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하면 내 고향 바다가 떠오른다. 한가위에는 한 마을에서 태어난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 고향 사람들은 타향살이를 하다 약속이나 한 듯이 친지, 친구나 선후배들은 밤에 마을의 부둣가에 모여들었다. 하늘에는 보름달 떠 있고 은빛으로 차랑이는 바다의 부두에 앉아 고향에 돌아간 우리들은 소주를 곁들이며 타향살이 넉두리에 시간 가는 줄 모르다 새벽녘이 가까워지면 집으로 돌아곤 했었다.
내가 이십대 때는 고향 가는 버스 안에서만 23시간을 보내고 간 적도 있었다. 버스 속에서 눈을 떠보니 대전이었다. 그렇게 버스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고향 거금도에 도착하니 꼭박 하루가 지났지만 부모와 형제를 다 만난다는 기쁨에 차 마음은 포근해 지곤 했었다. 고달픈 타향살이는 고향에 다녀온 후부터는 휠씬 수월하게 보낼 수 있었다. 나보다 어려움에 처한 후배나 친구들도 잘 해쳐나간 이야기를 듣고 용기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다짐 때문에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내었다.
지금은 사십대가 된 우리들은 한가위에도 고향에 가지 못한 친구들이 더 많다. 첫째는 잘 꾸려가던 가정이 흔들려 이혼을 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잘 살고 싶던 곳에서 살지 못하고 또 한번 타향으로 떠나 살게 된 것이다.
내 고향 거금도 금산중학교는 한 학년이 5개 반으로 한 반이 60명이 넘었다. 우리 동창생들 중 고향 거금도에는 열 손가락도 안 되는 친구들이 살고 다른 친구들은 서울 경기도 일산시 안산시 수원시 안양시 인천 부산 울산 등 8,90퍼센트가 넘게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
단독 세대에 보금자리 마련해 인생의 황금기를 맞고 있던 우리 또래들에게 닥쳐온 시련은 많다. 갑자기 일자리가 없어지고 직장에 남아 있던 친구들은 친척이나 친구들 보증을 섰다가 월급을 착압 당하는 지경에 몰렸다. 이런 우리 또래의 사십대에게는 한가위는 형벌의 잔치이다.
아이엠 에프 이후로 한가위에 나는 한번도 내 고향 거금도에 가지 못했다. 이번 한가위에도 마찬가지다. 늙으신 어머니가 계신 거금도에 가려고 머리까지 잘 깍고도 끝내 가지 못했다. 그리고 내 죄스러움을 스스로 추스르기 위하여 한 밤중에 대한극장을 찾아갔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쯔이 주연의 영화 ‘연인’도 있었지만 ‘가족'의 표를 샀다. 처음으로 혼자서 심야에 영화를 보았다. 가족은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화두 때문이었다.
영화 상영관의 배정된 내 자석은 가운데 중 가장 오른 쪽이었다. 왼쪽에는 나도 잘 모르는 연인들이었다. 영화가 상영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옆자석의 아가씨가 손수건을 꺼내들고 연신 흘쩍이며 눈물을 닦았다.
정작 나는 한번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세상살이에 완전히 메몰되어 정서를 잃었거나 아니면 영화의 작위적 설정이 내 눈물샘을 자극하지 못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난 후 내 결론은 후자로 결론을 내렸다.
영화의 내용이 작위적이었기 내가 감동을 받기 쉽지 않았다고 느낀 점은 전직 경찰관의 딸(정은 수애분)이 교도소에서 출소한다, 그리고 경찰관이던 아버지가 네살박이 딸아이의 실수로 가위로 눈을 다쳐 작은 동네에서 생선가게로 가정을 꾸려가고, 3년 동안 교도소에서 보낸 정은이 보호관찰로 출소하자, 그녀가 몸담았던 폭력 집단과 관계가 이어진다, 교도소를 갔던 이유는 폭력 집단이 다른 폭력 집단을 무력화시키는 과정에 정은이 칼로 상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그 사건의 와중에 정은이 돈 5천만원을 탈취하여 숨겨 놓았다, 그런데 보스는 정은에게 이를 미끼로 관계하는 기관원에게 몸을 상납하라고 요구한다, 보스의 부하는 정은에게 보스를 린치하라고 부탁하는 데, 정은의 집앞에서 이 말을 아버지(주현 분)가 듣고 딸아이 대신 보스를 칼로 린치하고 자신도 칼에 찔려 죽는다.
