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4~5년 전 봄에 있었던 일이다.
보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은 한 회지에 실린 글을 한 편 읽게 되었다.
‘봄 편지’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수필로 딸을 셋 키우는 30대 중반의 아줌마가
아침에 눈을 뜨면서 시작되는 하루의 일상과 봄을 맞는 감회를 적은 글이었다.
그 회지의 일원으로서 우편으로 날아 온 회지 속에서 발견한 글이었는데
.상큼한 봄날을 5월의 신록 같은 색깔로 노래하면서 잔잔하지만 따분한
아줌마의 일상과 추억을 이야기하고 이 봄이 가기 전에 그리운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비슷한 나이 때문인지 내용도 너무나 공감이 가고
느낌이 그렇게 맑고 상큼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 글을 읽자마자 첫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그 글에 매료되었다.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지만 읽을수록 그 느낌이 배가 되었다.
이런 사람에게서 이 봄에 편지를 받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마음이 설레이고
이름밖에 모르는 그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그 ‘봄 편지’를 받고 싶어서...
그도 아니면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었다.
이렇게 맑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니까 이야기를 나눌 수만 있다면
정말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차마 편지를 쓸 용기를 내지는 못하고 만난다는 것은 더더욱...
몹시 아쉬웠지만 그냥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려니 싶었다.
그러다가 한 달에 한번씩 만나는 모임에서 우연히 그 사람을 만나는
행운을 맛보게 되었다.
처음 만난 날 다른 사람의 소개로 그 글을 쓴 사람임을 알게 되었고
너무나 반가워서 가슴이 다 벌렁거렸다.
차마 다가가서 아는 체를 못하고 그냥 간단하게 인사만 했다.
너무 좋아 하면 표현하는데 더 서툴러 지는 법이니까...
그저 만날 때 마다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그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궁리를 했다.
그런데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나는 점점 사기를 당한 기분이 들었다.
먼저 그 모임에 참석한 동기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정식 멤버가 아니었는데 상큼한 봄 편지의 주인공이 좋아하는 아저씨(유부남)가
그 모임의 멤버여서 덩달아 참석을 하는 모양이었다.
매 달 회의를 하고 다음 달 계획을 세우는 조금은 건조한 모임이었는데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참석하여 공공연하게 그 아저씨는 자기가 좋아하니까
아무도 넘보지 말라는 영역표시를 선언하고(내가 알기론 분명 다른 남편에 세 아이가
있는 유부녀였다.)무슨 자유부인인양 사람들 앞에서 애정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그래도 참아야지 싶었다. 글을 워낙 잘 쓰니까...
그런데 봐 주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모임 자체가 살림살이를 해야 하는 모임인지라 할 일이 많았는데
나 몰라라 하면서 외면을 하기 일쑤였다.
참석자 중에서 나이가 적은 편이 아닌데도 주위를 살피지 않고
너무나 무책임하게 행동을 하며 자기감정에 충실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민망해질 만큼 자유분방하게 행동하면서
그것을 즐기는 듯 해서 정말 그 글을 쓴 사람이 맞나 의심이 생길 정도였다.
회지에 글은 계속 발표되고, 글은 여전히 맑고 아름다웠다.
나는 갈수록 헷갈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저 사람의 실체는 뭔가?
몇 달이 흐른 후 그 모임이 1박 2일로 합숙을 떠나게 되었다.
폐교된 산골학교로,
비슷한 성격의 여러 모임이 함께 참가하기에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아서
당시 아직 어리던 아들아이를 데리고 같이 참가를 하였다.
아줌마가 된 뒤로 처음 그런 데를 참석하는 터라 해방감도 느끼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도 다양해서 참가하기를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골의 공기도 맑고, 경치도 좋고, 식당까지 잘 갖추어져 있어서 밥을 안 해도 된다는
뿌듯함까지 겹쳐 행복하기 까지 했다.
아들아이 때문에 마음껏 자유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아들이랑 함께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밤이 되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술자리가 벌어 졌다.
