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화 : 하냥다짐
자기의 전생이 인도인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시인 유시화 님이 인도를 열 번도 넘게 여행하고 쓴 여행기의 제목이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이었던가!
나의 기억이 맞다면 그 책 제1편의 주제어가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인 ‘노우, 프로블렘(NO, PROBLEM)’ 일 것이다.
잠깐 기억을 되살려보면 ‘노우, 프로블렘’은 지은이와 계약한 ‘차루’라는 이름을 가진 택시 운전수가 자주 하는 말이자 인도인들의 철학이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 ‘차루’라는 운전수는 시간 약속을 지키는 법이 없단다.
지은이가 일이 몇 시에 끝나니까 몇 시까지 차를 어디로 대라고 하면 ‘차루’의 대답은 언제나 오케이이므로 그 시각에 약속된 장소로 나가서 기다리지만 역시 ‘차루’는 오지 않는단다. 기다리다 지친 지은이는 결국 다른 이동수단을 이용할 수밖에 없고,
한번은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몇 시까지 차를 호텔 로비 앞으로 대라고 연락을 했고 ‘차루’는 분명히 오케이라고 했는데 또 ‘차루’가 오지 않는다. 또 어쩔 수 없이 다른 이동수단을 이용하여 공항으로 갈 수밖에.
어찌어찌하여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은이는 ‘차루’를 만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하여 화를 내면서 나무라면 차루의 대답은 언제나 ‘노우, 프로블렘’이다.
그것은 「내가 약속을 안 지켰다고 해서 당신의 일이 잘못된 것이 무엇이 있느냐? 결국 당신은 비행기를 탔고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했지 않느냐! 당신이 내게 화를 낸 것은 나를 피곤하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만 피곤하게 할 것이다.」뭐 대충 이런 뜻이란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차루’와 계약을 해지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러나 인도라는 나라가 원래부터 그런 나라인 걸 어찌하겠는가?
‘차루’가 아닌 다른 운전수도 그렇다는 걸 지은이는 알고 혼자 웃는다.
며칠간을 타고 가야 하는 기차지만 누구에게나 나의 지정된 좌석을 빼앗길 수 있는 나라.(왜 내 좌석을 차지하느냐고 따지면 ‘잠시 앉았다가 떠날 자리인데 내 것 네 것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단다)
남의 가방에서도 주인의 승낙을 받지 않고도 화장지를 꺼내가도 되는 나라.(왜 남의 것을 함부로 쓰냐고 말하면 ‘이게 왜 너의 것이냐, 네가 잠시 맡아 있을 뿐이지’라고 반문한단다)
버스 운전수가 정류장에서 자기 볼 일을 위하여 몇 시간을 지체해도 당연하다는 듯 기다리고만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
한쪽에선 시체를 태워서 가루로 만들어 흩뿌리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선 그 물을 먹으며 목욕을 하는 겐지스강이 흐르고 있는 나라.
나도 한번은 꼭 가보고 싶었지만 나 같은 속물은 감히 범접할 수도 없는 나라라고 느껴져서 가보는 것을 보류하고 있는 나라.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상대를 이겨야만 내가 살 수 있는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시간과 일상에 쪼들리며 아우성을 치고 있는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내 자신이 스스로 원칙논자였다고 공언했던 ‘정확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보다는 남을 포용할 수 있는 ‘포근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중히 여기자.
나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말고 상대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연습을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내 자신을 비우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겠지!
오늘, 인도철학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노우, 프로블렘’과 우리 조상들의 생활의 철학이 스며있는 ‘하냥다짐’이라는 단어를 비교해 보면서 잠시 삶의 전장에서 쉬고 있다.
하냥다짐 - 일이 잘되지 못했을 때는 목을 베는 형벌을 받겠다고 하는 다짐.
내일,
신촌에서 있을 개매기 행사에 참여하고자 계획하였는데
태풍이 오고 있다고 하니 계획대로 될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