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화 : 지르신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중략)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하략)
누구나 다 아는 우리 국민의 마음에 영원히 회자될 소월의 ‘진달래꽃’이라는 시다. 말의 연금술사인 소월은 이 ‘진달래꽃’ 외에도 민요적인 수많은 서정시로 겨레의 한을 승화시킨 공로로 1999년에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으로도 칭송되었지만 작금에는 친일주의자로 낙인찍히는 아픔도 함께 겪은 사람이다.
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구두의 뒤축을 구겨서 신고 있다. 먼 길을 걷지 않고 담배를 사러 가거나 목욕탕에 가는 등 가까운 곳에 갈 때는 신발을 제대로 신지 않고 구겨서 신는 나를 보고 딸내미는 ‘아빠는 구두도 저렇게 신으니까 오래 못 신는다.’고 타박이다. 그런데 이것도 습관이라 잘 고쳐지지 않는다.
예전 까까머리 중고교 시절.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나팔바지를 입고 가방은 옆구리에 끼고 껌을 쫙쫙 씹으며 눈을 희번덕거리며 걷는 학생을 보면 영락없이 신도 구겨서 신고 있었다.
바로 불량학생의 표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하고 다니는 학생들이 모두 불량학생인 것은 아니었다.
아주 얌전하고 공부만 하는 모범생들도 그렇게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니 그것은 어린 학생들의 소영웅심의 발로였으리라.
이렇게 신을 구겨서 신는 것을 ‘지르신다’라고 한다.
각설하고,
도입부인 ‘진달래꽃’에서 소월은 ‘진달래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라’고 했는데 이 시적인 표현이 맞는가이다.
먼저,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말을 살펴본다.
사뿐히 - =사뿐
사뿐 - ①소리가 나지 아니할 정도로 가볍게 발을 내디디는 모양. ②매우 가 볍게 움직이는 모양.
즈려밟다 - → 지르밟다.
지르밟다 - 위에서 내리눌러 밟다.
소월이 사용한 ‘사뿐히’가 사뿐①을 데려왔는지 사뿐②를 데려왔는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두 가지의 경우가 다 문맥이나 의미상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사뿐①을 데려왔다면 발을 가볍게 내디디는 것과 내리눌러 밟는 것이 중첩되어 혼란스럽고 사뿐②를 데려왔다고 해도 매우 가볍게 내리밟는다는 것이 있을 수 없으므로.
그렇다면 소월은 왜 그렇게 표현했을까?
이 시의 내면에 흐르고 있는 화자의 마음을 살펴보면 이해가 갈 것도 같다.즉, 죽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역설적으로 표현해야 할 정도로 사랑하는 님을 보내야만 하는 애절한 마음을 노래한 이 시에서는 남겨진 자신은 지르밟혀 으깨어지더라도 가시는 당신의 걸음(마음)은 사뿐했으면 하는 화자의 희생적인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이 의문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므로 각자가 확인해 보길 바라며 마지막으로 옷 따위에서 더러운 것이 묻은 부분만을 걷어쥐고 빤다는 뜻의 ‘지르잡다’라는 단어도 있다는 것도 함께 소개한다.
지르신다 - 신이나 버선 따위를 뒤축이 발꿈치에 눌리어 밟히게 신다.
지르밟다 - 위에서 내리눌러 밟다.
지르잡다 - 옷 따위에서 더러운 것이 묻은 부분만을 걷어쥐고 빨다.
여러 가지 일로 바빠 못 들렀다는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겠지만
어쨌던 바빴다.
오늘은 자기 엄마 뱃속에서 10개월을 살다가
이제는 엄마, 아빠를 만나야겠다고 세상에 첫 선을 보인
나의 손녀딸이 태어난 날이다.
철없는 자식(아들)이 얘비가 된 과정을 지켜본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까?
녀석도 이제야 부모의 심정을 하나하나 알아갈 터!
나는 단지 지켜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