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파란색 기타같은...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김태은 기자] 7일 오후 8시 사망한 길은정이 지난 4일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마지막 일기를 남겼다.
4일 새벽 0시 32분에 올라온 일기는
'내가 좋아하는 블루'라는 제목으로 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
길은정의 못다이룬 꿈과 안타까움 그러면서도 고통을 초월한 담담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원래 파란색을 좋아한다는 그는 "마지막으로 소원하던 파란색 기타를 선물받았다"며
좀더 일찍 만들어졌다면 열린음악회 무대에 그 기타를 들고 나갈수 있었을 텐데라며 안타까워했다.
죽음을 예감한듯 요샌 책을 읽기도 힘겹고 인터넷에서 오랫동안 글자를 읽고 쓰기도 어렵다며
"암세포가 내 두뇌로 옮겨가 시신경 어느 부분을 누르고 있고 몰핀을 맞고 있다"고
담담히 고백하고 있다
그녀의 마지막 소망은 길은정이란 이름이 새겨진 세상에 단하나뿐인 파란기타를 둘러매고
'호텔 캘리포니아'를 부르며, 순수하고 맑으며 천재성이 빛나는 '파랑색'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다
◆ 일기 전문
파랑이라는 색깔에서 파생된 색이라면 나는 그냥 좋다.
물론 '그냥' 이라는 답은 없어서 깊이 생각하고 따지고 들어가보면 좋아하는 이유를 알 수 있겠지만
지금은 간단하게 생각하기로 한다. '그냥'이라고....
내게는 기타가 2대 있는데 (뭐... 음악을 전문으로하고 기타를 전문적으로 치는 사람들에게는 기타 20여
대 이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는 걸....) 그 두 대 모두 원목 색깔 그대로를 살린 기타다.
물론 어쿠스틱은 원목 의 빛깔과 나무 결을 그대로 살린 기타 중에서 훨씬 더 좋은 기타를 찾기 쉽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파란색으로 칠을 한 기타를 갖고 싶었다.
마침, 국내 기타제조회사인 '콜트Cort'에서, 나만의 이니셜이 새겨진 파란색 기타를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해왔다.
나는 그 분께 '정말이냐?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사실이냐?'고 수도 없이 물었고 너무 좋아 폴짝 폴짝
그자리에서 뛰기도 했고 뱅글뱅글 돌기도 했었다.
나는 '록시'에서나 다른 공연때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함께 무대에 서면 반드시 그 파란색 기타를 메고
파랑보다 더 싱그럽게 연주하고 노래하리라 마음 먹었다.
그 약속은 막 여름이 시작되려는 시점에서 이루어졌고 불과 몇 개월 후 나는 걸을 수 없어졌고
휠체어에서만 생활할 수 밖에 없어졌다. 그래서 이미 욕창까지 생겨버린 정도였다.
그리고 무대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은 꿈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까?
열린 음악회에서 노래를 불렀던 것을 빼곤 대중들 앞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 파란색 기타에 대해서도 잊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크리스마스라고 가슴 설레던 그 날.
바로 크리스마스 이브에 방송국으로 연락이왔다.
그 때 약속했던 기타가 다 만들어졌으니 가지고 가겠다는 것이었다.
볼이 아리도록 추운 날. 달마팔자 님(지금은 폐쇄해 버린 길은정 행복카페의 회원 닉네임)이
산타 클로스처럼, 여성용으로 작고 예쁜 모양에 금색으로 영문 '길은정'이라는 이름을 새긴
파란 색 기타를 들고 찾아오신 것이었다.
파란 색으로 칠을 했지만 원목의 결을 그대로 살려,
얼마나 이 기타를 만드는데 공을 들였는지 금방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정작 잊고 있었던 내 이름이 새겨진, 나 만의 파란색 기타... 세상에 단 하나 뿐인 기타...
그 기타를 쓰다듬으며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만감이 교차하는 울음이었다.
잊지않고 나 만의 기타를 만들고 있었던 '콜트 Cort' 기타회사 직원들과 달마팔자님의 선의를 생각하니
그 어떤 말로도 고맙다는 표현을 대신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고맙다고 말하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한참 동안 기타를 쓰다듬다가 자리를 정리했다.
그대로 있다가는 날을 새도 모를 지경이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더 일찍 만들어졌다면... 열린 음악회에 나갔을 때 연주할 수 있었을 걸' 아쉬운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 꺼내보고 또 꺼내보고, 쓰다듬고 또 쓰다듬고, 소리를 내보고 줄을 맞추고....
휠체어에 앉아 기타를 오래 안고 있기에는 무리한 일이었는데도 나는 그랬다. 나는 그랬다...
그리고 나는 '길은정의 노래하나 추억 둘 송년특집. 라이브 우체국'을 생방송으로 진행할 때
그 파란색 기타로 '호텔 캘리포니아' 를 연주했다.
기타 폭이 좁아, 휠체어에서 조금 앞으로 자세를 빼어 앉으면 연주할 수 있는 모델이라
나는 내 사랑을 흠뻑 담아 기타 줄을 퉁겼다. 행복한 2시간 동안의 생방송이 순간처럼 흘러갔다.
그렇게 파란색, 내 이름이 새겨진, 나 만의 기타와 나는 하나가 된 듯 했다.
아이처럼 자랑하고 싶어 자꾸만
꺼내어 보고 있다. 이젠 기타를 메고 앉을 무대도 없으면서......
요즘은 책을 읽기도 힘겹고 인터넷에서 오랫동안 글자를 읽고 쓰기도 어려워졌다.
의사의 말로는 암세포가 내 두뇌로 옮겨가 시신경 어느 부분을 누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난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이제 모든 것은 내 마음과 정신력에 달렸을 뿐, 병원에서 내게 해 줄 수 있는 일이란,
엄청난 말기 암의 통증을 줄일 수 있는 '몰핀' 주사를 놓아주고 역시 '마약류'로 분류되는
진통제를 처방해 주는 일 뿐이다.
내가 방송하는 목소리를 듣고는 정말 아픈 것 맞냐고 묻는 이도 있는 걸...
이제 모든 것은 내 정신력에 달려있고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덜 받도록 노력해야 할텐데...
내가 하는 일이 아닌, 남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어찌할 수 없기에 스트레스를 줄이는 일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을 것 같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파랑색처럼 순수하고 맑으며 천재성이 빛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 같은 사람.
마지막 인사..(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