으로 드러난 모습이고 내면적으로는
누구보다도 주목을 받고 싶어하고 인정을 받고 싶어한다.
딸많은 집에서 용모가 뛰어나게 예뻐서 주목을 받는 세째들이 있는데
이렇게 되면 악의적인 둘째의 시기와 견제때문에 사는 것이 좀 피곤해진다.
넷째, 일찌감치 경쟁은 포기한다. 대신에 감성적으로 접근한다.
애교와 눈물과 웃음과 어리광등, 막내들이 특히 웃음과 눈물이 많은데
어렸을때부터 써먹은 도구들이 그대로 정착이 되어서 그렇지 않나 싶다.
막내에게는 늦게 본 자식이라는 부모의 애잔함과 첫째의 후원이 상당한 프리미엄이 된다.
감성적인 귀여움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다정다감하다.
둘째와 셋째가 독립적인데 비해 많이 의존적이며 주위의 눈치를 보는 경향이 있고
일관성이 적다. 그때그때 부모나 언니들의 기분을 맞추어 주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 그 수단이 필요에 따라 애교나 웃음이 될 수도 있고 눈물이 되기도 하는데
자신의 의사에 따른 필요가 아니라 상대의 상태에 맞추어진 필요이다.
셋째는 만만해서 한 번씩 건드려 보지만 첫째나 둘째에게 도전할 생각은 일찍 접어 버리고
차라리 어리광이나 귀여움으로 승부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첫째나 한 성질하는 둘째도 네째에게는 한 수 접어준다.
간혹 막내 중에 성질이 아주 고약하거나 일명 몽니를 심하게 부리는 사람이 있는데
막내의 주무기인 감성과 어리광이 안 먹히고 외면당하는데서 오는
최후의 발악이라고 보면 된다.
막내의 세상 보는 시점 역시 자기중심적이면서 받는 것에 익숙하다.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내 것도 나만의 것이어야 한다.
넷 중에 욕심이 제일 많다.
둘째와 셋째가 자기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투쟁하고 노력하되 자기 밥그릇에서
만족하는 대신 막내는 거절하는 법이 없고 주면 주는 대로 받아 챙기면서도
항상 웬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며 산다.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라서 마음속에 세째 같은 그늘은 없지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어디 도움받을때 없나 하는 생각을 먼저 한다.
행동으로 옮기고 안 옮기고는 그 다음 문제다.
이렇게 자라난 네 자매는 부모와의 관계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데
자신의 주장과 부모의 의견이 달라 부모님들이 네 자매를 불러 앉혀놓고
야단을 치노라면 다음과 같은 양상을 보이며 그 성격을 들어낸다.
첫째, 일단 바른 자세로 앉는다.
자신의 주장이 맞다는 생각을 하여도 부모님들의 입장과 마음을 헤아리고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잘못을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뉘우친다.
할 말이 있어도 동생들 앞에서 차마 대놓고 하지 못하고 죄송한 마음으로
진심으로 듣고 있다.
둘째, 미처 자세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
고개를 치켜들고 자신의 주장을 열심히 펼친다.
그래도 안 통한다 싶으면 부모님의 의견에 대한 반론도 서슴없이 펼친다.
부모의 입장이나 형제들의 입장보다 내입장이 우선이며 들으려는 마음보다
내 할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과격한 육탄전이 오갈 수 있는 상황도 불사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셋째, 첫째처럼 바른 자세로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이 없다.
얼핏 보기에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야단이 길어지면 셋째는 딴 생각을 하고 앉아 있다.
이 야단이 언제 끝날지 헤아리기도 하고 전혀 다른 생각을 하기도 한다.
뜻이 같으면 소리 없이 둘째를 응원하기도 하지만 본인은 절대 나서지 않는다.
둘째가 셋째를 안 좋아하는 이유이다.
야단맞는 시간이 길어지면 앉아서 졸수도 있는사람이 셋째다.
넷째, 먼저 분위기를 살핀다.
부모님의 기분 상태를 체크하고 나서 애교 작전으로 나가야 할지
눈물 작전으로 나가야 할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결정이 되면 부모님 바지 가랑이를 잡고 행동에 들어간다.
자기의 주장이나 반성은 그 다음 다음 단계의 일이다.
