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 말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나서 처음으로 자모회가 열렸다.
입학식 후에 처음으로 학부모와 담임선생님이 정식으로 만나서 얼굴을 마주보며
인사를 나누게 된 것이다. 그래서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학교를 갔다.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며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도우미 할 사람도 정하고 나자 선생님께서 혹시 상담에 관심이 있거나
상담을 배운 적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하셨다.
평소 상담에 관심도 많고 교회에서 하는 상담 과정을 6개월 정도
다닌 적이 있는지라 손을 들었다.
그랬더니 자신이 올해 학교의 상담 분야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학기 중간에 한두 번 하루나 이틀씩 교육청 산하에서 교육이 있을 예정이고
그때 가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갈수 있으니까 그때가 되면 연락을 주시라고 하며 헤어졌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어느 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동안 상담 교육을 2회에 걸쳐 3일을 다녀왔는데 ‘상담’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일일교사를 좀 해 줄 수 없냐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겁부터 덜컥 나고 어떻게든 빠져 나가고 싶었지만
부담 갖지 말고 그냥 편하게 해주면 된다고 하도 간곡하게 이야기하시는 바람에
차마 거절을 하기가 어려웠다.
상담을 배우면서 좀더 일찍 이 세계를 알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생길 정도로
공감되는 것이 많고 전문적인 상담을 제외시키면 우리들이 사는 것 자체가
어쩌면 상담의 연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가지고 있어서
아이들에게 좋은 기회제공의 계기가 될 것도 같았다.
내가 수업을 해야 될 대상은 우리 아이가 속해있는 1학년이 아니라 6학년이었다.
수업 시작 전, 1학년 누구의 엄마라고 소개를 시킬 건데
아이의 명예도 걸려 있고 또 이왕이면 괜찮은 하루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어서
여기저기 자문을 구하면서 수업 준비를 하였다.
6개월 동안 배운 것들을 최대한 농축시켜서 어떻게 하면 한 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전달을 할까 고민을 하였다.
심지어 원고를 써서 외워 갈까 하는 생각까지 하였는데 옆에서 말리는 바람에
과잉 의욕인 것 같아 그것은 그만 두었다.
수업 하루 전 날, 담임선생님께 수업 때 도화지와 색연필이 개인별로 필요하니
준비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전화를 하고 나서 수업 준비가 끝이 났다.
수업 당일 떨리는 마음을 애써 추스르며 학교로 갔다.
담임선생님의 소개로 6학년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6학년 교실로 안내를 받았다.
1교시부터 시작해서 3교시까지 하면 내 임무가 끝이 나는 것이었다.
먼저 6학년 1반 교실로 갔다.
선생님의 소개가 끝나고 나자 선생님은 교무실로 가시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간략하게 상담의 정의와 용어 그리고 필요성에 대해 설명을 했다.
좀더 나아가 대강의 학설까지도 준비를 했었는데 학습 분위기와 맞지 않은 것 같아
생략하고 상담기법으로 바로 들어갔다.
색연필과 도화지를 이용해서 필요한 것을 간단하게 그리게 하고
주로 문답식으로 수업을 진행시켰다.
상담이라는 분야 자체가 기본적인 이론이나 학설 부분을 빼고 나면 상당히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공부 같지 않게 할 수도 있어서 대체로 재미있어하며 수업을 할 수 있었다.
첫 시간은 시간 안배를 잘못하여 쉬는 시간까지 해서 겨우 마무리를 하고
힘들때는 상담을 잘 활용하라는 당부와 함께 준비해간 프린트물을 한 장씩 나누어 주었다.
성적문제나 이성 문제 또는 부모님들과 문제가 생겨 상담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교육청산하 상담 도우미들의 연락처가 적힌 프린트물이었다.
같은 내용으로 반만 달리하여 수업을 하니 다음 시간은 좀 더 여유도 생기고
시간 안배에도 신경을 썼다. 그 다음 시간은 더 할만했다.
그렇게 해서 무사히 일일교사를 마쳤다.
초등학교 수업시간은 1시간이 40분이라 생각보다 1시간이 훨씬 빨리 지나갔다.
그 동안 긴장했던 것이 억울할 정도였다.
