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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 신양(新陽) : 마을의 지형이 마치 고기잡는 그물처럼 생겼다하여 “발막금 또는 전막금(箭幕金)”이라 부르다가 새로 양지 바른 곳에 생긴 마을이란 뜻으로 신양(新陽)이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05.04.26 20:16

가족

조회 수 1935 추천 수 0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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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하면 내 고향 바다가 떠오른다. 한가위에는 한 마을에서 태어난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 고향 사람들은 타향살이를 하다 약속이나 한 듯이 친지, 친구나 선후배들은 밤에 마을의 부둣가에 모여들었다. 하늘에는 보름달 떠 있고 은빛으로 차랑이는 바다의 부두에 앉아 고향에 돌아간 우리들은 소주를 곁들이며 타향살이 넉두리에 시간 가는 줄 모르다 새벽녘이 가까워지면 집으로 돌아곤 했었다.

내가 이십대 때는 고향 가는 버스 안에서만 23시간을 보내고 간 적도 있었다. 버스 속에서 눈을 떠보니 대전이었다. 그렇게 버스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고향 거금도에 도착하니 꼭박 하루가 지났지만 부모와 형제를 다 만난다는 기쁨에 차 마음은 포근해 지곤 했었다. 고달픈 타향살이는 고향에 다녀온 후부터는 휠씬 수월하게 보낼 수 있었다. 나보다 어려움에 처한 후배나 친구들도 잘 해쳐나간 이야기를 듣고 용기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다짐 때문에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내었다.

지금은 사십대가 된 우리들은 한가위에도 고향에 가지 못한 친구들이 더 많다.  첫째는 잘 꾸려가던 가정이 흔들려 이혼을 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잘 살고 싶던 곳에서 살지 못하고 또 한번 타향으로 떠나 살게 된 것이다.

내 고향 거금도 금산중학교는 한 학년이 5개 반으로 한 반이 60명이 넘었다. 우리 동창생들 중 고향 거금도에는 열 손가락도 안 되는 친구들이 살고 다른 친구들은 서울 경기도 일산시 안산시 수원시 안양시 인천 부산 울산 등 8,90퍼센트가 넘게 타향살이를 하고 있다.

단독 세대에 보금자리 마련해 인생의 황금기를 맞고 있던 우리 또래들에게 닥쳐온 시련은 많다. 갑자기 일자리가 없어지고 직장에 남아 있던 친구들은 친척이나 친구들 보증을 섰다가 월급을 착압 당하는 지경에 몰렸다. 이런 우리 또래의 사십대에게는 한가위는 형벌의 잔치이다.

아이엠 에프 이후로 한가위에 나는 한번도 내 고향 거금도에 가지 못했다. 이번 한가위에도 마찬가지다. 늙으신 어머니가 계신 거금도에 가려고 머리까지 잘 깍고도 끝내 가지 못했다. 그리고 내 죄스러움을 스스로 추스르기 위하여 한 밤중에 대한극장을 찾아갔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쯔이 주연의 영화 ‘연인’도 있었지만 ‘가족'의 표를 샀다. 처음으로 혼자서 심야에 영화를 보았다.  가족은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화두 때문이었다.

영화 상영관의 배정된 내 자석은 가운데 중 가장 오른 쪽이었다. 왼쪽에는 나도 잘 모르는 연인들이었다. 영화가 상영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옆자석의 아가씨가 손수건을 꺼내들고 연신 흘쩍이며 눈물을 닦았다.
정작 나는 한번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세상살이에 완전히 메몰되어 정서를 잃었거나 아니면 영화의 작위적 설정이 내 눈물샘을 자극하지 못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난 후 내 결론은 후자로 결론을 내렸다.

