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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 노컷 인터뷰

by 운영자 posted Jan 1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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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영등포에 위치한 이왕표 선수의 사무실… 약 10분 후엔 필자의 어린 시절 우상이자 한국 레슬링의 대부 - 김일이 내 눈앞에 나타난다는 사실이 믿어지질 않았다. 이왕표 선수와의 짧은 인터뷰가 진행되던 도중, 사무실 밖이 술렁이기 시작했고 누군가 ‘선생님 오셨습니다.” 라는 말을 했다. 일어나서 사무실 입구를 바라본 순간… 한 동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바라 보고만 있었다. 일반인 둘은 충분히 통과할 수 있어 보이던 사무실 입구가 꽉 차게 느껴지더니 김일의 거구가 나타났다. 환한 웃음과 함께. 아직도 불편한 다리 때문에 거동이 불편해 보였지만, 그는 동네 세탁소 할아버지의 따뜻하고 인자한 웃음을 띄우며 필자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 레슬링의 역사가 담겨있는 김일의 이마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온몸에 소름이 돌았고 ‘안녕하세요?’란 말을 하며 목이 잠겼다. 필자의 눈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김일이었다…

 요즘 건강은 어떻습니까?

 예.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다리가 좀 불편해서요.

 다리 말고 다른 합병증은 많이 완쾌가 되셨습니까?

 예. 뭐, 딴데는 괜찮습니다.

 근데 보기에는 예전보다 많이 건강해 보이시는데요?

 덕분에 좋아졌습니다.

 저희가 팬으로서 해드린 게 너무 없어서요. 너무 죄송합니다.

 아이. 감사합니다.

 병원엔 자주 다니시고 그러세요?

 예. 선수들이 시합있을 때는 같이 이렇게 따라가야 힘도 나고. 제가요. 그래서 따라다니고... 가끔 이렇게 나옵니다.

 은퇴 경기도 3월달에 예정이 되있는 걸로 알고 있고, 정말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분들이 이렇게 도와주십니까?

 제가 직접 그... 몸이 이러니까요. 뭐, 뛰고 다니고 만나고 그럴 수는 없는 거고요. 현재도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이왕표 이관장님 하고 추진본부 합의하에서 추진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고 이러고 할 처지가 못 됩니다. 몸이 이러니까.

 근데 일본에서는 이미 은퇴식을 하셨지 않습니까?

 예.

 국내에서는 이제서야 공식 은퇴식이 만들어지는 것에 관해서 서운하신 점은 없으세요?

 뭐,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까요. 허허허. 고맙게 생각하지요.

 어릴 적 꿈은 레슬링 선수가 되시는 거였습니까?

 저는 저... 어렸을 적 제 자신을 잘 모릅니다 만은, 크고 나서 여러 선배님들하고 부모님 말씀이... 싸움을 엄청나게 잘 했었나봐요. 그리고 또... 지기 싫어하는 성격에서 많이 거닐고 다니고 그런걸 좋아했던 가봐요. 그래서 많습니다. 그... 요즘엔 안 춥습니다 만은, 옛날엔 추웠던 것 같아요. 내의도 없었고 이래가지고, 한복에다가 솜을, 하얀 솜을 넣어가지고, 우와기, 상하를 솜을 넣어가지고 입고 다니던 그런 시절이었던 가봐요. 예를 들어서 엿장수가 엿을 팔러 왔는데 그때 돈은 없었고... 그래서 아버지 새 옷 솜을 하나, 가랑이 하나를 뜯어가지고, 엿을 사가지고 친구들 나눠주고 먹었어요. 그래서 어머니한테 한번 혼이 났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컸던 가봐요. 그래서 저를 5살때부터... 지방에 그때는 뭐 운동이 없었습니다. 명절 날 장터에서 씨름이나 있었고... 그것도 뭐 프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연습한 것도 아니고... 오늘이 추석이다 그러면 오전부터 시합해가지고 리그전으로 해서 새벽에 대회가 끝나요. 선수를 1백명 모으면 50명 남습니다. 리그전이니까. 또, 50명에서 25명이 남습니다. 그래가지고 내일 두 사람이 남아가지고 결승전... 그때 결승전 상이란 게 송아지를 줬었습니다. 송아지, 뭐, 쌀 한 가마니.