수업시간이 어땠느냐는 육학년 선생님들의 질문에 “좋고 괜찮았다.” 라는
짧은 말로 대답을 하고 고마워하는 담임선생님과 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내 대답과는 달리 발걸음이 무거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몇 명 모였다 하면 제일 많이 하는 이야기가 정치와 교육이라고 한다.
또 묘하게 둘의 공통점은 잘한 것은 그냥 넘어가고 잘못된 것만 집중적으로
성토를 하는데 거의 내 탓이 없고 대부분이 남 탓이라는 점이다.
주입식 교육이 아이의 창의성을 떨어뜨리고, 제도가 나빠서 대학 가기가 힘들고,
다른 집 아이가 다니니까 우리 아이도 학원을 안 보낼 수가 없고, 선생님이 문제가 있어서
아이가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다른 아이 때문에 우리 아이가 안 싸울 수가 없고 등등
열거를 하기가 끝이 없을 정도이다.
더구나 조기유학이나 해외 연수 바람을 타고 돈이 없는 부모는 괜히 자식 앞에
주눅이 들어야하는 새로운 풍조까지 생겨나고 있어서 돈이 없어서
공부를 할 수 없다고 큰 소리 치는 자식들이 생겨나지 않을 까 겁도 난다.
그런데 하루 일일 교사를 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이 모든 문제 이전에 피부로
절실하게 느껴지는 문제가 다른 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바로 가정교육의 부재였다.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는 인사도 잘하고 예쁜 아이들이 공동체라는 집단으로 들어가자
그 모습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은 미처 수업할 준비와 자세가 안 된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
40분 수업 시간에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잘 안되는 아이들이 제법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정도면 수업 시간에 돌아 다녀서는 안 되고
다른 친구가 발표를 할 때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것쯤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의미 없는 말대꾸는 시도 때도 없이 하여 수업 분위기를 흐리면서
정작 특정 주제에 대해 발표시간이 주어지면 간추려서 논리적으로
말을 할 줄 모르는 아이들,
밝고 경쾌한 것은 좋은데 지나치게 가볍고 산만하며 참을성이 없고
깊게 생각하기를 싫어했다.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 첫 번째로 배워야 하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를 못 배운 아이들이 많아 보였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더 어렸을 때 집에서 충분히 받았어야 할 이런 교육들이
뿌리가 약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제대로 된 수업을 하기가 힘들게 산만하고
힘 있는 아이들이 힘없는 아이를 괴롭히며 내가 먼저 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양보를 모르는 아이로 만든 것 같았다.
그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놓고 학교가 어떻고, 선생님이 어떻고, 친구들이 어떻고
하면서 남 탓을 하고 있었다.
나 또한 별로 다르지 않았다.
우리 아이는 똑똑하고 얌전해서 별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일교사 한 번 하고나니까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선생님들이 날마다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는지
절실하게 보고 느낄 수가 있었다.
이제는 웬만해서는 무슨 문제가 있어도 선생님들한테 따지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일이 어떻게 됐는지 자초지종을 충분히 들어주고 먼저 내 아이에게
문제는 없었는지 돌아 봐야 할 것 같았다.
일일교사 하루 하고 나니까 이렇게 생각이 달라지는데
일일교사 제도의 부작용을 몰라서 하는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학교는 왜 이런 좋은 제도를 활용 안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 특히 엄마들을 의무적으로 한 번씩 돌아가면서 일일교사를 시키면
좀 더 효과가 있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꼭 특별한 걸 하라는 법은 없을 테니 옛날 우리 자랄 때의 이야기도 좋고,
인생 선배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괜찮을 것 같고,
정히 할 것이 없으면 ‘된장찌개 맛있게 끓이는 법’이라는 주제로라도...
그렇게 해서 학교에 가서 자기 아이들의 실상을 보고 나면 뭔가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기에...
그로부터 1년이 더 지났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아이들 때문에 수고 하시는 선생님들의 노고를
잊지는 않았기에 학교에 자모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나 도우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한다.
그리고 내 아이에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자주
하고 살지만 양보할 대상이 없는 외동아이로 우리 때와는 비교가 안 되게
결핍을 모르고 자라는 내 아이가 학교에 가서 어떤 식으로 선생님을
힘들게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고 또 그러지 않을 거라는 자신도 없다.
입학식 후에 처음으로 학부모와 담임선생님이 정식으로 만나서 얼굴을 마주보며
인사를 나누게 된 것이다. 그래서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학교를 갔다.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며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도우미 할 사람도 정하고 나자 선생님께서 혹시 상담에 관심이 있거나
상담을 배운 적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고 하셨다.