부모님들이 진짜로 속상하고 슬퍼하면 그 감정에 전이되어
더 크게 통곡하고 꺼이꺼이 울기도 한다.
그리고 상황이 종료되면 바로 돌아서서 언제 울었냐는 듯이
누구보다도 활짝 웃을 수 있는 사람도 넷째이다.
이상으로 네 자매들의 특징을 간추려 보았다.
극단적으로 분류가 되기는 하였지만 내가 직접 겪어 보기도 하고 또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나름대로 터득한 것들을 글로 정리해 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매뿐만이 아니라 형제 수가 많은 형제들에게도 적용이 되며
내 경험상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아서 사람을 파악하는데
많이 참작을 한다.
물론 한 사람의 인격이 완성되려면 여러 가지 요인 들이 모여서 복합적으로 작용을
하기 때문에 태어난 서열 하나 가지고 이렇다 하고 단정적으로 말을 하는 것은
확실히 좀 무리가 있다.
그리고 서열에 따른 장단점이 너무나 다르며 상호보완적이어서 네 자매들이 모여야만
완벽한 하모니가 되는바 누가 제일 괜찮은지를 따져 보는 것 또한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형제 서열만큼 간단하면서도 성격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요인도 그렇게
흔하지 않은 것 같아 한 번 파헤쳐 보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적어 본 것이다.
끝으로 모든 일에는 반드시 예외 없는 법칙이 없고 돌연변이라는 변수도 있어서
네 자매 이야기와 다른 형제자매를 둔 사람들도 적지 않을 터,
이 글과 다르더라도 나에게 정색하고 따지지는 말기를......
왜냐하면 이 글은 무슨 심오한 연구 끝에 나온 학설도 아니고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담을
순전히 내 주관적인 판단으로 분류하고 정리한 ~~카~데 하는 통신일 뿐이니
공감되면 한번 씩 웃어 주고 아니더라도 그냥 관대하게 넘어가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글을 읽으면서 틀림없이 자기 자신과 형제들을 한 번 대입시켜 보았을터
빠진 부분을 댓글로 첨가해 주신다면 이어서 자매들 이야기2가 나올지 또 누가 아는가?
바람 많은 동네 녹동에 사는 언니와 둘째인 나, 셋째인 아싸! 태양, 그리고 까르페디엠(오늘을 즐겨라)
이라는 멋진 닉네임으로 석정 카페에 상큼한 글을 올렸던 막내까지.
이 자매들과 울고 웃으면서 함께 자랐고 또 사이좋게 같이 늙어 갔으면 좋겠다.
때로는 동지로 때로는 경쟁자로 외로울 때는 좋은 길동무로,
결혼을 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이만큼 좋은 인간관계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설명이 필요 없는 관계, 깊은 애정과 이해와 동지애를 느끼는 내 분신 같은 존재들,
자매들이란 그런 존재가 아닌가 싶다.
남들이 보면 상당히 닮은 것 같이 보이는 자매들이 태어나는 순서에 따라
아주 특징적인 독특한 면모를 보이는데 이것은 비단 우리 집만의 문제가 아니고 대부분의
형제 많은 집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어서 한 번 정리해 보기로 한다.
먼저 첫째,
주위의 모든 시선과 관심을 한 몸에 받고 태어난다.
젊은 부부의 시행착오의 대상이 대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더 넘치는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축복 속에서 왕으로 대접받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일단은 긍정적인 자아가 형성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계속될 줄 알았던 이런 행복은 둘째가 태어나면서 갑자기 막을 내리고
주위의 관심과 시선을 둘째에게 허무하게 뺏기게 된다.
부모에게 말할 수 없는 섭섭함과 배신감을 느끼게 되고 새로 생긴 동생을 향한
시기와 적대감으로 몹시 혼란스럽고 힘든 시기를 경험하게 된다.
타개책으로 부모에게 치대 보기도 하고 동생을 괴롭혀 보기도 하지만 점점 세월이 흐르면서
현실을 인정하게 되고 양보를 배우게 된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셋째 넷째 동생이 태어나면 그때부터는 부모로부터 끊임없이
첫째의 책임감이 주입되고 행동으로 나타내 보이기를 강요당한다.
그 결과 점점 주위의 눈치를 보면서 나를 못 들어내고 주장이 약해져 가면서
아이 어른이 되어야하는 장녀의 고달픔이 시작된다.