 그러니까 씨름대회 같은 데도 자주 출전하시면서 프로레슬링으로 진출하기 위한 준비과정을 거치신 거네요?

 그 당시는 뭐, 지금처럼 운동이 많이 있었을 때도 아니고... 씨름밖에 시골에서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씨름을 하다 보니까 성장한 후에 역도산 선생님이 일본에 계신다는 말을 듣고 프로레슬러가 되기 위해서 일본에 들어갔던 겁니다.

 일본에서 활동하실 때 '오오끼 긴따로' 란 닉네임을 가지셨었는데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 이름이, 저... 제가 지은 것도 아니고요. 역도산 선생님께서 지어주신 닉네임입니다. 일본말로 '오오끼' 는 크다는 뜻입니다. '긴따로' 라는 것은... 그... 옛날에 '김태량' 이라는 전설의 큰 장사가 있었더랍니다. 그 이름을 따서 '오오끼 긴타로' 라고 선생님이 닉네임을 지어주셨습니다.

 그럼 일본에서 활동하실 때는 '오오끼 긴따로' 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셨어요?

 처음에는 이제... 일본말로 '김일' 이라는 발음이 안되니까 '김이르' 그 다음에 '오오끼 긴따로'... 그렇게 아나운서들이 항상 부르셨어요.

 선생님 박치기 기술은 처음 레슬링하셨을 때부터 쓰신 건가요?

저도 그... 방금 닉네임 선생님이 지어주신 것처럼, 박치기도 처음에는 저, 할 줄을 몰랐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이 하루 불러서 '너는 한국 사람이니까 박치기를 해야 된다' 한국 사람이니까 박치기를 해야 된다는 것은, 우선 옛날에 들었었던 이야기도 있었거든요. 뭔 이야기를 들었었는고 하니, 해방이 되어 가지고, 러시아 그... '로스케' 라고 그때는 그랬습니다. 그 사람들이 이제 북한을 점령을 했을 때, 평양에서 박치기 한 방으로 '로스케' 들이 떨어지고 그랬던 가봐요. 그래가지고 한국 사람들 머리에 뿔이 있냐, 뿔이 있다 했다고 그래요. 하나는 또, 축구를 옛날부터 잘 찼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축구를 찰 때 헤딩을 해서 공을 받아줬는데 그... 슛... 골대에 머리를 맞아가지고 불이 파싹 났다고... 그래서 박치기가 얼마나 강했길래 그랬냐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 박치기하고 우리 조상들이 어떤 관계가 있었지 않냐... 이제, 구체적인 내용은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생각을 해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지금 정동체육관을 김일 체육관이라고 지었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그 건립배경이나 어떻게 김일 체육관이라고 불리게 된거지요?

 그게...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뿐만 아니라 육영수 여사님 께서도 굉장히 프로레슬링을 좋아했었습니다. 어, 시합 끝나면 항상 청와대로 오라 해가지고 고기도 구워주시면서 많이 먹으라 그러고... 프로레슬링을 좋아하셨어요. 그래가지고 또 어, 비디오 같은 거 일본서 시합했던 거 갖다가 보시면, 하여튼 끝나야 식사를 하신답니다. 그렇게까지 좋아하셨다 그래요.

 두 분이 다?

 예. 근데 이제, 체육관이 없고, 도장도 없고 그러니까 정동 그, 러시아 대사관 자리입니다. 영사관 자리입니다. 거기다가 체육관을 조그맣게 마련을 해주신 겁니다. 처음에 삽질할 때도, 고사 같은 거도 안지냅니까? 고사 지낼 때도 돼지 머리로 고사를 지냈는데 여기는 돼지머리로 고사를 지내면 안 된다고 하셔가지고 깨끗하게 북어를 사다가 고사를 지내라고... 그래서 두 번 고사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체육관을 지어놓고 보니까... 도중에 김일 체육관에서 문화체육관이 되어 가지고 거기서 또 나와 가지고 시합도 많이 했지요. 그, 기념 시합도 거기서 했었지요. 그때 우리 이왕표, 이관장이, 1기생으로 들어왔었습니다.

