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책읽기의 즐거움을 준 작가이다.
이청준님의 당신들의 천국은 소록도 나환자 촌을 배경으로 새로운 천국 건설을 위한
병원장의 노력인 오마도 간척사업이야기가 글의 중심 줄거리로 1976년 출간된 장편소설이다.
어릴적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철선에서 보왔던 소록도가 소설의 배경이어서
이 소설책에 몰입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당신들의 천국은 소설의 작품성으로도 인정을 받아 현대의 고전이라 불리어지기도 한다.
이청준님의 작품은 서편제, 밀양, 축제, 천년학(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등이
영화로 만들어 지기도 하였다.
단일작가가 100쇄이상 발행된 문학작품을 두 작품 이상 갖고 있는 경우는
고 이청준님(당신들의 천국,낮은 데로 임하소서),조정래님(태백산맥,아리랑) 단 두 명에 불과하다.
참고로 200쇄를 넘는 작품은 조세희님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조정래님의 태백산맥이 있다.
쇄(刷)란 한 번 인쇄한 책이 서점에서 다 팔려 인쇄기를 다시 돌려 새로 찍은 것을
가리키는 말로, 소설의 경우 통상 한쇄에 3,000~1만부 가량을 찍는다.
이청준님이 쓴 소설 (눈길) 관련 글의 일부분이다.
작가의 어려운 시절 어머님과의 경험을 글로 써 한국적 모성의 미학이라고 평한다.
1957년 내 고등학교 1학년 때의 겨울 무렵,
나는 광주에서 넉넉잖은 시골 고향집이 파산으로 남의 손에 넘어가고 ,
홀어머니와 형님 식구 등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져 지낸다는 우울한 소식을 들었다.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나는 방학을 맞아 바로 시골로 내려갔고,
고향집 사립을 들어서는 길로 텅 빈 집안 꼴 로 그것이 사실임을 알게 됐다.
그런데 얼마 뒤 이미 집을 떠나 지내던 어머니가 황황히 나타나 나를 안방으로 데리고
들 어 갔고, 당신은 그동안 비어있던 부엌으로 나가 따뜻한 저녁을 지어 들여와 둘이서
함께 먹고 잠자리를 들었다.
이런저런 정황으로 다 짐작한 일이지만
어머니는 어린 내가 옛날처럼 고향집을 다녀 갈 수 있도록,
외지 자식에게 마지막으로 따뜻한 밥 한 끼 지어먹이고
하룻밤 잠자리도 당신과 함께하고 가게하려
그때까지 새 집주인에게 이사를 미루도록 부탁해두고 그렇듯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하지만 어머니나 나는 서로 아무 말 없이 하룻밤을 지내고
이튿날 새벽 일찍 면소 동네 차부를 향해 눈 덮인 십여리 산길과 신작로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 차부에 이르기 전 인 삼거리 께 에서 광주행 버스를 만나
나는 황급히 차로 올라가고, 이미 돌아 갈데 없는 어머니는 그 눈발 속 어둠속에 혼자 남았다.
그리고 이후 나는 오랜 세월 그 어머니가 그 새벽 눈길을
혼자서 어디로 어떻게 되돌아갔는지 알지 못했다.
돌아갈 고향집이 없거니와,
한 동안 이곳저곳 남의 동네를 남의 집을 떠도는 어머니를 찾아 그것을 물을 수도 없었다.
물을 수 있다 해도 그 이후 어머니의 행적을 듣기가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마음속의 어머니는 늘 그날 새벽의 눈길 속의 추위 속에 어디로 갈 곳을 모르고
그대로 망연히 서 있어온 셈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십수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아직도 이웃마을 오두막에 의지해 지내고 있는
어머니를 모처럼 아내와 함께 찾았을 때 였다.
두 모자간의 옛날의 아픔을 다 헤아리지 못한 아내가,
그래서 그 어머니의 뒷 사연에 두려움이 깊을 리 없는 아내가 끈질기게 파고들어
마침내 그 어머니의 뒷 사연을 캐어내기에 이르렀다.