세상을 보는 시점도 나보다는 부모님과 동생들의 입장까지도 헤아리는 사려 깊음을
보이지만 그로인해 행동이 많은 제약을 당하고 소심해져서
돈키호테보다는 햄릿형에 가까운 사람이 된다.
배려가 많고 신중하지만 쉽사리 행동으로 옮기지 못해 추진력이 떨어진다.
도전보다는 안정적인 체념을 택하고 그래서 둘째의 비난을 사기도 한다.
양보를 안하려고 하는 둘째의 기가 너무 강하면 사는 것이 상당히 피곤해진다.
되도록이면 봐줄려고 애쓰지만 마음속으로는 심히 부담스럽고 외롭다.
드물게 첫째중에서 활동적이며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본인의 기본 자질이 출중하게 뛰어났거나
첫째의 권위를 세워주려고 의도적으로 사사건건 둘째의 기를 죽였던
부모님들이 존재하고 있는 경우이다.
둘째, 태어나자마자 막강한 경쟁자가 버티고 있다.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면 어떻게 해서든지 경쟁자를 제쳐야 하기 때문에
투쟁적이 될 수밖에 없다. 경쟁자보다 신체적으로도 그렇고 서열상으로도 불리하다고
판단하고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두 동원하면서 승부욕을 불태운다.
둘째에게 있어 첫째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뛰어 넘어야 할 대상이다.
그래야 부모님이나 주위의 시선과 관심이 자신의 차지가 될 것 같으니까?
둘째의 비극은 타협을 모른다는 것이다. 강경 일변도의 투쟁노선을 선택하기 때문에
격하고 고집스러우며 도전적인 성향으로 자라게 된다.
세상을 보는 시점도 부모나 형제가 아닌 나부터 시작하고 몹시 독립적이며 외골수적인 기질은
셋째가 태어나도 양보를 배우지 않는다.
셋째는 깊게 생각해볼 가치도 없는 첫째에 이어 나타난 새로운 경쟁자일 뿐이다.
단지 나보다 힘이 약한, 그래서 만만하긴 하지만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위로는 치받아야 하고 아래로는 누르는 것만이 내가 살길이다라고 느끼면서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자라다 보니까 둘째들은 중간이 없고 독립적이며 도전적인 자아가 형성이 된다.
둘째는 판단과 행동이 빠르며 승부욕과 도전적인 기질때문에 대체로 머리가 좋다는 평가를 받으며
일찍 주목을 받거나 아니면 집안의 문제아가 되는 둘 중의 하나가 된다.
일찍 주목을 받은 둘째는 자긍심이 몹시 강한 사람으로 살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기가 잘 죽지 않지만
문제아로 낙인이 찍히면 울분에 가까운 피해의식을 느끼며 부정적인 자아를 갖는다.
둘째는 스스로 택한 투쟁노선으로 인해 굳어진 성격때문에 주위와 잘 화합을 하지 못하고 고단하게 산다.
예민하고 한 성질하는 것이 둘째의 큰 특징중의 하나이다.
드물게 아주 순한 둘째들이 있는데 그것은 첫째가 너무 크고 높은 산이어서
게임이 안 되어 일찍 꼬리를 내린 경우이다.
셋째, 둘째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 태어난다.
막강한 경쟁자가 두 명이나 된다. 게임이 안 되는 첫째와 성질 더러운 둘째까지,
그래서 빨리 타협을 배운다. 사랑과 관심을 받으려는 본능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재빨리
틈새를 파고드는 전략이 자기가 갈 길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셋째에게 있어 둘째는 좋은 반면교사다.
강경노선 때문에 끊임없이 깨지고 야단맞는 둘째를 보면서 확실하게 그 반대의 노선을 선택한다.
시끄러운 것을 싫어해서 멧돼지처럼 정면승부를 하는 둘째에게
좋은 점수를 주지 않지만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내색을 하지도 않는다.
잘못 건드리면 되로 주고 말로 받기 때문에 참고 받아 주는 척 하면서 오히려
둘째를 선봉에 내세우며 자기의 잇속을 챙긴다.
둘째가 도전적이면서 이상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셋째는 순종적이면서 몹시 현실적이다.