마지막 장면은 상당한 무게의 감동을 준다. 정은은 아버지 장례식을 치루다 집에 돌아와 아버지가 사용하던 물건을 정리하다. 낡은 서럽장 속의 봉투를 발견한다. 봉투 안에 있던 가족 사진을 보면서 슬픔에 잠긴다. 폴 오스터라는 미국 소설가가 쓴 '스모그'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휘날래에 감동의 잔물견이 밀려왔다. 스크린으로 관객에게 메시지 전달의 최대 강점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영화를 감상하기 전에 영화관 주변을 세심하게 살펴보니 더러는 가족 단위 관객들도 눈에 띄었다. 그래서 영화관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요즈음은 가족 단위의 관객들도 많다고 하면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최고의 관객은 ‘귀신이 산다’라는 영화이고 연인들이 가장 많이 본다고 하였다. 나는 영화를 감상하고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가족’이 많은 관객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였으리라 믿는다.
가족은 어머니와 더블어 가장 친근하고 포근한 언어이다. 지금처럼 고등학교, 대학을 졸업한 이십대나 삼십대는 일자리가 부족하고, 사십대인 가장(家長)은 직장에서 일터를 잃고, 칠십이나 팔십의 노인층은 한층 외로움을 겪는 현상은 부매랑이 되어 가족이 해체당하고 있다. 가족 중심이던 유교적 이념이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나라는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가족의 동반 자살이 늘어가고 대한민국은 이십대 자살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가족은 한가위 보름달은 아니더라도 항상 서로 용기를 주고 희망을 북돋아주는 울타리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 땅에 사는 이들에게 행복의 쉼터가 되어야 한다.
내가 용석이 친구를 통해 편지를 쓴 건 최근 내 신상에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지.
한가하게 자기 변명을 위한 넉두리가 아니었음을 밝혀둔다. 이유도 개인적 사유도 아닌 공적문제 때문이다.
뎃글 주신 분들께 미안하다는 인사를 올립니다. 이 영화 감상평으로 답을 대신합니다.
내가 이십대 때는 고향 가는 버스 안에서만 23시간을 보내고 간 적도 있었다. 버스 속에서 눈을 떠보니 대전이었다. 그렇게 버스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고향 거금도에 도착하니 꼭박 하루가 지났지만 부모와 형제를 다 만난다는 기쁨에 차 마음은 포근해 지곤 했었다. 고달픈 타향살이는 고향에 다녀온 후부터는 휠씬 수월하게 보낼 수 있었다. 나보다 어려움에 처한 후배나 친구들도 잘 해쳐나간 이야기를 듣고 용기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다짐 때문에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내었다.
지금은 사십대가 된 우리들은 한가위에도 고향에 가지 못한 친구들이 더 많다. 첫째는 잘 꾸려가던 가정이 흔들려 이혼을 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잘 살고 싶던 곳에서 살지 못하고 또 한번 타향으로 떠나 살게 된 것이다.
내 고향 거금도 금산중학교는 한 학년이 5개 반으로 한 반이 60명이 넘었다. 우리 동창생들 중 고향 거금도에는 열 손가락도 안 되는 친구들이 살고 다른 친구들은 서울 경기도 일산시 안산시 수원시 안양시 인천 부산 울산 등 8,90퍼센트가 넘게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
단독 세대에 보금자리 마련해 인생의 황금기를 맞고 있던 우리 또래들에게 닥쳐온 시련은 많다. 갑자기 일자리가 없어지고 직장에 남아 있던 친구들은 친척이나 친구들 보증을 섰다가 월급을 착압 당하는 지경에 몰렸다. 이런 우리 또래의 사십대에게는 한가위는 형벌의 잔치이다.