영화의 내용이 작위적이었기 내가 감동을 받기 쉽지 않았다고 느낀 점은 전직 경찰관의 딸(정은 수애분)이 교도소에서 출소한다, 그리고 경찰관이던 아버지가 네살박이 딸아이의 실수로 가위로 눈을 다쳐 작은 동네에서 생선가게로 가정을 꾸려가고, 3년 동안 교도소에서 보낸 정은이 보호관찰로 출소하자, 그녀가 몸담았던 폭력 집단과 관계가 이어진다, 교도소를 갔던 이유는 폭력 집단이 다른 폭력 집단을 무력화시키는 과정에 정은이 칼로 상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그 사건의 와중에 정은이 돈 5천만원을 탈취하여 숨겨 놓았다, 그런데 보스는 정은에게 이를 미끼로 관계하는 기관원에게 몸을 상납하라고 요구한다, 보스의 부하는 정은에게 보스를 린치하라고 부탁하는 데, 정은의 집앞에서 이 말을 아버지(주현 분)가 듣고 딸아이 대신 보스를 칼로 린치하고 자신도 칼에 찔려 죽는다.

마지막 장면은 상당한 무게의 감동을 준다. 정은은 아버지 장례식을 치루다 집에 돌아와 아버지가 사용하던 물건을 정리하다. 낡은 서럽장 속의 봉투를 발견한다. 봉투 안에 있던 가족 사진을 보면서 슬픔에 잠긴다. 폴 오스터라는 미국 소설가가 쓴 '스모그'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휘날래에 감동의 잔물견이 밀려왔다. 스크린으로 관객에게 메시지 전달의 최대 강점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영화를 감상하기 전에 영화관 주변을 세심하게 살펴보니 더러는 가족 단위 관객들도 눈에 띄었다. 그래서 영화관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요즈음은 가족 단위의 관객들도 많다고 하면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최고의 관객은 ‘귀신이 산다’라는 영화이고 연인들이 가장 많이 본다고 하였다. 나는 영화를 감상하고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가족’이 많은 관객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였으리라 믿는다.

가족은 어머니와 더블어 가장 친근하고 포근한 언어이다. 지금처럼 고등학교, 대학을 졸업한 이십대나 삼십대는 일자리가 부족하고, 사십대인 가장(家長)은 직장에서 일터를 잃고, 칠십이나 팔십의 노인층은 한층 외로움을 겪는 현상은 부매랑이 되어 가족이 해체당하고 있다. 가족 중심이던 유교적 이념이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나라는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 가족의 동반 자살이 늘어가고 대한민국은 이십대 자살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가족은 한가위 보름달은 아니더라도 항상 서로 용기를 주고 희망을 북돋아주는 울타리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 땅에 사는 이들에게 행복의 쉼터가 되어야 한다.  

내가 용석이 친구를 통해 편지를 쓴 건 최근 내 신상에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지.
한가하게 자기 변명을 위한 넉두리가 아니었음을 밝혀둔다. 이유도 개인적 사유도 아닌 공적문제 때문이다.

뎃글 주신 분들께 미안하다는 인사를 올립니다. 이 영화 감상평으로 답을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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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재수 2005.04.27 03:19
    사랑하는병일아
    향우회날 참석해주어서 고마워
    그날 막걸리한잔 못주어서 미안
    우리 열심히살자고 열심히 사는병일보기 좋드라
    향상 좋은일만 있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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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석 2005.04.27 11:46
    병일이 친구
    때론 힘들때도 있잖아 . 우리 지난날 힘든거 생각하면 지금은 오히려 괜찮아
    우린 견딜수 이길수 있고 할 수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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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주 2005.04.28 23:36

    너무도 솔직 하리만치 속마음을 거울속에 비춰보이는것 같네
    솔직 한것은 좋지만 자네를 사랑하는 이들를 놀라게 하는 부분들이
    많아 난 엉뚱한생각 까지 하게 됬다네

    무엇이 옳은지 알수없어 망설이다 다시참석 했네
    그리도 마음이 아팟는가 그리도 마음 털어놓을 사람 없던가
    함께만나 풀어가세
    누구나 묶여져 있는 끈들이 있다네 묶인 끈을 풀지 못한체 살아가곤 하지 않는가
    함께 풀수만 있다면 기꺼이 동참 하겠네

    답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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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미 2005.04.29 01:08
    용석이라 함 나 후배인것 같네
    나 일우 누나 지금은 이새상 사람이 안이지만
    일우를 있지 않았겠지?

