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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 명전 메모리

by 운영자 posted Jan 1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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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 선생의 명전에 대한 내 개인적인 기억은 좀 색다르다.  후추에서 명전에 대한 첫 구상을 했던 작년 5월 경기도 양평의 어느 작은 콘도 방... 그때 바로 명전의 3대 선정 방향이 골격을 갖추었다고 볼 수도 있다.

1. 여론에 의해 매장된 스타들의 명예 회복...
2. 설움 받는 비인기 종목 선수들에 대한 관심,
3.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 흘러간 옛 스타들의 근황...
그런 토의를 하던 중에 가장 먼저 떠 올랐던, 아니 '만장일치'로 동의했던 인물이 바로 김일 선생이었다.  그 만큼 김일 선생의 명전 헌액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오히려 김일 선생의 헌액 시점을 놓고 고민을 많이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빨리 후추 간판에 김일이란 이름을 올리게 했던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KBS 방송국의 PD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때 마침 KBS 방송 '나의 꿈, 나의 도전'이란 프로에서 후추를 취재하고 싶다고 했고 김일 선생의 바로 전 헌액자였던전 LG 트윈스 이광환 감독의 명전 취재 차 제주로 내려가는 길에도 PD가 동참을 했었다.  아이고... 그때 그 방송 녹화 때문에 사방으로 그리고 매일 밤 새벽까지 끌려다니며 고생한 생각을 하면...  이광환 감독의 취재를 마치고 명전 기사를 좀 쓰려고 하는데 이번엔 김일 선생 인터뷰 섭외를 KBS 측에서 미리 해 놓았으니 후추가 인터뷰하는 모습을 따고 싶다고 했다.  '김일 선생은 좀 더 있다가 하자...' 라는 후추 내부 결정에도 불구하고 대 공영방송국의 빽으로 쉽게 성사된 김일 선생과의 인터뷰 기회를 마다할 수 없었다.  

부랴부랴 자료를 뒤져서 인터뷰 질문을 준비하고 아침 일찍 영등포에 위치한 이왕표 관장의 옥탑 사무실로 갔다.  

김일 선생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느낌은 명전에도 충분히 얘기가 되었다.  인터뷰도 잘 끝났고 방송 그림도 잘 만들어졌다고 했다.

문제는 명전 기사 쓰는 일... 원래 난 명전 기사를 한번 쓰고 나면 한 이틀은 명전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주로 술을 마시고 다른 일을 보곤 하는데 김일 선생의 기사는 스케줄이 너무 촉박해서 이광환 감독의 기사를 마치자 마자 곧 바로 쓸 수 밖에 없었다.

후추 스탭들 역시 대부분 김일 선생의 현역 시절을 기억하는 친구들이 없었고 결국은 이번 기사도 철저히 내 몫이었다.

김일 선생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이 어디 보통 일이란 말인가? 난감했다.  하지만, 김일 선생의 기사를 쓸 당시 말 그대로 이를 악물고 썼던 기억이 난다.  등이 쑤시고 어깨가 결려서 졸도할 지경이었지만, 여느 명전 기사를 쓸 때보다도 사명감에 불탔다고나 할까?

그리고 한번 feel이 받아지면서 참 신바람나게 썼던 것 같다.  내가 어릴 때 즐겨듣던 자이안트 바바, 안토니오 이노끼, 천규덕, 압둘라 더 부쳐, 루 테즈, 프레디 블래시, 여건부..등의 이름과 자료를 다시 들척이며 10대 소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그 KBS 방송과 후추의 김일 선생 명전 기사가 나가고 난 후로 '반칙왕' 이란 영화도 개봉을 했고 TV 프로그램에서도 레슬링과 관련된 컨셉을 많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김일 선생의 때 늦은 은퇴식도 거행되었다.  잠시동안 '한국 프로레슬링이 다시 힘을 좀 받나?'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예전 70년 대의 그 인기와 명성엔 아직도 턱 없이 부족하다.  

김일 선생을 생각하면 무엇보다도 참 죄송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우리가 어렸을 때 그가 우리 모두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다면 그가 병 들고 나약해졌을 때는 우리가 좀 나서서 그를 도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음에도 좀 더 적극적으로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서다.  그를 만났을 때 나즈막한 목소리로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레슬링을 아끼고 사랑해 주셨던 많은 국민들에게 죄송할 뿐입니다..."  레슬링이 지금 이 꼴이 된 책임을 본인 탓으로 돌리는 듯 했다.  그게 비록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난 김일 선생의 입에서 '국민'과 '죄송..' 이란 말이 함께 나온다는 사실을 영 받아들일 수가 없다.  김일은 바로 '국민'을 움직였던 사람이고 '죄송' 아닌 '감사'로 기억되어야 마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명전 헌액자의 인터뷰보다도 짧았던 만남이었지만 어느덧 '박치기 왕' 김일 선생의 이마와 눈가에 깊숙히 파인 수 많은 주름살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세월을 탓 하기엔 우리가 그동안 그를 너무 오랫동안 외면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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