 예전보다 프로레슬링 인기가 떨어졌는데 그것에 대해서 섭섭한 점이나 바라는 점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제가 할 말이 없네요. 없는데... 어, 선수로서 물론 책임감이 많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요. 근데 프로레슬링이 우방국가에서는 대단합니다. 붐이. 프로레슬링이라는 것이, 미국으로부터 일본, 일본에서부터 한국으로 들어온 건데... 우방국가는 지금도 그렇게 대단한데 우리나라는 왜 그렇게 침체가 됐나... 팬들한테 항상 말씀을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저희들 책임도 있습니다 만은, 방송국에서도 안 도와주는 책임도 있다고 봅니다. 저, 미국서는 방송국 사장들이 전부 프로모터 직접 그, 관리를 하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우주 중계를 매주 하고 있고, 일본 역시 방송국... 니혼 텔레비젼, 아사히 텔레비젼, 후지 텔레비젼... 중계를 아직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문사에서는 그, 프로레슬링을 엄청나게 톱으로 쓰는 신문이 있는데, 도쿄 스포츠라고... 25만부가 아니라 2백5십만부가 나가요. 하루에. 그러니까 독자들이 얼마나 많은 겁니까? 그렇기 때문에 지금 어린 아이들도 저희들 다 알고 있습니다. 우방국가에서는 발란스가 맞아가지고 지금 대단한 붐이 돼있습니다 만은, 참, 방송국에서 저희들을... 좀 부탁을 하자면, 중계를 자주 해주십사 하는 것이 선수로서 저의 부탁입니다.

 예전에 '인간탄환' 여건부 선수도 선생님께서 발굴한 선수입니까?

 예. 조그마하지요. 제가 데려왔었습니다. 교포입니다. 교포인데... 일본서 제 후배로 있는데, 한국에 시합도 데리고 왔었지요. 여건부 선수라고 일본명은 '호시노'인데, 그, 교토가 집입니다. 그, 한국에도 와 가지고 한국 말도 많이 배웠지요.

 지금 그 분 근황은 어떤가요?

 은퇴했습니다. 은퇴하고 이제, 동경에 있습니다.

 역도산 선생님 일본 명이 '모모다' 선생님 맞습니까?

 예.

 당시 역도산 선생님 밑에서 운동을 하던 소위 '4천왕' 이라고, 자이언트 '바바', '안토니오 이노끼', '오오끼 긴따로', '맘모스 스즈끼' 이런 선수들이 있었다고 얘기를 들었거든요. 그 선수들이 최소한 동양권 에서는 최고의 선수로 활동을 했었는데 역도산 선생님의 그 당시 프로레슬링 계에서의 위치나 인기는 어느 정도였습니까?

