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6화 : 바다로 창을 내겠소!
올 초에 공직을 퇴직하신 가형께서 고향인 금산 쇠머리(우두)에다가 여생의 보금자리로 삼을 집을 짓고 계신다.
나는 여러 가지 일로 금산엘 자주 가는 편인데 가형을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꼭 받는 질문이 “자네 형, 집 다 지어 가는가?”이다.
지난 4월 중순부터 시작된 집짓기는 오늘날의 현대식 공법이 아닌 황토와 나무토막을 켜켜이 쌓아 벽을 치는 공법으로 그 공사의 진행속도가 무척 느리다. 지금까지 지켜본 바에 의면 외벽은 40Cm의 두께로 먼저 황토를 놓고 그 위에 벽두께와 같은 길이의 나무토막을 35Cm 정도의 간격으로 놓은 뒤 다시 황토로 쌓는 방법의 반복인데 이 황토가 하루 정도 말라서 굳어져야만 다시 한 단을 쌓을 수 있으니 그 속도가 느릴 수밖에! 내벽은 두께 30Cm라는 것만 다를 뿐 쌓는 방법은 같다. 세면장만 타일을 붙이기 위하여 시멘트로 쌓을 뿐 창을 내기 위한 곳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손수 한 단 한 단을 쌓아야 하니 그 작업 속도를 능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황토는 마르면서 갈라지는데 이 갈라짐을 방지하기 위하여 ‘여물’을 섞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도의 차이이지 갈라짐을 백퍼센트 방지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흙이 마르면 갈라진 틈을 메우고 또 흙이 마르면 또 갈라진 틈을 메우는 작업을 수없이 되풀이 하여야 한다는데 이렇게 갈라진 틈을 메우는 일을 ‘사춤’이라 한다.
이 집에서 한 가지 내세울 만한 것은 별채를 조그마한 황토찜질방으로 짓는다는 것이다. 황토가 우리 인간의 몸에 좋다고들 하기는 하니 완공된 후의 기대가 크다.
물론 혼자 계획하고 처음 시도하는 공법이라 몇 가지의 작은 착오도 있지만
모든 것을 도외시하고 혼자서(때론 동생과 내가 조금씩은 도와주지만) 이렇게 묵묵히 땀을 흘리고 계시는 가형을 보면 어느 연속극에서 유행한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만든 옷’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그 정성이 대단하고, 작사도방(作舍道傍) 삼년불성(三年不成)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배제하고 자기만의 계획대로 하나하나 완성시켜 나가고 있는 모습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남으로’가 아닌 ‘바다로’ 창을 내고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시상(詩想)을 떠올리다가 이따금씩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집을 지을 동안의 노고를 혼자 뿌듯이 회상하고 계실 그 날을 당신은 올 연말쯤으로 가늠해 본다지만 내가 보기에는 내년 3월이 지나야 입주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아무런 사고 없이 계획대로 집이 완공되기를 바란다.
한편, 우리 인간들은 다들 고향을 그리면서 살고 있다.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가보고는 싶지만 「꿈에 본 내 고향」의 노랫말과 같이 생활 여건상 자주 갈 수 없는 사람들은 각자마다 나름대로 향수를 달래는 방법을 터득하여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요새는 예전과는 달리 교통이 발달하여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 고향이고 또 통신이 발달하여 고향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있기 때문에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예전보다는 덜한 것 같다.
우리 금산은 오는 12월이면 거금대교(가칭)가 완공되어 언제라도 갈 수 있게 되었다.
명절 때 고향에 가서 되돌아 올 때 배를 타기 위하여 3~4 시간씩을 기다리던 고통도 이젠 옛말이 되었다는 것이다.
금산 쇠머리(우두)가 고향인 나는 고향엘 가도 내가 편히 쉬고 잘 수 있는 나의 집이 없다. 물론 장모님이 생활하고 계시는 처가가 있어 숙박을 걱정하지는 않지만 내가 어릴 적 살았던 옛집이 그리운 것은 사실이다.
나의 경우 우두에서 두 번이나 이사를 하였다.
선친께서 직접 지으신 내가 태어난 집에서는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살았는데 형편상 남에게 팔고(그 집은 산 사람이 헐어버리고 새로 지어 사진 속에만 남아 있다) 오두막집을 사서 살다가 입대하였고(이 오두막집도 헐렸다), 내가 아직 군대에 있을 때 형님께서 그 오두막을 팔고 세 번째 집을 산 것이다. 그런데 그 집마저도 마을의 소방도로를 만들면서 집이 뜯겨 현재는 나대지 상태로 있다.
이렇게 세월의 흐름에 ‘형해(形骸)’조차 없어진 집들이지만 항상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는 것은 그곳이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고향이기 때문이리라.
지금도 쇠머리엘 갈 때마다 마지막 집의 집터를 돌아보곤 하는데 올 여름에는 형수님께서 그 터에다가 호박을 심어 호박넝쿨이 그 터를 점령하고 있었다. 내년에는 고추 등 다른 소채를 심기 위하여 곧 그 호박넝쿨을 걷어내야겠다고 하시는데 이렇게 「호박, 오이, 수박 따위의 덩굴을 걷어치우는 일.」을 ‘넉걷이’라고 한다는 것을 밝히며 언젠가 나도 고향에다 내가 여생을 보낼 집 한 채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주저리주저리 이 글을 썼다.
(2011년 가을에)
사춤 - ①갈라지거나 벌어진 틈.(벽과 장롱의 ~에 자질구레한 물건을) ②담 이나 벽 따위의 갈라진 틈을 메우는 일. ③돌이나 벽돌을 쌓을 때에 그 틈 서리에 시멘트나 모르타르를 채워 다지는 일.
여물 - ①마소를 먹이기 위하여 말려서 썬 짚이나 마른풀.
②흙을 이길 때 바른 뒤에 갈라지지 않도록 섞는 짚.
작사도방(作舍道傍) - 길가에 집짓기라는 뜻으로, 무슨 일에 여러 사람의 의견이 서로 달라서 얼른 결정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
형해(形骸) - ①사람의 몸과 뼈.(~조차 없어진 지 오래되었을 아내의 무덤 가에) ②어떤 구조물의 뼈대를 이루는 부분.(고층 빌딩의 ~) ③내용이 없 는 뼈대라는 뜻으로, 형식뿐이고 가치나 의의가 없는 것을 이르는 말.(탐구 의 정열이 꺼져 버린 교사는 교사의 ~만 남는다) ④생명이 없는 육체.(폭 격이 있은 후 무너진 건물 벽 사이에는 이름 모를 ~들이 여기 저기 흩어 져 있었다) ⑤어떤 형체의 흔적이나 자취.(무너진 건물의 ~가 썩은 이빨 처럼 서 있다)
넉걷이 - 호박, 오이, 수박 따위의 덩굴을 걷어치우는 일.
주저리주저리 - ①너저분한 물건이 어지럽게 많이 매달려 있는 모양. ②너 저분하게 이것저것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모양.
나도 고향에다가 여생을 보낼 집을 짓고는 싶지만
아직은 해야할 일이 남아있고
마누라가 반대하고
자식들이 반대하고
아니, 제일 큰 문제는 돈이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