“ 그래서 어머님은 그때 어떻게 하셨어요?”
잠잠히 입을 다문채 듣고만 있던 아내가 모처럼 한마디 끼어 들었다.
(......)
“어떻게 하기는야 . 넋이 나간 사람마냥 어둠 속에 한참이나
찻길만 바라보고 서 있을 수 밖에야....
그 허멍한 마음을 어떻게 다 말할 수가 있을 거나.....”
노인은 여전히 옛 애기를 하듯 하는 그 차분하고 아득한 음성으로 그날의 기억을 더듬어 갔다.
“ 한 참 그러고 서 있다 보니 찬 바람에 정신이 되돌아 오더구나. 정신이 들어보니 갈 길이
새삼 허망스럽지 않았것냐. 지금까진 그래도 저하고 나하고 둘이서 함께 헤쳐온 길인데
이참에는 그 길을 늙은 것 혼자서 되돌아서려니....거기다 날은 아직 어둡지야........
그대로는 암만해도 길을 되 돌아설수 가 없어 차부를 찾아 들어갔더니라.
한식경이나 차부 안 나무 걸상에 웅크리고 앉아 있으려니
그제사 동녘 하늘이 훤해져오더구나. .....
그래서 또 혼자 서두를 것도 없는 길을 서둘러 나섰는데,
그때 일만은 언제 까지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구나.“
“길을 혼자 돌아가시던 그때 일을 말씀이세요?”
“눈길을 혼자 돌아 가다보니 그 길엔 아직도 우리 둘 말고는
아무도 지나간 사람이 없지 않았겄냐.
눈발이 그친 그 신작로 눈 위에 저하고 나하고 둘이 걸어온 발자국만 나란히 이어져 있구나”
“그래서 어머님은 그 발자국 때문에 아들생각이 간절 하셨겠네요.”
“간절하다 뿐이 었겄냐. 신작로를 지나고 산길을 들어서도 굽이굽이 돌아온
그 몹쓸 발자국 들에 아직도 도란도란 저 아그 목소리가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을 듯한 싶었제.
산비둘기만 푸르르 날아 올라도 저 아그 넋이 새가 되어 다시 되돌아오는 듯 놀라지고,
나무들이 눈을 뜨고 서 있는 것만 보아도 금세 저 아그 모습이 뛰어 나올 것만 싶었지야.
하다보니 굽이굽이 외지기만 한 그 산길을 저 아그 발자국만 따라 밝고 왔더니라.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너하고 둘이 온 길을
이제는 이 몹쓸 늙은 것 혼자서 너를 보내고 돌아가고 있구나 ..?
“어머님 그때 우시지 않았어요 ?”
“울기만 했겄냐. 오목오목 디뎌논 그 아그 발자국마다 한도 없는 눈물을 뿌리고 왔제.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희 지내거라.
부디부디 좋은 운 타고 나서 복받고 살거라....
눈 앞이 가리도록 눈물을 떨구면서 눈물로 저 아그 앞길만 빌고 왔제.... .”
<눈길>은 내게 한마당 해원 굿이요, 소설쓰기가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지고
잠재워 일상의 삶을 이어가게 하는 씻김굿 노릇 일 수 있는 연유다.
글쓰기가 제 아픔 나누기와 상처 어루만지기로부터 비롯됨이 썩 온당한 노릇인지는
모르지만, 그 또한 일종의 자기 기호화로서 동병상련의 이웃 공감을 얻어나가는
조그만 위무의 길이 될 수 있음으로 해서다.
탈때까지 멀뚱 멀뚱 먼곳을 바라보고 있을 어머닐 생각나게 하는군.
늘 무슨 일때문에 오셨다 월요일 출근길에 마추어 모셔다 드리면
근 한시간 동안 기다려야 하니까 그동안 무슨 생각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을까.
산테미 만한 걱정거리 붙들고 이걱정 저걱정 한숨 지우며 있지나 않을까
기다리는 동안 혹 아는 분이라도 있기라도 해서 이야기라도 나누고
가시면 덜 심심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