선생님 그, 문하생이라는 게 네 사람입니다. 방금 자이언트 바바,안토니오 이노끼, 맘모스, 나 이렇게 해가지고 네 사람이 선생님 문하생인데... 그중에 제가 제일 선배입니다. 선배고 그 다음에 이제 후배들인데... 자이언트 바바는 거인입니다. 2m8cm 인가. 작년 4월6일날 작고 했지요. 벌써 작년이지요. 그리고 이노끼는 은퇴해서 있고, 맘모스도 아마 돌아가셨을 겁니다. 근데 제가 제일 선배 이지만은, 선생의 그, 사랑은... 마음속으로 사랑을 받았던 것은 제가 피부에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일 매를 많이 맞았어요. 그래서 매를 많이 맞는 것은... 지금은 뭐, 학교에서 부모들이 아이들 매 때리면 고소하고, 고발하고, 뭐, 와서 항의하고 그런다 그럽니다 만은, 저희들은 옛날같으면 스승이 매를 때리면 공부 열심해라, 훌륭한 사람이 돼라고 때리는 것으로 알았지요. 근데 유달리 선생님이 다 큰 놈을 갖다 너무 때려서 내가 미워서 그런가... 하면서 도망을 몇 번 칠라고 그랬었어요. 도망을 칠라고 그랬는데 하루는 불러가지고 저보고 그래요. 간단히 하시는 말씀이, '내가 너를 손을 안 대면 끝인 줄 알아라' 그 뜻을 모르겠더라고요.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뭐, 옛날에 어여쁜 아들은 자꾸만 여행을 시키라는 말도 있듯이, 매를 때리는 것은 강한 선수가 되라는 의미에서 때리는 건가 보다... 생각을 하고 그 다음부턴 매 때리는 것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을 하고 부르면 매를 들고 갔었습니다. 한번 때리고 나면 답변이, '감사합니다' 저한테 유달리 심했었어요. 그리고 못 하는 말도 없이 다 했었던 걸로 봅니다 만은. 그때는 이제, 수습 단계고, 문하생으로서 입문하는 단계라 상대가 안되지 않습니까? 그럼 이제 우리 말로 항상 김치, 뭐 도라지... 찬 사는 거는 제 담당이었어요. 그래서 선생님 몰래 또 맛도 좀 보고 그랬지요. 먹고 싶어서. 그런데 하루는 시합장 에서 여러 일본 선수들이 있는데서 도라지 이야기가 나왔어요. 도라지를 일본말이나 한국말로 그랬으면 알았을건데 하얀 꽃핀 그게 뭐 뭐야? 나보러 그래요. 그래서 난 모른다. 하얀 꽃이 무엇입니까? 그러니까 일본말로 뭐라 그러시더니만, '이 자식아, 도라지 몰라' 처음으로 한국 말을 듣고 보니까 역시 우리 선생님은 한국 사람이었구나 하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미가다 입니다. 미가다 체육관에... 지금도 기억을 합니다만 그런 추억이 있었습니다.

 역도산 선생님이 그 당시 일본 프로레슬링 계에서는 최고였습니까?

 예. 일본 천왕은 몰라도 역도산 선생님 모르는 사람은 없었지요. 그렇게 까지 유명했습니다.

 '역도산' 선생님이 63년 12월15일 날 작고를 하셨는데 그때 일본의 '무라다' 라는 청년한테 칼을 맞고 쓰러지셨잖습니까? 배후자가 일본 '야쿠자' 라는 얘기가 있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저도요. 63년 9월7일날 1차 도미를 했었습니다. 선생님이 미국 가서 시합을 하고 오라고 해서. 그래 6일날 같이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만은. 그런데 제가 일본 떠난 다음에 일어난 사건이었기 때문에... 그날 마침 또 WWA  태그 시합이 있었어요. 저, 7일날, 9일날. 미국이 9일날 이면 일본은 10일날 입니다. 그날 아침에 전화가 왔어요. 새벽에. 일본서는 저녁이었던 가봐요. 깡패한테 칼을... 저는 그날 시합을 어떻게 한지도 모르게 흥분돼가지고 선생님 생각밖에 안들어가지고... 어떻게 시합한지도 모르는데 끝나고 보니까 챔피언이 됐더라고요. 그때부터 계속 그냥 선생님이 완치가 됐으면... 하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요. 근데 13일날 스포츠 니폰 부장한테 전화가 와서 많이 좋아져가니까 안심을 하라고... 그런데 갑자기 15일날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더라고요. 만약 제가 일본에 있었으면 선생님이 부상 당했을 때 직접 업고, 큰 외과 병원에 가서... 내가… 선생님이 뭐라 그래도... 선생님은 대외적인 면에 야쿠자 한테 칼 맞았다는 부끄러움도 있고 그래서 쉬쉬하고 산부인과 병원에 데려 갔던가봐요. 칼을 맞아가지고 산부인과 병원에 갈 겁니까? 나 같은면 선생님이 뭐라 그래도 '죽습니다'... 억지로 업고라도 외과 병원에 갔었을 겁니다. 거기서 철저하게 검진을 해서 치료를 받았었으면... 그건 아무 것도 아닌 거거든요? 근데 산부인과에서 뭘 압니까? 그러니까 상처를 그냥 꼬매 버렸던 가봐요. 그러니까 거기서 복막염이 생겨가지고 어떻게...

