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화 : 피에로와 각설이
피에로(Pierrot)는 18세기 프랑스의 무언극에서 처음 등장한 어릿광대로 얼굴에 분칠을 하고 원추형의 모자를 썼으며 느슨한 옷을 입고 본 막이 오르기 전에 각종 익살스러운 말과 행동으로 관중을 즐겁게 해 주는 사람이다.
나는 이 피에로를 보고 있노라면 각설이(却說이 또는 覺設이)가 연상된다.
전남 무안군 일로읍에 있는 천사촌(걸인촌)의 대장인 천장근(본명은 천팔만)의 일대기를 묘사한 각설이타령은 가진 것 없어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된 거지들이 있는 자와 가진 자들에 대한 횡포에 대항하면서도 그 한을 안으로 안으로만 숨기면서 절제된 행동을 보여준다.
얻어먹더라도 떳떳한(각설이타령으로 보답) 그들이 강간을 하여 계율을 어긴 동료에게 내린 형벌이 생매장이었듯이 그들은 어지러운 시대를 이용하여 온갖 협잡을 자행하고 있는 기득권층에 대하여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던 것이다. 양반탈을 쓰고서 갖가지 악행을 한 양반의 모습을 재현시킨 탈춤과도 같이.
(참고 : 사전에는 ‘각설이’를 ‘장타령꾼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면서 한자를 ’却說이’로 쓰고 있는데, 다른 해설에서는 모든 것을 깨닫고 그 상황에 맞는 말 곧, 타령을 한다고 하여 ‘覺設이’가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고 박경애 님이 부른 ‘곡예사의 첫사랑’이라는 노랫말에서도 나오듯이 흰 분칠에 빨간 코로 분장한 피에로는 줄을 타면서 행복해 했고 춤을 추면서 신나 했고 공을 굴리며 좋아했고 노래하면서 즐거워했지만 결국 그것은 서글픈 사랑이었다.
자신의 의식과 외부세계는 보이지 않는 막이 형성되어 있는데도 우리의 슬픈 주인공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아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반복적인 실수로 관객을 웃기고 있지만 그것을 보고 웃고 있는 대부분의 관객들도 마음속으로는 무대 위의 피에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자신의 서글픈 운명을 직감하고 있었으리라.
노래를 부른 박경애 님도 그런 것을 느꼈을까?
그래서 그녀는 50세란 짧은 생을 마감하고 저 세상으로 갔을까?
우리 인간들은 모두가 자기 인생이란 연극의 주인공이다.
내가 각설이고 내가 곧 피에로인 것이다.
대본도 내가 써야 하고 감독도 내가 하여야 하는 것이다.
리허설도 없고 다시 찍을 필름도 없고 시사회도 없는.
시작하고부터 마지막 무대의 막이 내릴 때까지 어느 누구의 평가도 무의미한 이 모든 것이 당신이 주인공인 인생이라는 연극이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미 다들 답은 알고 있지만 그 실행이 너무나도 어려운 ………
어릿광대 - ①곡예나 연극 따위에서, 얼럭광대의 재주가 시작되기 전이나 막간에 나와 우습고 재미있는 말이나 행동으로 판을 어울리게 하는 사람. ②무슨 일에 앞잡이로 나서서 그 일을 시작하기 좋게 만들어 주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③우스운 말이나 행동을 하여 남을 웃기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얼럭광대 - ‘광대’를 ‘어릿광대’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예전에 극 각설이타령을 즐겨 찾을 때
나도 무대에 불려 올라가 품바타령을 열심히 따라 할 기회가 있었다.
마지막 후렴인
허이 푸우움~바 잘도 헌다, 품~바 하고 잘도 한다.라며
덩싱덩실 춤을 추는 그 때
나는 관객이자 각설이었다.
언제 다시 그 무대에 다시 서서
이 노래를 불러 볼 기회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