평소 상담에 관심도 많고 교회에서 하는 상담 과정을 6개월 정도
다닌 적이 있는지라 손을 들었다.
그랬더니 자신이 올해 학교의 상담 분야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학기 중간에 한두 번 하루나 이틀씩 교육청 산하에서 교육이 있을 예정이고
그때 가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갈수 있으니까 그때가 되면 연락을 주시라고 하며 헤어졌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어느 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동안 상담 교육을 2회에 걸쳐 3일을 다녀왔는데 ‘상담’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일일교사를 좀 해 줄 수 없냐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겁부터 덜컥 나고 어떻게든 빠져 나가고 싶었지만
부담 갖지 말고 그냥 편하게 해주면 된다고 하도 간곡하게 이야기하시는 바람에
차마 거절을 하기가 어려웠다.
상담을 배우면서 좀더 일찍 이 세계를 알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생길 정도로
공감되는 것이 많고 전문적인 상담을 제외시키면 우리들이 사는 것 자체가
어쩌면 상담의 연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가지고 있어서
아이들에게 좋은 기회제공의 계기가 될 것도 같았다.
내가 수업을 해야 될 대상은 우리 아이가 속해있는 1학년이 아니라 6학년이었다.
수업 시작 전, 1학년 누구의 엄마라고 소개를 시킬 건데
아이의 명예도 걸려 있고 또 이왕이면 괜찮은 하루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어서
여기저기 자문을 구하면서 수업 준비를 하였다.
6개월 동안 배운 것들을 최대한 농축시켜서 어떻게 하면 한 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전달을 할까 고민을 하였다.
심지어 원고를 써서 외워 갈까 하는 생각까지 하였는데 옆에서 말리는 바람에
과잉 의욕인 것 같아 그것은 그만 두었다.
수업 하루 전 날, 담임선생님께 수업 때 도화지와 색연필이 개인별로 필요하니
준비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전화를 하고 나서 수업 준비가 끝이 났다.
수업 당일 떨리는 마음을 애써 추스르며 학교로 갔다.
담임선생님의 소개로 6학년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6학년 교실로 안내를 받았다.
1교시부터 시작해서 3교시까지 하면 내 임무가 끝이 나는 것이었다.
먼저 6학년 1반 교실로 갔다.
선생님의 소개가 끝나고 나자 선생님은 교무실로 가시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간략하게 상담의 정의와 용어 그리고 필요성에 대해 설명을 했다.
좀더 나아가 대강의 학설까지도 준비를 했었는데 학습 분위기와 맞지 않은 것 같아
생략하고 상담기법으로 바로 들어갔다.
색연필과 도화지를 이용해서 필요한 것을 간단하게 그리게 하고
주로 문답식으로 수업을 진행시켰다.
상담이라는 분야 자체가 기본적인 이론이나 학설 부분을 빼고 나면 상당히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공부 같지 않게 할 수도 있어서 대체로 재미있어하며 수업을 할 수 있었다.
첫 시간은 시간 안배를 잘못하여 쉬는 시간까지 해서 겨우 마무리를 하고
힘들때는 상담을 잘 활용하라는 당부와 함께 준비해간 프린트물을 한 장씩 나누어 주었다.
성적문제나 이성 문제 또는 부모님들과 문제가 생겨 상담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교육청산하 상담 도우미들의 연락처가 적힌 프린트물이었다.
같은 내용으로 반만 달리하여 수업을 하니 다음 시간은 좀 더 여유도 생기고
시간 안배에도 신경을 썼다. 그 다음 시간은 더 할만했다.
그렇게 해서 무사히 일일교사를 마쳤다.
초등학교 수업시간은 1시간이 40분이라 생각보다 1시간이 훨씬 빨리 지나갔다.
그 동안 긴장했던 것이 억울할 정도였다.
수업시간이 어땠느냐는 육학년 선생님들의 질문에 “좋고 괜찮았다.” 라는
짧은 말로 대답을 하고 고마워하는 담임선생님과 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내 대답과는 달리 발걸음이 무거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몇 명 모였다 하면 제일 많이 하는 이야기가 정치와 교육이라고 한다.