 역도산 선생님이 살해를 당하신 건데, 역도산 선생님이 한국인 이라서 그런 일을 당했다는 추측도 많이 했거든요?

 그런 것도 뭐, 있다고 봐야지요. 제가, 그, 9월7일날 미국 가기 전에 6일날, 선생님이 불러서 이제 내려가니까... 매를 또 가지고 갔어요. 때릴 줄 알고. 벤츠 오픈 카가 있어요. 차를 타라 그래요. 그래가지고 벌벌벌벌 떨면서 차를 탔는데, 내일 미국 가니까 나하고 술 한잔 하자고... 아이구 그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좋은 줄도 모르고 하여튼 떨고 갔어요. 긴자에 유명한 히메 라고 있어요. 최고 고급 구라브 (Club) 인데... 거길 데리고 갔어요. 저를. 그러나 선생님 앞에서 술을 안마시고 마신 것처럼 배에다 쏟고... 선생님을 따라가는 이상 제가 술 취하면 되겠습니까? 선생님은 술이 취하셨고요. 그러니까 술 드시러 갈 때, 어디 갈 때 저희들은 항상 선생님 주위를 따라다니고... 경호원은 아니지 만은 그렇게 하다시피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저도 없었고요. 선수들도 한 명도 안 따라가고 사무원들만 따라가서 그런 사고가 났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미스테리 아니냐... 여러가지 추측이 많습니다. 선생님에 대해서...

 4명의 문하생들 중에서도 한국의 김일, 일본의 안토니오 이노끼 선수의 라이벌 전을 기억하는 팬들이 많은데요. 당시 안토니오 이노끼 선수와도 친하게 지내셨습니까?

 예. 저, 후배니까요. 제 방에서 8년3개월동안 같이 살았습니다. 합숙소에서, 한 방에서. 그러니까 제가 코를 많이 곯았던 것 같아요. 코를 많이 고니까 이 놈이 이불을 넉 장을 덮고 잤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내가 데리고 다니면서 한국 음식 먹는 거 가르쳐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안토니오 이노끼는 저보다 나이도 어리고 그러니까는 뭐, 사랑했다는 것은 어폐가 있습니다 만은, 동생처럼... 그렇게 그런 사이였습니다. 데뷔전도 제가 상대해 줬습니다. 성장해 가지고 1승1패, 무승부 1번 그런 전적이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국회의원도 하고, 지금 북한도 왔다갔다 한다고 그러는데 요즘은 북한을 다닌다고 해서 연락도 안하고 만나지 않고 있습니다.

 65년 11월 27일 김일선수 하고 칼 칼슨 선수 대전에 앞서서 세미 파이널로 벌어진 장영철 선수와 오오꾸마... 그 날 사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프로레슬링 계에서 가장 불미스러운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또, 그날 경찰서에 들어갔던 장영철 선수가 '프로레슬링은 쇼다' 폭로를 해서 대중적인 관심을 잃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장영철, 천규덕 이런 이름을 들으셨을 때 어떻습니까?

 예. 그, 여기에 답변을 하면, 자기한테 유리하게만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말하나 저렇게 말하나 말이 많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잘 안합니다 만은, 또, 그런 말씀을 하시니까는... 어, 제가 이야기를 좀 할랍니다. 어, 미워하지 않습니다. 미워하지 않고, 그런 사람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있습니다. 크지 못 하면, 또, 불리하면 쇼니 뭐니 하면서 잡지사에 가서 이야기하고, 신문사에 가서 이야기하고... 그런 아이들이 더러 있어요. 그럼 외국에는 상대를 안합니다. 안하고... 그날 장충 체육관에서 시합하는 날도 내가 시합하는 걸 팬들하고 의자 놓고 앉아서 일일이 볼 수도 없습니다. 저, 선수 휴게실이라고 있습니다. 선수 휴게실이 별도로 있어요. 시합 준비해야 하니까 시합을 일일이 볼 수가 없어요. 시합 내용은 모릅니다. 근데 그런 사건이 나가지고 쇼니 뭐니 그러는데... 저는 미워하지 않습니다. 미워하지 않고, 다만 몰라서 그런가 보다, 몰라서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몇 해 전에 일본 지방에 있는 작은 병원에서 쓸쓸히 투병생활을 하셨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투병생활을 하신다는 거에 서운한 마음이나 그런 거는 없으셨습니까?