폐교를 합숙 시설로 만들었기 때문에 교실 하나를 방으로 바꾸어서
남녀 모두 한 방에 넓게 자리를 잡았다.
어차피 잠을 잔다는 생각은 다들 별로 하지 않아서 크게 신경을 쓰는 사람도 없었다.
잠을 못 견디는 사람은 그냥 구석에서 몸을 누여도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고
자유스러운 분위기 였다.
나는 아들아이 때문에 술자리에 끼지는 못하고 구석에서 과자랑
과일을 먹으면서 놀았다. 술이 안 되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봄 편지의 주인공은 좋아한다는 아저씨와 함께 적극적으로 술자리에 동참을 했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수록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지고 그때까지는 나무랄것이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하나 둘 취해갔다.
내 봄 편지의 주인공도......
그리고 그 밤이 다 지나기 전에 나는 늦은 나이에 찾아온 내 짝사랑에
확실하게 마침표를 찍었다.
사람이 술을 마시면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가를 그 남녀는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고
나는 더 이상 그들을 보고 싶지 않아 오랫동안 폐교의 운동장을 거닐었다.
눈을 붙이지 않고 뜬눈으로 그 밤을 새고 난 다음 날 나는 말이 하기가 싫어졌다.
밤이 늦도록 주사를 부리다가 새벽녘에 잠이 든 봄 편지의 주인공은
늦은 아침에 깨워서야 일어나면서도 아무에게도 사과를 하지 않았고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합숙훈련에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 모임을
그만 두었고 그 해 공단문학제(울산에서는 꽤 알아준다.)에서 그 봄 편지의 주인공이
수필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정식 수필가 이름을 달고 쓴 그녀의 글을
울산의 대표적인 지방지에서 읽게 되었다.
그녀의 글은 처음의 감동은 없었지만 여전히 반할 정도로 해맑고 아름다웠다.
거짓말처럼......
그 봄 편지의 후유증으로 나는 글을 쓴다는 사람을 만나면
왠지 경계하는 버릇이 생겼다.
글과 작가가 동일하지 않으며 글 쓰는 것도 머리를 자르는 미용기술처럼
하나의 재주에 불과하다는 것을 너무나 큰 실망을 겪은 다음에
알게 되어서인지 아니면 다른 직업보다 기대치가 높아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글을 쓴다는 사람을 만나면 웬지 호의적이지 않고 인색해졌다.
어쩌다 자칭 글을 쓴다면서 현역에서 활동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속으로 그 글로 얼마만큼 사기를 치며 사는지 묻고 싶어진다.
이처럼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던 내가
아주 우연찮게 이곳에 글을 쓰게 되고 그 글들이 계속 이어지면서
분에 넘치게 격려를 해 주는 고마운 사람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러자 내 지난날을 떠올리게 되었고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봄 편지의 주인공이
되는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비겁한 마음에 선수를 친다.
글의 향기와 그 글을 쓴 사람의 향기는 같지 않다고......
무엇보다 내 뿌리가 다 공개되고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을 상대로 글을 쓴다는 것이
그렇게 만만치 않음을 절감한다.
다른사람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게 써야 하지만 나 또한 내가 쓴 글로 인해
상처를 받고 싶지도 않다.
더불어 내 가족이 나로 인해 욕을 먹을까 염려가 되고 마음이 쓰인다.
그리하여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나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쓰는데
많은 제약을 느낀다.
또 어릴때의 이야기를 쓰고자 해도 흔히 오래된 기억이란 좋은 것 보다 안 좋은 일이거나
내가 남에게 피해를 당했을때 훨씬 또렷하게 남는 경우가 많아서 좋은 일을
주로 써야 하는 이곳의 특성상 한계를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좋은 글이란,
특히 수필에서 좋은 글이란 진솔함이 생명임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어느 정도 담을 치고 포장을 할 수 밖에 없음을
죄송하게 생각한다.
보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은 한 회지에 실린 글을 한 편 읽게 되었다.
‘봄 편지’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수필로 딸을 셋 키우는 30대 중반의 아줌마가
아침에 눈을 뜨면서 시작되는 하루의 일상과 봄을 맞는 감회를 적은 글이었다.