또 묘하게 둘의 공통점은 잘한 것은 그냥 넘어가고 잘못된 것만 집중적으로
성토를 하는데 거의 내 탓이 없고 대부분이 남 탓이라는 점이다.
주입식 교육이 아이의 창의성을 떨어뜨리고, 제도가 나빠서 대학 가기가 힘들고,
다른 집 아이가 다니니까 우리 아이도 학원을 안 보낼 수가 없고, 선생님이 문제가 있어서
아이가 학교에 적응을 못하고, 다른 아이 때문에 우리 아이가 안 싸울 수가 없고 등등
열거를 하기가 끝이 없을 정도이다.
더구나 조기유학이나 해외 연수 바람을 타고 돈이 없는 부모는 괜히 자식 앞에
주눅이 들어야하는 새로운 풍조까지 생겨나고 있어서 돈이 없어서
공부를 할 수 없다고 큰 소리 치는 자식들이 생겨나지 않을 까 겁도 난다.
그런데 하루 일일 교사를 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이 모든 문제 이전에 피부로
절실하게 느껴지는 문제가 다른 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바로 가정교육의 부재였다.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는 인사도 잘하고 예쁜 아이들이 공동체라는 집단으로 들어가자
그 모습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은 미처 수업할 준비와 자세가 안 된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
40분 수업 시간에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잘 안되는 아이들이 제법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정도면 수업 시간에 돌아 다녀서는 안 되고
다른 친구가 발표를 할 때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것쯤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의미 없는 말대꾸는 시도 때도 없이 하여 수업 분위기를 흐리면서
정작 특정 주제에 대해 발표시간이 주어지면 간추려서 논리적으로
말을 할 줄 모르는 아이들,
밝고 경쾌한 것은 좋은데 지나치게 가볍고 산만하며 참을성이 없고
깊게 생각하기를 싫어했다.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 첫 번째로 배워야 하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를 못 배운 아이들이 많아 보였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 더 어렸을 때 집에서 충분히 받았어야 할 이런 교육들이
뿌리가 약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제대로 된 수업을 하기가 힘들게 산만하고
힘 있는 아이들이 힘없는 아이를 괴롭히며 내가 먼저 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양보를 모르는 아이로 만든 것 같았다.
그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놓고 학교가 어떻고, 선생님이 어떻고, 친구들이 어떻고
하면서 남 탓을 하고 있었다.
나 또한 별로 다르지 않았다.
우리 아이는 똑똑하고 얌전해서 별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일교사 한 번 하고나니까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선생님들이 날마다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는지
절실하게 보고 느낄 수가 있었다.
이제는 웬만해서는 무슨 문제가 있어도 선생님들한테 따지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일이 어떻게 됐는지 자초지종을 충분히 들어주고 먼저 내 아이에게
문제는 없었는지 돌아 봐야 할 것 같았다.
일일교사 하루 하고 나니까 이렇게 생각이 달라지는데
일일교사 제도의 부작용을 몰라서 하는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학교는 왜 이런 좋은 제도를 활용 안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 특히 엄마들을 의무적으로 한 번씩 돌아가면서 일일교사를 시키면
좀 더 효과가 있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꼭 특별한 걸 하라는 법은 없을 테니 옛날 우리 자랄 때의 이야기도 좋고,
인생 선배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괜찮을 것 같고,
정히 할 것이 없으면 ‘된장찌개 맛있게 끓이는 법’이라는 주제로라도...
그렇게 해서 학교에 가서 자기 아이들의 실상을 보고 나면 뭔가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기에...
그로부터 1년이 더 지났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아이들 때문에 수고 하시는 선생님들의 노고를
잊지는 않았기에 학교에 자모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나 도우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한다.
그리고 내 아이에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자주
하고 살지만 양보할 대상이 없는 외동아이로 우리 때와는 비교가 안 되게
결핍을 모르고 자라는 내 아이가 학교에 가서 어떤 식으로 선생님을
힘들게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고 또 그러지 않을 거라는 자신도 없다.
처음 등교하는 선생님 하는 친구의 마음을
언잖게 한 것이 마음에 걸려서 서둘러서
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이
의외로 자기 아이들의 실상을
잘 모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서...
이번에 합창단 하는 아이들 30명과
4박 5일을 동행하면서도
절실하게 느꼈던 문제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오죽 했으면 '극기 훈련'이라는
표현을 썼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