 예. 별로 없었고요. 다만, 그, 우리 한국 의술도 세계적으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하도 마음이 조급해 가지고 일본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어떨까... 이런 생각으로 건너갔던 것이지 우리나라에서 푸대접을 하고 이러니깐 건너간 건 아니고... 하나도 저는 추호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프로레슬링을 좀 더 활성화 시키고, 대중적인 인기스포츠를 만들 수 있게끔 하기 위해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뭔가요?

예. 그래서 제 후계자 이왕표 챔피언이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마음 흐뭇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은, 보기에 여러분들께서 왕표 선수를 조금만 도와주신다면 옛날 붐이 그대로 살 것이다... 그런 생각이 있습니다. 지금 우방국가에서는 그렇게 중계를 해주고 그러는데... 우리 한국도 언제 야구, 언제 씨름... 저기, 그, 중계 때문에 이렇게 붐이 된 게 아닙니까? 솔직한 얘기로. 그러니까 우리 프로레슬링도 옛날처럼 중계를 좀 해주시면 이왕표 이하 선수들이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옛날 붐을 되살리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너무너무 감사하고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십시요.

 감사합니다.



 긴말을 할 수가 없었다. 불편한 다리 때문에 장시간 의자에 앉아 계시게 할 수가 없었고, 인자하게 웃고 계시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도 사실은 힘이 많이 들었었다. 그가 혹시라도 불편하게 생각될 질문은 최대한으로 줄였다. 예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후추도 좋고 ‘노컷’도 좋지만, 필자는 후추 편집장이기 이전에 김일의 편이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그를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번 인터뷰 시시껄렁했다라는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서 사사건건 물고 늘어져서 그를 당황하게 만드는 행위는 필자의 상식으론 용납이 되질 않았다.

 그를 인터뷰하고 있던 40분 가량의 시간은 행복과 슬픔으로 얼룩진 시간들이었다. 왜 이렇게 늙어 버리셨나? 왜 이렇게 약해 보이시나? 왜 이렇게 자상하신가? 왜 이렇게 옛날이 그리울까..?? 그런 생각뿐이었다. 그리곤 그의 손을 꼬옥 잡고 당부 드렸다. 오래오래 사시라고. 꼭~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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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No Image

    경기자료 및 그의육성

    클릭하시면 김일 선수의 시원스러운 경기장면을 보실 수 있습니다. 모든 장면은 gif 형식이므로 다운로드 되는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료를 제공해주신 김일 선수 은퇴식 추진본부의 송수연님에게 감사드립니다. - 김일 경기자료 1 (경기 장면 보기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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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EPILOGUE

    지금도 김일의 박치기 장면을 떠올리면 가슴이 뛴다. “홍 코오나~~ 인따나쇼날 참피오온~~ 김~~일~~~!!!” 지금도 김일의 최근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이 매진다. “여러분들 덕분에 잘 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배출해 낸 수 많은 월드 스타들 중에서 김일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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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후추 명전 메모리

    김일 선생의 명전에 대한 내 개인적인 기억은 좀 색다르다. 후추에서 명전에 대한 첫 구상을 했던 작년 5월 경기도 양평의 어느 작은 콘도 방... 그때 바로 명전의 3대 선정 방향이 골격을 갖추었다고 볼 수도 있다. 1. 여론에 의해 매장된 스타들의 명예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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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쓸쓸한 영웅의 은퇴식

    잔치는 화려했으나 쓸쓸함은 감출 수 없다.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늘 쓸쓸하기 마련이지만 우리의 박치기 영웅이었기에 병든 채 링을 떠나는 뒷모습은 더욱 쓸쓸했다 "안토니오 이노키, 자이안트 바바, 저 이렇게 셋이 역도산 선생 제자였는데, 역도산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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