둘째와 셋째가 싸우게 되면 둘째는 이기는데 목숨을 걸고 셋째는 싸워서 얻는 이익에 더 민감하다.
얼핏 보면 순종적이고 착해 보이지만 겉과 속이 따로 노는 유형이 많고
자기 속을 잘 드러내지 않아서 가끔씩 뒤통수치는 딸들 중에 셋째가 많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향이 비슷한 첫째와는 비교적 잘 지내고 호의적이지만
내면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첫째가 이타에서 시작을 하고 주변을 많이 생각한다면 세째는 철저히 이기로 시작을 하고
표현을 안해서 잘 나타나지 않을뿐이지 둘째보다 훨씬 더 자기 중심적이다.
자기 자신의 일이 아닌 것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과격함과 기에 눌려서 표현을 잘 못하지만 둘째에게 불만이 많고 잘 지내지 못한다.
세째에게 있어 둘째는 멀리 하고픈 당신이다.
그리고 태생적인 서열의 불리함으로 인해
마음속에 뚜렷한 대상이 없는 허기진 피해의식을 가지고 산다.
세째는 '세째딸은 얼굴도 안보고 며느리로 데려 간다'라는 옛말이 있을 정도로 순종적이고
착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것은 밖으로 드러난 모습이고 내면적으로는
누구보다도 주목을 받고 싶어하고 인정을 받고 싶어한다.
딸많은 집에서 용모가 뛰어나게 예뻐서 주목을 받는 세째들이 있는데
이렇게 되면 악의적인 둘째의 시기와 견제때문에 사는 것이 좀 피곤해진다.
넷째, 일찌감치 경쟁은 포기한다. 대신에 감성적으로 접근한다.
애교와 눈물과 웃음과 어리광등, 막내들이 특히 웃음과 눈물이 많은데
어렸을때부터 써먹은 도구들이 그대로 정착이 되어서 그렇지 않나 싶다.
막내에게는 늦게 본 자식이라는 부모의 애잔함과 첫째의 후원이 상당한 프리미엄이 된다.
감성적인 귀여움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다정다감하다.
둘째와 셋째가 독립적인데 비해 많이 의존적이며 주위의 눈치를 보는 경향이 있고
일관성이 적다. 그때그때 부모나 언니들의 기분을 맞추어 주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 그 수단이 필요에 따라 애교나 웃음이 될 수도 있고 눈물이 되기도 하는데
자신의 의사에 따른 필요가 아니라 상대의 상태에 맞추어진 필요이다.
셋째는 만만해서 한 번씩 건드려 보지만 첫째나 둘째에게 도전할 생각은 일찍 접어 버리고
차라리 어리광이나 귀여움으로 승부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첫째나 한 성질하는 둘째도 네째에게는 한 수 접어준다.
간혹 막내 중에 성질이 아주 고약하거나 일명 몽니를 심하게 부리는 사람이 있는데
막내의 주무기인 감성과 어리광이 안 먹히고 외면당하는데서 오는
최후의 발악이라고 보면 된다.
막내의 세상 보는 시점 역시 자기중심적이면서 받는 것에 익숙하다.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내 것도 나만의 것이어야 한다.
넷 중에 욕심이 제일 많다.
둘째와 셋째가 자기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투쟁하고 노력하되 자기 밥그릇에서
만족하는 대신 막내는 거절하는 법이 없고 주면 주는 대로 받아 챙기면서도
항상 웬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며 산다.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라서 마음속에 세째 같은 그늘은 없지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어디 도움받을때 없나 하는 생각을 먼저 한다.
행동으로 옮기고 안 옮기고는 그 다음 문제다.
이렇게 자라난 네 자매는 부모와의 관계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데
자신의 주장과 부모의 의견이 달라 부모님들이 네 자매를 불러 앉혀놓고
야단을 치노라면 다음과 같은 양상을 보이며 그 성격을 들어낸다.
첫째, 일단 바른 자세로 앉는다.
자신의 주장이 맞다는 생각을 하여도 부모님들의 입장과 마음을 헤아리고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잘못을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뉘우친다.
할 말이 있어도 동생들 앞에서 차마 대놓고 하지 못하고 죄송한 마음으로
진심으로 듣고 있다.
둘째, 미처 자세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다.
