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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 The Wrestler

by 운영자 posted Jan 1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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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태어난 해는 1968년 초 겨울이었다. 최대한으로 멀리 옛 기억을 되짚어 보더라도 72-3년 이 전으론 특별한 추억 거리, 특히나 레슬링과 관련 된 추억 거리가 없다. 아마 김일의 모습을 TV로 처음 접했던 시기도 그 때 즈음이 아니었나 싶다. 검은 색 타이즈에 검은 색 부츠 차림의 김일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 난다. 필자가 그렇게 레슬링을 처음 보게 되었을 무렵, 김일이란 레슬러 역시 그 무렵 링 위에서 ‘탄생’한 줄만 알고 있었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 아니 기억이었던가? ‘레슬러 - 김일’의 역사는 이미 아주 오래 전에 싹 터있었고, 필자가 가지고 있던 김일에 대한 기억은 그의 전성기가 훨씬 지났을 때의 모습이 대 부분이었다는 점을 후추 명예의 전당을 준비하면서 새삼스레 깨달게 되었다.

 

 참, 기가 막힌 우연인지는 몰라도 김일의 ‘마지막 무대’ 였던 80년대 중반 쯤에 필자는 이미 미국의 World Wrestling Federation (WWF) 와 National Wrestling Association (NWA)에 심취해 있었으니… 딱 5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대한의 건아 ? 김일이 미국 무대를 호령하던 시절을 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요즘 레슬링 팬들이 익히 알고 있을만한 미국 레슬링 계의 거목 ‘프레디 블래시’를 비롯, ‘래리 즈비스코’, ‘리키 스팀보트’, ‘테드 디비아시’, ‘테리 펑크’..등의 아버지들과 미국 땅에서 힘을 겨룰 정도의 김일이었다면, ‘필자도 못 봤던’ 그의 전성기 시절은 얼마나 대단했을지 대략 짐작이 간다. 지금부터 간단하게 ‘레슬러 김일’의 화려했던 링 역사를 되짚어 본다. 30대 중후반의 후추 독자들에겐 그 누구의 경기 전적보다도 은은한 ‘향수’로 다가올 것을 확신한다. 자… 지금부터 ‘안전 벨트’ 잘 메시고 후추와 함께 아름다웠던 시절의 ‘추억 여행’을 한번 떠나 보도록 하자.

년 도

내   용

비   고

 58.12

 ‘오오키 긴다로’ 란 링-네임으로 역사적인 데뷔전 가짐

일본

 63.12.10

 일본의 ‘모도’ 선수와 WWA 태그 타이틀 도전 및 획득

미국 1차 원정 중 스승 역도산 사망 (12.15)

4.9.

전 세계 헤비급 1위 ‘킬러 카부콕스’와의 결전 중, 병에 이마 맞아 24바늘 꿰매는 중상 입음.

미국 휴스턴

65.4

역시 ‘모도’와 한조를 이뤄 북미 태그 챔피언쉽 도전 및 획득

미국 2차 원정

 

세계 헤비급 챔피언 ‘루 테즈’에게도 도전 했으나, 링밖에서 날라 온 의자를 머리가 찢어져 분패

 

65.8.11

일본의 반칙왕 ‘모리’를 상대로 박치 동원. 2-1로 이기며 극동 헤비급 초대 챔피언 등극

첫 귀국 무대

65.11.27

장영철 “레슬링은 쇼 (Show)” 발언 ? 김일 “한국 떠나겠다”

 

66.12.3

아시아 태그 챔피언 등극 (일본의 ‘모도’와)

일본

67.3.22

WWA 세계 헤비급 타이틀 전 개최 성사. 챔피언 ‘마크 루인’에 도전장

서울 개최 승인

67.4.29

챔피언 ‘마크 루인’ 2-1로 꺾고 WWA 세계 챔피언 자리 올라

 

67.5.19

‘마크 루인’과의 리턴 매치에서 면도칼 공격을 당한 김일. 피투성이 된 채로 결국 승리. 교포들 애국가 재창.

미국 L.A.

68.4.

WWA 타이틀 4차 방어전 ‘마이크 디비아시’에게 타이틀 빼앗김

미국서18개월

68.11

‘킬러 오스틴’ 상대로 아시아 헤비급 챔피언 벨트 획득. 그 후, 6차 벙어 성공

국내 복귀전

68.12.4

일본 프로레슬링 챔피언 시리즈 도중, ‘버너드’의 몽둥이 반칙으로 김일의 머리 폭행. 귀 찢어짐 (전치 3주)

일본

69.11

프로 통산 10년 만에 1,500 경기 돌파. 주 4-5회 평균. 김일이 보유했던 통산 타이틀은 WWA 태그 및 싱글 챔피언, 미 로키 마운틴 챔피언, 극동 헤비급 챔피언, 아시아 태그 챔피언, 아시아 헤비급 챔피언 등 8개

