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바리자전거에다 마이크,앰프,확성기 도구를싣고 오후늦게쯤 동네어귀에서
아~아~ 마이크테스트 마이크테스트 몇초간을 테스트한다음 숨소린지 왠잡소린지
발음도 정확하지않는 목소리에 마이크를 입에다 바짝들이대고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내고장 금산면민여러분 오늘밤 공회당(극장)에서 여러분을 모시고
상영할 영화, 신성일 엄앵란 주연에 어쩌고 저쩌고 조연이 어쩌고 저쩌고 요렇게 저렇게
몇분간을 숨넘어가는 소리로 논밭에서 일하고 있는 처녀 총각들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요즘 세대 청소년들은 왠 갈고동 까먹는 소리냐고 의아해 하겠지만
그때 그시절 실제 상황을 펼쳐 볼까 합니다.
해가 지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둠벙치(downtown) 장터 옆에 자리잡은 공회당에서
가요 히트곡이 확성기를 통해 밤하늘의 정적을 흐트려 놓습니다.
평소에는 점잖은 걸음걸이를 했던 처녀 총각들이 음악소리에 맞춰 건들건들한 걸음걸이로
공회당 근처에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매표소가 우측에 있고 극장 들어가는 입구에 오씨성을 가진 사장님과 따님이 표를 받고 극장안으로 들여 보냅니다.
주머니 사정이 좋은 사람은 극장안으로 들어가지만
주머니에서 동전소리도 안나는 사람들은 갖가지 궁리를 합니다.
시설과 경비가 허술한 극장안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첫번째는 유리가 깨진 창에다 베니어 합판을 못질 해 놓았는데 그걸 뜯고 들어가는 방법,
두번째는 표받는 사람이 한눈 판 사이에 생쥐처럼 잽싸게 들어가는 방법,
그러다 발각되면 극장 사장님께서는 후라시(손전등)까지 들고 다니며
범인을 찾아내 귀때기를 잡아끌며 밖으로 쫓아 냅니다.
세번째는 극장 왼편에 화장실 통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발을 헛디뎌 ㄸ통(변통)에 빠진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위 방법이 안통할때에는 즉, 창문을 밖에서는 도저히 뜯기 어려울때는
서로 돈을 투자해서 한사람이 정상적으로 표를 구입해 극장안으로 들어간 다음 안에서 창문을 뜯어주고
동료들이 들어오게 하는 지능적인 방법이 있었다고 합니다.
영화는 시작되고 화질은 얼마나 오래된 필름이기에 비가오는 것처럼 줄이 쳐지고 껌벅껌벅 거려도 좋았는데
갑자기 필름이 끊어져 몇분간 중단되고 뒷편 높은곳에서 영사기 기술자가
쩝쩝 껌을 씹어가며 빠른 손놀림을 하기 시작합니다.
기술자 덕분에 영화는 줄거리가 약간 짤리기는 했지만 화면은 빗줄을 쳐가며 해피엔딩을 합니다.
영화는 끝나고 작업은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이웃동네 총각들이 가만 있을 리 없지요.
핸드폰도 없던 시절, 어느동네 뉘집 딸이 예쁘고 심성이 착하다는 정보를 잘도 알아냅니다.
그때는 처녀총각이 말만 주고 받아도 누가 봤다하면 스캔들이 일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안보는 야밤에 사랑을 고백해야 역사가 이뤄집니다.
그때 역사가 이뤄진 분들은 지금쯤 손자손녀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쯤 다닐것 같은디........
한밤의 공회당 근처에서는 영화뿐만이 아니고 지금은 추억으로 남은 별별 사건사고가 수없이 많았습니다.
어느동네 누구가 주먹자랑하다 도리어 코피가 터졌다는 둥, 어느누구는 처녀에게 말을 건네다
경호를 맡은 동네 오빠가 그놈을 캐주가리로 만들었다는 둥,
그러면서 우리네 선배들은 고달프고 외로웠던 시절을 요런 저런 식으로 해소하며
그때 역사가 이루어진 분들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아들딸 잘 낳고 사회적으로 성공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쓴 달중은 그때 초등학교 5~6학년쯤.....
................헤 헤... 째깐한놈이 별걸다 기억하고.........
지금생각해보면 그때 극장을 운영하신 사장님은 인간미가 좋으신분 인것 같습니다.
공회당 바로옆에 철공소가 있었는데도 창문을 허술한 상태로 그냥 놔두고
주머니 사정이 안좋은 사람들을 배려 했던거 같습니다.
나 같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