    누가 일우가 그렇게 갈것이라 생각이나 했는가?
    상상이나 했는가 말일세 인생은 그렇다네
    용서하면서 포응하면서 그렇게
    살아 가세나 사람마다 다 그릇이 다르지 않겠나
    끈 사람 작은사람 끈 그릇이면 끈그릇답게
    작은사람은 작은사람답게

    그리 살세나 자기가 가진 그릇을
    체워가면서 말이세 또
    자기그릇에 만족하면서.............
  • ?
    blue 2005.04.29 11:15
    병일이 친구
    참 오랜만이네
    긴글
    리뉴 해 가면서 정독을 했다네
    용석이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도
    왠지 가슴이 찡한게....
    마주 앉아 술잔이라도 기울여 야 되는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러나 용기를 가지시게
    세상사는일이 다아 그렇고 그렇다지 않는가?
    남들도 다아 비슷하게들 살아가구 있구
    능력있다고 해서 하루 밥 열끼 먹는것두 아니구
    좋은 침대에서 잔다고 좋은꿈 꾸는것두 물론 아니고
    좋은 음식만 먹는다고 행복해 지지도 않지 않던가?
    어차피 개인의 의지대로 안되는 세상
    그 세상 원망하며 울분을 토에 봐야
    결국은 본인의 상처만 더 커지지 않겠는가?
    그냥 무심한 마음으로 훌훌 털어 버리시게
    사노라면 옛말 할 날이 있을걸세
    부디 마음도 몸도 건강하게 추스리길
    내가 믿는 신께 빌어봄세
    기도중에 기억하게네
    가까운곳 캐나다에서 이 순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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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해숙 2005.04.30 12:23
    병일이 동생 무척 반갑네
    구구절절한 사연 편지 꼼꼼이 잘 읽어 봤네
    인생은 다 평탄하지만 않는다는 것이 인생이라네
    굴곡이 있어야 참다운 삶이 있는것 아닌가
    꼭 누구에 사연이라기보다 우리들의 모두에 사연이라 생각하네
    잘 극복하고 사는게 인생인것을 누구에 탓이라 할수 있겠는가
    오로지 앞만 보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게
    우리들의 인생이라 믿네 원망이나 누구에 탓이라 할수 없는것
    굳굳하게 열심히 살세

    재수오빠
    이번 향우회 성황리에 잘 진행 된것 같은데 다 회장님의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수고 마니 하셨구요 항시 건강 하십시요

    이웃집 용석이 반갑고
    우리친구 학주 일미도 반가워

    보고 싶은 순희야
    타국땅 캐나다에서 왔구나
    늘 보고 싶었는데 이곳에서라도 널 만날수 있으니
    다행이고 너무 반갑다
    가족들은 다 건강하고 잘 있겠지
    늘 행복하고 조은일만 있길 바란다
    보고싶다 순희야
  • ?
    진병일 2005.05.02 11:34
    재수 삼촌 항상 여러 향우님들께 세세히 정을 주시고 고향을 향한 열정에 고맙습니다.
    학주 형, 해숙이 누나, 고맙고. 우두 종주 형이 전화왔었는데 누나 이야기도 하더군요!