고개를 치켜들고 자신의 주장을 열심히 펼친다.
그래도 안 통한다 싶으면 부모님의 의견에 대한 반론도 서슴없이 펼친다.
부모의 입장이나 형제들의 입장보다 내입장이 우선이며 들으려는 마음보다
내 할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과격한 육탄전이 오갈 수 있는 상황도 불사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셋째, 첫째처럼 바른 자세로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이 없다.
얼핏 보기에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야단이 길어지면 셋째는 딴 생각을 하고 앉아 있다.
이 야단이 언제 끝날지 헤아리기도 하고 전혀 다른 생각을 하기도 한다.
뜻이 같으면 소리 없이 둘째를 응원하기도 하지만 본인은 절대 나서지 않는다.
둘째가 셋째를 안 좋아하는 이유이다.
야단맞는 시간이 길어지면 앉아서 졸수도 있는사람이 셋째다.
넷째, 먼저 분위기를 살핀다.
부모님의 기분 상태를 체크하고 나서 애교 작전으로 나가야 할지
눈물 작전으로 나가야 할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결정이 되면 부모님 바지 가랑이를 잡고 행동에 들어간다.
자기의 주장이나 반성은 그 다음 다음 단계의 일이다.
부모님들이 진짜로 속상하고 슬퍼하면 그 감정에 전이되어
더 크게 통곡하고 꺼이꺼이 울기도 한다.
그리고 상황이 종료되면 바로 돌아서서 언제 울었냐는 듯이
누구보다도 활짝 웃을 수 있는 사람도 넷째이다.
이상으로 네 자매들의 특징을 간추려 보았다.
극단적으로 분류가 되기는 하였지만 내가 직접 겪어 보기도 하고 또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나름대로 터득한 것들을 글로 정리해 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매뿐만이 아니라 형제 수가 많은 형제들에게도 적용이 되며
내 경험상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아서 사람을 파악하는데
많이 참작을 한다.
물론 한 사람의 인격이 완성되려면 여러 가지 요인 들이 모여서 복합적으로 작용을
하기 때문에 태어난 서열 하나 가지고 이렇다 하고 단정적으로 말을 하는 것은
확실히 좀 무리가 있다.
그리고 서열에 따른 장단점이 너무나 다르며 상호보완적이어서 네 자매들이 모여야만
완벽한 하모니가 되는바 누가 제일 괜찮은지를 따져 보는 것 또한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형제 서열만큼 간단하면서도 성격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요인도 그렇게
흔하지 않은 것 같아 한 번 파헤쳐 보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적어 본 것이다.
끝으로 모든 일에는 반드시 예외 없는 법칙이 없고 돌연변이라는 변수도 있어서
네 자매 이야기와 다른 형제자매를 둔 사람들도 적지 않을 터,
이 글과 다르더라도 나에게 정색하고 따지지는 말기를......
왜냐하면 이 글은 무슨 심오한 연구 끝에 나온 학설도 아니고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담을
순전히 내 주관적인 판단으로 분류하고 정리한 ~~카~데 하는 통신일 뿐이니
공감되면 한번 씩 웃어 주고 아니더라도 그냥 관대하게 넘어가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글을 읽으면서 틀림없이 자기 자신과 형제들을 한 번 대입시켜 보았을터
빠진 부분을 댓글로 첨가해 주신다면 이어서 자매들 이야기2가 나올지 또 누가 아는가?
언젠가 석정마을에 가서 글을 읽고는
너무 글 잘쓰는 후배가 있구나 생각했었는데
녹동댁, 앗싸태양님 등과 같은 자매였다는 사실과
울산댁의 이름 등까지도 알아버린 일종의 팬이랄까
뭐 그런 생각까지 하게되었네요.
막내님의 글은 보질 못했지만 어쩜 자매들이 이렇게
글을 잘 쓸 수가 있을까? 부럽기도 하고 또 기다려지기도
하였네요.
영원히 컴을 접하지 않고 이렇게 다시 뵙게되어
무지 반갑구려.....
향후에도 계속적으로 좋은 글들 많이 올려주기
부탁드리며 제발 컴을 접한다는 등 그런 생각은
하시질 말기를 바라네요
즐거운 주말이고 햇살 따가운 가을 좋은 날씨속에
행복한 시간들 가지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