아시아 헤비급 채피언 타이틀 전서 ‘미스터 아토믹’ 물리치고 7차 방어 성공

8개월 만에 귀국

70.3.15

‘이와우게’ 상대로 2-1 승리. 아시아 헤비급 타이틀 9차 방어로 건재 과시

장충체육관

70.6.14

세계 최고 NWA 세계 타이틀 매치서 챔피언 ‘J 뱅커’ 와 1-1 무승부. 도전 실패

당시 연령 42세로 추정

70.8.8

아시아 헤비급 선수권 쟁탈전. ‘레그파크스’에 완승. 12차 벙어

 

71.3.19

반칙왕 ‘프레디 블래시’ 와 격돌

장충체육관

71.12.18

세계 프로레슬링 타이틀 한국 시리즈 ‘타이거 마스크’ 누르고 타이틀 방어

 

72.5.18

박치기로 ‘카리버시 하리케인’ 누르고 세계 헤비급 결전 승리

 

72.12.6

초대 챔피언 역도산 사망 후 8년 만에 인터내셔날 헤비급 타이틀전서 역시 박치기의 명수 챔피언 ‘보보 브라질’ 2-1로 역전승. 타이틀 획득 (인터내셔날 챔피언은 루 테즈, 자이언트 바바, 보보 브라질 등 강호들이 챔피언에 올랐던 권위 있는 타이틀)

 

74.10.10

NWA 챔피언 ‘안토니오 이노끼’와 대결. 경기 시간 무제한의 단판 승부에서 분패

같은 역도산 문하생 출신

75.3.22

국내 지방 5개 도시 순회, 국제 프로 레슬링 오픈 시리즈서 ‘이노끼’와 재격돌. 결국 무승부로 끝나.

 

76.8.1

NWA 종신 회원 등록 (아시아 인으로 역도산, 바바에 이어 3번째)

 

78.11.10

한,미,일 프로레슬링 (김덕, 남해산-김일의 사위, 이또 마사오, 딕 부르드)

 

79.4.8

PWF 챔피언 자이언트 바바 초청 5개국 레슬링 개최

바바: 2m 넘는 거구에도 드롭 킥 구사

84.5.5

김일 & 김광식 조, ‘다까시 & 이노우에조 ‘에 역전 폴승. 역도산 아들 ‘모모다 요시히로(이의호)’ 도 출전

김일의 국내 마지막 무대

 

위의 차트에 올라 있는 김일의 ‘적수 명단’을 보면서도 전혀 생소함을 느끼지 못하는 독자들이라면, 최소한 지금쯤 ‘남편’ 소리를 듣고 있을 연령이 되었을 것이고, “엥? 야들은 누구여?”를 내심 외쳐대는 독자들에겐 지금부터 간략한 ‘적응 훈련’을 준비하고자 한다. 김일의 전성기라고 볼 수 있던 60년대, 그는 이미 북미 권과 아시아 권을 ‘자기 집 안방처럼’ 오가며 8개의 챔피언 벨트를 휘두르고 있었고, 특히 태그 팀 매치에선 북미 권에서도 강자의 자리를 군림하고 있었다. 잠시 시계추를 돌려서 80년대 중반 미국의 WWF 광경을 보자. ‘미스터 후지와 미스터 사이토’ 라는 일본인 태그 팀이 WWF 태그 챔피언 쉽에 등극한 때가 있었다. 비록 ‘오오키 긴다로’ 란 이름으로 북미 대륙을 석권하고 다녔을지언정, 당시 김일의 기량은 80년대 ‘후지와 사이토’의 그것에 비교되고도 남을 정도라고 생각한다면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70-90년대 WWF와 NWA의 브루노 사마티노, 닉 바크윙켈, 패트 패터슨,밥 바클런드, 할리 레이스, 헐크 호간, 얼티밋 워리어, 엘리자베스, 릭 플레어, 스팅, 스티브 오스틴…등의 폭발적인 인기와 지지를 지켜 보면서 ‘이런 우라딜… 왜, 우리나라 프로 레슬러들은 저런 화려하고 열광적인 무대에 한명도 설 수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본 팬들도 아마 조금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20년 전 이미 그러한 미국 무대를 주름잡던 선수가 있었으니 그가 김일이었다. 김일이 그 일을 해냈던 것이다.

 

 사실, 필자가 어렸을 때, 외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던 김일의 뉴스를 접할 때면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야~~ 일본에서도 그쪽 애들 이마를 박살 내놓고 있겠구나…’ 하지만, 이 기사를 준비하면서 그런 한 소년의 상상은 사실과 달랐음을 알게 되었다. 김일이 김포 공항을 떠났던 순간부터 그는 이미 김일이 아닌, ‘오오키 긴다로’가 되어있었다는 사실을. 혹자는 ‘쑈킹’ 정도로 받아드릴 수 있을 것이고, 혹자는 ‘배신’ 이란 생각도 들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사실만은 절대로 바뀔 수 없다. 김일로 인해 엄청난 감동과 자극을 받았던 당시 수 천만 고국 팬들에게 그의 이름은 영원히 ‘오오키 긴타로’가 아닌 ‘김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럴 만큼 김일은 고국 팬들에게 충분한 봉사를 했다. 혹시라도 김일의 ‘오오키 긴다로’ 문제가 영 마음에 걸리는 독자가 있다면, 이름 또는 국적 때문에 손기정 옹 아니 남나리 같은 선수들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는 행위와도 별반 다를게 없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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