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의 한센병 환자·주민들이 열흘 넘게 성당과 치료소에 모여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43년 동안 환자들을 보살피다 지난달 21일 귀국한 오스트리아 수녀 두 분의
은혜에 감사하며 이별의 슬픔을 누르는 기도다. 마리안네 스퇴거(71), 마가레트 피사렉(70) 수녀는 주민들에게 헤어지는 아픔을 주기 싫다며 ‘사랑하는 친구·恩人은인들에게’라는
편지 한 장만 남기고 새벽에 몰래 섬을 떠났다. 두 수녀는 편지에서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할 때”라며 “부족한 외국인이 큰 사랑을
받았다”고 오히려 감사했다.
오스트리아 간호학교를 나온 두 수녀는 소록도병원이 간호사를 원한다는 소식이 소속
수녀회에 전해지자 1962년과 66년 차례로 소록도에 왔다. 두 사람은 섬에 발을 디딘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마리안네 & 마가레트’라는 표찰이 붙은 방에서 환자를 보살폈다.
환자들이 말리는데도 약을 꼼꼼히 발라야 한다며 장갑도 끼지 않고 상처를 만졌다. 오후엔
죽도 쑤고 과자도 구워 들고 마을을 돌았다. 사람들은 전라도 사투리에 한글까지 깨친 두
수녀를 ‘할매’라고 불렀다. 꽃다운 20대는 수천 환자의 손과 발로 살아가며 일흔 할머니가 됐다.
숨어 어루만지는 손의 기적과, 주님밖엔 누구에게도 얼굴을 알리지 않는 베풂이 참베풂임을 믿었던 두 사람은 상이나 인터뷰를 번번이 물리쳤다. 10여년 전 오스트리아 정부 훈장은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가 섬까지 찾아와서야 줄 수 있었다. 병원측이 마련한 회갑잔치마저
"기도하러 간다”며 피했다. 월 10만원씩 나오는 장기봉사자 식비도 마다해 병원측이
"식비를 안 받으면 봉사자 자격을 잃는다”고 해 간신히 손에 쥐여줄 수 있었다.
두 수녀는 이 돈은 물론, 본국 수녀회가 보내오는 생활비까지 환자들 우유와 간식비,
그리고 성한 몸이 돼 떠나는 사람들의 노자로 나눠줬다.
두 수녀의 귀향길엔 소록도에 올 때 가져왔던 해진 가방만 들려 있었다고 한다.
외로운 섬, 상처받은 사람들을 반세기 가깝게 위로한 두 수녀님의 사랑의 향기는 민들레
씨앗처럼 바람에 날려 어두운 곳을 밝히고 추운 세상을 덥혀 주리라고 믿는다.
부디 두분의 남은 여생에 영광과 축복이 길이 머무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