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화 : 신기한 호칭들
70억의 인구가 얽히고설켜 살고 있는 우리 지구상에는 가족관계도 그만큼 얽히고설켜 호칭문제가 무척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친족의 호칭도 어렵지만 사돈집과 관련된 호칭은 생각하기도 싫게 복잡하여 각자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대충 얼렁뚱땅 넘어가는 게 수다.
오늘은 남녀의 결혼이나 이혼 등에서 파생된 것 중 처음 대하거나 재미있는 것을 몇 개 골라봤다.
모 TV의 주말 연속극에 죽은 딸의 남편(곧, 사위)의 집에서 얹혀사는 여자가 나오는 상황이 있다.
그 사위는 첫 번째 부인(장모님의 친딸)과 사별하고 독신으로 살다가 뒤늦게 다른 여자와 재혼을 하였는데, 이 경우에 장모와 재혼한 두 번째 부인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 때 죽은 전처의 부모인 장인과 장모는 사위와 결혼한 그 여자를 ‘움딸’이라고 한다.
굳이 이 단어의 뜻을 해석한다면 ‘죽은 딸의 자리에 새움같이 다시 생긴 딸’이라고 하면 무리가 있을까?
그러면 이 움딸이 데리고 들어온 자식들은 또 무어라고 불러야 하나?
그 자식들은 ‘덤받이’라고 한다.
상황을 바꾸어 ‘갑’이라는 집안과 ‘을’이라는 집안에 각각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는 동생들인 딸들이 서로 친한 관계로 서로 집안을 오가다 ‘갑’의 아들은 ‘을’의 딸과, ‘을’의 아들은 ‘갑’의 딸과 서로 결혼을 하는 경우를 이따금 볼 수 있는데 이런 결혼을 ‘누이바꿈’이라고 한다. 이런 결혼은 역사에서도 그 예를 찾을 수 있는데 신라시대에 신덕왕의 누이가 효공왕의 비가 되고, 효공왕의 누이가 신덕왕의 비가 되었다고 한다.
이런 결혼은 현행법으로도 인정되고 있는데 서로의 호칭이 꽤나 재미있을 것 같다. 남자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처남․매부라고 할 것이고, 여자들은 서로가 시누이․올케라고 할 터인데 언제는 처남이고 언제는 매부인지……?
더 나아가 ‘물레바꿈’이라는 혼인제도가 있었는데 이는 세 가족 이상의 집안이 자녀들의 결혼으로 서로 물레처럼 맞물린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혼인을 하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매우 친한 양가의 부모가 그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기 위한 것이고,
둘째는 두 집안의 혼수․예물을 서로 상쇄하여 혼인 비용을 절약하려는 경제적 이유였다고 한다.
연구에 의하면 가난한 계층에서 이러한 혼인을 자주 한 것으로 보아 후자의 경우가 더 많았다고 유추해 볼 수 있으나, 요즘이야 신랑신부가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라면 누가 이런 결혼을 하겠는가!
또 ‘까막과부’와 ‘되모시’라는 단어가 있다. 그 뜻이 아래와 같은 것을 보면 과부인 것 같은 까막과부는 실제로는 처녀이고, 처녀인 것 같은 되모시는 실제로는 과부이니 과부가 처녀보다 훨씬 나은 경우이리라.
독자들은 ‘보쌈’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을 것이다. 물고기를 잡는 도구인 보쌈, 우리가 술안주로 먹는 보쌈과 처녀를 몰래 쌈해 왔던 보쌈이 다 보자기 ‘보(褓)’를 쓰는 데 아래 풀이의 ①과 같은 무서운 뜻이 더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고 지나가자.
‘뜨게부부’는 ‘정식으로 결혼을 하지 않고, 오다가다 우연히 만나 함께 사는 남녀’를 말하는데, ‘부부가 아닌 유부남․유부녀가 은밀한 관계를 계속 맺는 것’을 ‘보쟁이다’라고 한다.
이 ‘보쟁이다’와 관련된 단어를 해석하고 맺는다.
남녀가 보쟁이다 보면 언젠가는 들통이 나서 망신당하기 쉽고 급기야는 이혼까지 당하게 되는데, 유부녀와 은밀한 관계를 맺은 그 상대방을 ‘샛서방’이라 하고, 유부남과 은밀한 관계를 맺은 그 상대방을 ‘군계집’이라고 한다.
각 상대방의 호칭인 샛서방의 ‘서방’과 군계집의 ‘계집’은 ‘남편’과 ‘아내’를 낮추어 부르는 말이니 보쟁이는 사람들을 낮추어 이렇게 부르지 않았는가 싶다.
그러한데도 ‘요즘의 우리나라 40대 유부녀 중 애인이 없다고 답한 여자가 30~40% 정도 밖에 안 된다.’ 는 요상한 풍문은 말 그대로 ‘요상한 풍문’에 불과하겠지! 라고 굳이 에둘러 생각해 본다.
움딸 - 죽은 딸의 남편과 결혼한 여자.
덤받이 - 여자가 전남편에게서 배거나 낳아서 데리고 들어온 자식.
누이바꿈 - 두 남자가 서로 상대방의 누이와 결혼하는 일.
까막과부 - 망문과부(望門寡婦). 청혼한 남자가 죽어서 시집도 가보지 못하고 과부가 되었거나, 혼례는 하였으나 첫날밤을 치르지 못하여 처녀로 있는 여자.
되모시 - 이혼하고 처녀 행세를 하고 있는 여자.
보쌈(褓쌈) - ①귀한 집 딸이 둘 이상의 남편을 섬겨야 될 사주팔자인 경우에, 밤에 외간 남자를 보에 싸서 잡아다가 딸과 재우고 죽이던 일. ②뜻밖에 누구에게 붙잡혀 가는 일을 비유해 일컫는 말. ③가난하여 혼기를 놓친 총각이 과부를 밤에 몰래 보에 사서 데려와 부인으로 삼던 일.
뜨게부부(夫婦) - 정식으로 결혼을 하지 않고, 오다가다 우연히 만나 함께 사는 남녀.
보쟁이다 - 부부가 아닌 남녀가 은밀한 관계를 계속 맺다.
샛서방(-書房) - 남편이 있는 여자가 남편 몰래 관계하고 있는 남자.
군계집 - 결혼한 남자가 아내 외에 비도덕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여자.
모를 땐 침묵이 장땡이다.
그래서 '침묵은 금이다'라고 했다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