그 회지의 일원으로서 우편으로 날아 온 회지 속에서 발견한 글이었는데
.상큼한 봄날을 5월의 신록 같은 색깔로 노래하면서 잔잔하지만 따분한
아줌마의 일상과 추억을 이야기하고 이 봄이 가기 전에 그리운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비슷한 나이 때문인지 내용도 너무나 공감이 가고
느낌이 그렇게 맑고 상큼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 글을 읽자마자 첫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그 글에 매료되었다.
몇 번을 반복해서 읽었지만 읽을수록 그 느낌이 배가 되었다.
이런 사람에게서 이 봄에 편지를 받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마음이 설레이고
이름밖에 모르는 그 사람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그 ‘봄 편지’를 받고 싶어서...
그도 아니면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었다.
이렇게 맑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니까 이야기를 나눌 수만 있다면
정말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차마 편지를 쓸 용기를 내지는 못하고 만난다는 것은 더더욱...
몹시 아쉬웠지만 그냥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려니 싶었다.
그러다가 한 달에 한번씩 만나는 모임에서 우연히 그 사람을 만나는
행운을 맛보게 되었다.
처음 만난 날 다른 사람의 소개로 그 글을 쓴 사람임을 알게 되었고
너무나 반가워서 가슴이 다 벌렁거렸다.
차마 다가가서 아는 체를 못하고 그냥 간단하게 인사만 했다.
너무 좋아 하면 표현하는데 더 서툴러 지는 법이니까...
그저 만날 때 마다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그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궁리를 했다.
그런데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나는 점점 사기를 당한 기분이 들었다.
먼저 그 모임에 참석한 동기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정식 멤버가 아니었는데 상큼한 봄 편지의 주인공이 좋아하는 아저씨(유부남)가
그 모임의 멤버여서 덩달아 참석을 하는 모양이었다.
매 달 회의를 하고 다음 달 계획을 세우는 조금은 건조한 모임이었는데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참석하여 공공연하게 그 아저씨는 자기가 좋아하니까
아무도 넘보지 말라는 영역표시를 선언하고(내가 알기론 분명 다른 남편에 세 아이가
있는 유부녀였다.)무슨 자유부인인양 사람들 앞에서 애정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그래도 참아야지 싶었다. 글을 워낙 잘 쓰니까...
그런데 봐 주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모임 자체가 살림살이를 해야 하는 모임인지라 할 일이 많았는데
나 몰라라 하면서 외면을 하기 일쑤였다.
참석자 중에서 나이가 적은 편이 아닌데도 주위를 살피지 않고
너무나 무책임하게 행동을 하며 자기감정에 충실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민망해질 만큼 자유분방하게 행동하면서
그것을 즐기는 듯 해서 정말 그 글을 쓴 사람이 맞나 의심이 생길 정도였다.
회지에 글은 계속 발표되고, 글은 여전히 맑고 아름다웠다.
나는 갈수록 헷갈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저 사람의 실체는 뭔가?
몇 달이 흐른 후 그 모임이 1박 2일로 합숙을 떠나게 되었다.
폐교된 산골학교로,
비슷한 성격의 여러 모임이 함께 참가하기에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아서
당시 아직 어리던 아들아이를 데리고 같이 참가를 하였다.
아줌마가 된 뒤로 처음 그런 데를 참석하는 터라 해방감도 느끼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도 다양해서 참가하기를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골의 공기도 맑고, 경치도 좋고, 식당까지 잘 갖추어져 있어서 밥을 안 해도 된다는
뿌듯함까지 겹쳐 행복하기 까지 했다.
아들아이 때문에 마음껏 자유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아들이랑 함께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밤이 되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술자리가 벌어 졌다.
폐교를 합숙 시설로 만들었기 때문에 교실 하나를 방으로 바꾸어서
남녀 모두 한 방에 넓게 자리를 잡았다.
어차피 잠을 잔다는 생각은 다들 별로 하지 않아서 크게 신경을 쓰는 사람도 없었다.