아이엠 에프 이후로 한가위에 나는 한번도 내 고향 거금도에 가지 못했다. 이번 한가위에도 마찬가지다. 늙으신 어머니가 계신 거금도에 가려고 머리까지 잘 깍고도 끝내 가지 못했다. 그리고 내 죄스러움을 스스로 추스르기 위하여 한 밤중에 대한극장을 찾아갔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쯔이 주연의 영화 ‘연인’도 있었지만 ‘가족'의 표를 샀다. 처음으로 혼자서 심야에 영화를 보았다. 가족은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화두 때문이었다.
영화 상영관의 배정된 내 자석은 가운데 중 가장 오른 쪽이었다. 왼쪽에는 나도 잘 모르는 연인들이었다. 영화가 상영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옆자석의 아가씨가 손수건을 꺼내들고 연신 흘쩍이며 눈물을 닦았다.
정작 나는 한번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세상살이에 완전히 메몰되어 정서를 잃었거나 아니면 영화의 작위적 설정이 내 눈물샘을 자극하지 못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난 후 내 결론은 후자로 결론을 내렸다.
영화의 내용이 작위적이었기 내가 감동을 받기 쉽지 않았다고 느낀 점은 전직 경찰관의 딸(정은 수애분)이 교도소에서 출소한다, 그리고 경찰관이던 아버지가 네살박이 딸아이의 실수로 가위로 눈을 다쳐 작은 동네에서 생선가게로 가정을 꾸려가고, 3년 동안 교도소에서 보낸 정은이 보호관찰로 출소하자, 그녀가 몸담았던 폭력 집단과 관계가 이어진다, 교도소를 갔던 이유는 폭력 집단이 다른 폭력 집단을 무력화시키는 과정에 정은이 칼로 상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그 사건의 와중에 정은이 돈 5천만원을 탈취하여 숨겨 놓았다, 그런데 보스는 정은에게 이를 미끼로 관계하는 기관원에게 몸을 상납하라고 요구한다, 보스의 부하는 정은에게 보스를 린치하라고 부탁하는 데, 정은의 집앞에서 이 말을 아버지(주현 분)가 듣고 딸아이 대신 보스를 칼로 린치하고 자신도 칼에 찔려 죽는다.
마지막 장면은 상당한 무게의 감동을 준다. 정은은 아버지 장례식을 치루다 집에 돌아와 아버지가 사용하던 물건을 정리하다. 낡은 서럽장 속의 봉투를 발견한다. 봉투 안에 있던 가족 사진을 보면서 슬픔에 잠긴다. 폴 오스터라는 미국 소설가가 쓴 '스모그'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휘날래에 감동의 잔물견이 밀려왔다. 스크린으로 관객에게 메시지 전달의 최대 강점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영화를 감상하기 전에 영화관 주변을 세심하게 살펴보니 더러는 가족 단위 관객들도 눈에 띄었다. 그래서 영화관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요즈음은 가족 단위의 관객들도 많다고 하면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최고의 관객은 ‘귀신이 산다’라는 영화이고 연인들이 가장 많이 본다고 하였다. 나는 영화를 감상하고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가족’이 많은 관객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였으리라 믿는다.
가족은 어머니와 더블어 가장 친근하고 포근한 언어이다. 지금처럼 고등학교, 대학을 졸업한 이십대나 삼십대는 일자리가 부족하고, 사십대인 가장(家長)은 직장에서 일터를 잃고, 칠십이나 팔십의 노인층은 한층 외로움을 겪는 현상은 부매랑이 되어 가족이 해체당하고 있다. 가족 중심이던 유교적 이념이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나라는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가족의 동반 자살이 늘어가고 대한민국은 이십대 자살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가족은 한가위 보름달은 아니더라도 항상 서로 용기를 주고 희망을 북돋아주는 울타리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 땅에 사는 이들에게 행복의 쉼터가 되어야 한다.
내가 용석이 친구를 통해 편지를 쓴 건 최근 내 신상에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지.
한가하게 자기 변명을 위한 넉두리가 아니었음을 밝혀둔다. 이유도 개인적 사유도 아닌 공적문제 때문이다.
뎃글 주신 분들께 미안하다는 인사를 올립니다. 이 영화 감상평으로 답을 대신합니다.
향우회날 참석해주어서 고마워
그날 막걸리한잔 못주어서 미안
우리 열심히살자고 열심히 사는병일보기 좋드라
향상 좋은일만 있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