    캐나다에서 거금도 그리움에 사무쳐 있을 순희 친구에게

    순희 친구 이 친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네.
    출판 경영은 힘들지만 이 보다 더 어려운 시절도 있었다네.
    어머니께 가장 효도 잘 하시는 형님께 미안했지만.
    그런 개인사 편지를 공개적으로 쓴 건 어쩌면
    어머니께 더 넓고 깊은 해아림의 효도를 바란 욕심때문이었다네.
    캐나다에 살면서 문득 문득 고향 생각 친구 생각으로
    마음은 항상 고향 산천을 가득하지 않은가.
    인생사가 생옹지마라서 좋은 일, 굳은 일 엉크러지면서
    산다고 생각하네.
    어제 병환이 친구 아버지 문상 때문에 거금도에 다녀왔네.
    사장에서 제를 지내고 재음식을 나누어 먹다. 잠시 신촌 재우 종건 민호
    흥기 용진 춘택이 하고 신양 정채, 병선, 경순, 남인, 충섭
    배천 학봉이 집에서 순방이가 썰어준 회에 소주 한 잔씩 나누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도 있었다네. 세상이 변하듯 우리들 얼굴도 많이 달라져 있었네.
    순희 친구 항상 건강하고 핼복 하기 바라며 다시 안부 전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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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le 2005.05.03 02:48
    나는 사람이 좀 미성숙한 관계로 댓글에 많이 인색한 편인데
    오늘은 그냥 갈수가 없네요
    먼저
    혜숙언니 정말 고마워요
    우리앞에 많은 세월들이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갑게 맞아줘서요
    기회가 되면 꼭 차 한잔해요
    진국 선배님 여전히 안녕하시죠?
    일미언니도 반가워요
    건강하시죠?
    그외 여러선배님들 반갑습니다
    병일이 친구
    좋아 보이네
    오늘의 이모습이 자네의 참 모습인것 같네 그려
    금산에 다녀왔다고?
    쎄브젯이야 친구 부친 문상이겠지만
    그럼에도 여러친구들 만나서 반가웠겠네
    사실은 내가 작년 여름에 잠깐 한국을 갔었어
    너무 일정이 빠듯한 관계로 다들 연락도 못하고 왔다네
    서울에선 의리의 사나이 흥기 덕분에 잠깐 이나마 재우 민호 재달이 병주 선필 연심이는
    얼굴이나마 볼수 있었다네 정말로 스쳐가듯이....
    그래도 광주에선 1 박을 한 관계로 홍성학선생님이랑 남인이 난희 명숙이랑 밥도 먹고
    노래방에도 가고 .......
    남인이가 어쩜 그리 노래를 잘 부르던지.....
    아마 와이프가 두눈 지긋시 감고 노래하는 그 모습에 반해서
    오늘의 부부가 되지 않았나 쉽더이
    참 즐거운 여행이였었다네
    난 그 동안 참 무심히 살았던것 같애
    우리 친정아부지 말만따라
    그놈에 써 먹지도 못할공부 그것 붙잡고 있니라고....
    이젠 거의 포기했어 안되더라구 또랭하나 건너면 잊어버리고
    왠 놈의 또랑은 또 그레 많은지......
    이게 나의 그릇인가봐
    여보게 친구
    보고싶네
    더 늙기전에 얼굴한번 봐야 되는데....
    글속에 얼핏보니 네이버에 브러그가 있는것 같던데
    접속이 안되더라구
    살다가 생각나면 연락하시게
    sunhee0807@yahoo.co.kr
    하시는 사업 번승하길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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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해숙 2005.05.10 12:07
    순희야
    멀리서 이토록 달려 와 주었구나
    늘 잘 있지 ?
    광주에서 홍성학 선생님을 만나셨다고야
    내가 홍성학 선생님을 무척이나 조아 했는데
    나는 혼자 짝사랑 했는데 저번 우리 신촌 간네들하고 모임때
    그얘기가 나왔어 아무도 모르는줄 알았는데
    친구들이 다 알고 있었데 느그끼리 수근수근 거리기도 했다더구나
    그래서 황당 했지
    친구들하고 웃음으로 마무리 했단다 만
    몇십년을 아무도 모르고 내혼자만 짝사랑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들켰다고 생각하니 너무 허무해
    홍성학 선생님이 나보고 체육학교로 가라고 까지 하셨는데
    정말 체육학교로 갔으면 나 팔자가 달라졌을까 호호호호호
    멀리서나마 우리 잊지 말고 너무너무 행복하게 너무너무 건강하게 살아라
    ~~~~~부산에서 갈매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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