잠을 못 견디는 사람은 그냥 구석에서 몸을 누여도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고
자유스러운 분위기 였다.
나는 아들아이 때문에 술자리에 끼지는 못하고 구석에서 과자랑
과일을 먹으면서 놀았다. 술이 안 되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봄 편지의 주인공은 좋아한다는 아저씨와 함께 적극적으로 술자리에 동참을 했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수록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지고 그때까지는 나무랄것이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하나 둘 취해갔다.
내 봄 편지의 주인공도......
그리고 그 밤이 다 지나기 전에 나는 늦은 나이에 찾아온 내 짝사랑에
확실하게 마침표를 찍었다.
사람이 술을 마시면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가를 그 남녀는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고
나는 더 이상 그들을 보고 싶지 않아 오랫동안 폐교의 운동장을 거닐었다.
눈을 붙이지 않고 뜬눈으로 그 밤을 새고 난 다음 날 나는 말이 하기가 싫어졌다.
밤이 늦도록 주사를 부리다가 새벽녘에 잠이 든 봄 편지의 주인공은
늦은 아침에 깨워서야 일어나면서도 아무에게도 사과를 하지 않았고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합숙훈련에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 모임을
그만 두었고 그 해 공단문학제(울산에서는 꽤 알아준다.)에서 그 봄 편지의 주인공이
수필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정식 수필가 이름을 달고 쓴 그녀의 글을
울산의 대표적인 지방지에서 읽게 되었다.
그녀의 글은 처음의 감동은 없었지만 여전히 반할 정도로 해맑고 아름다웠다.
거짓말처럼......
그 봄 편지의 후유증으로 나는 글을 쓴다는 사람을 만나면
왠지 경계하는 버릇이 생겼다.
글과 작가가 동일하지 않으며 글 쓰는 것도 머리를 자르는 미용기술처럼
하나의 재주에 불과하다는 것을 너무나 큰 실망을 겪은 다음에
알게 되어서인지 아니면 다른 직업보다 기대치가 높아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글을 쓴다는 사람을 만나면 웬지 호의적이지 않고 인색해졌다.
어쩌다 자칭 글을 쓴다면서 현역에서 활동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속으로 그 글로 얼마만큼 사기를 치며 사는지 묻고 싶어진다.
이처럼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던 내가
아주 우연찮게 이곳에 글을 쓰게 되고 그 글들이 계속 이어지면서
분에 넘치게 격려를 해 주는 고마운 사람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러자 내 지난날을 떠올리게 되었고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봄 편지의 주인공이
되는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비겁한 마음에 선수를 친다.
글의 향기와 그 글을 쓴 사람의 향기는 같지 않다고......
무엇보다 내 뿌리가 다 공개되고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을 상대로 글을 쓴다는 것이
그렇게 만만치 않음을 절감한다.
다른사람에게 상처를 입히지 않게 써야 하지만 나 또한 내가 쓴 글로 인해
상처를 받고 싶지도 않다.
더불어 내 가족이 나로 인해 욕을 먹을까 염려가 되고 마음이 쓰인다.
그리하여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나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쓰는데
많은 제약을 느낀다.
또 어릴때의 이야기를 쓰고자 해도 흔히 오래된 기억이란 좋은 것 보다 안 좋은 일이거나
내가 남에게 피해를 당했을때 훨씬 또렷하게 남는 경우가 많아서 좋은 일을
주로 써야 하는 이곳의 특성상 한계를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좋은 글이란,
특히 수필에서 좋은 글이란 진솔함이 생명임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어느 정도 담을 치고 포장을 할 수 밖에 없음을
죄송하게 생각한다.
글을 올리다 보니 같이 사는 두남자(남편과 아들)로 부터
원성이 대단합니다.
안 그래도 잘못하는 살림살이가 엉망이 되었거든요.
그래서 이제 부터는 쉬엄쉬엄
올릴까 합니다.
댓글 달아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혹시 글이 올라 오기를 기다리며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계실까봐 메모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