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8화 : 거드렁이
흔히들 바둑을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말한다.
포석, 중반, 종반, 끝내기를 거쳐 한 판의 승부를 가리는 바둑은 교육, 취직, 승진, 퇴직(마무리)의 과정을 거쳐 일생을 정리하는 인간사와 매우 흡사한 면이 많아서이다.
바둑이나 장기의 용어에 일수불퇴(一手不退)란 말이 있다. 한 번 착수를 하면 절대로 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릴 적(하급자 시절) 시골에서는 잘못 놓은 수에 대하여 무르기가 예사였는데 우리 인생에 무르기가 없듯이 이제는 바둑에서도 무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불문율이 되어 버렸다.
속기의 달인 프로기사 서능욱 9단은 상대방의 착수와 거의 동시에 착수를 하기로 유명한데 그는 잘못된 그 버릇을 고치려고 염주를 손목에 차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염주를 차고도 그 버릇이 고쳐지지 아니하자 염주 차는 것을 그만 두었다고 하던데 엊그제 TV바둑 대국 장면을 보니 다시 염주를 차고 있었다.
나는 바둑을 썩 잘 두지는 못하지만 매우 좋아한다.
TV프로그램 중 나의 선호도 1번이 바둑채널이다.
그 채널에서 고수들의 바둑내용을 보고 있노라면 그 기기묘묘한 수들과 전판을 내다보는 실력에 찬탄을 금할 수가 없다. 나도 바둑공부를 더하여 지금보다는 실력이 늘었으면 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지만 그때뿐이지 바둑공부에 전념을 하지는 않는다. 노력에 비하여 실력이 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면 할수록 어렵고 두면 둘수록 어려워서이다.
지난봄에 있었던 제3회 BC카드배 세계바둑대회는 나 같은 바둑팬들이 고대하는 시합이었다. 본선, 준준결승전, 준결승전 그리고 대망의 결승전!
그 결승전 상대가 천하의 구리와 이세돌임에랴……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BC카드배 세계바둑대회에서 제1회는 중국의 구리가,
제2회는 한국의 이세돌이 우승했다가 이번 제3회에서는 구리와 이세돌이 결승전에서 만났다. 한ㆍ중 바둑을 대표하는 이세돌과 구리가 자존심이 걸린 한판 승부를 펼치게 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구리와 이세돌은 매우 닮은꼴 기사다. 우선 28세(1983년생)로 나이가 같고 입단년도도 1995년으로 같으며 공식 맞대결에서는 구리가 8승5패로 앞서 있지만 중국리그 등 비공식 대결까지 포함하면 11승11패로 같다. 또한 두 선수의 기풍도 호전적이며 공격적인데 두주불사인 애주가인 것까지 닮았다고 한다.
이 바둑대회가 열리기 전에도 구리와 이세돌의 10번기를 계획했을 정도로 둘은 호적수였는데 이번 BC카드배 결승에서 만나 진검 승부를 하게 된 것이다.
우승상금 3억 원과 준우승상금 1억 원의 차이도 크지만 승리자는 명실 공히 세계의 바둑황제로 불리게 되는 반면 패한 자는 그 후유증이 상당하리라.
중국과 한국의 바둑 자존심 대결인 이 경승전은 말 그대로 드라마틱했다.
제1국(2011.04.23.) : 이세돌 패
제2국(2011.04.24.) : 이세돌 승
제3국(2011.04.26.) : 이세돌 승(이 바둑은 프로라면 절대로 역전될 수 없다는 바둑이 역전되어 화제가 됐었다.)
제4국(2011.04.27.) : 이세돌 패(이 바둑은 반대로 지려야 질 수 없는 바둑을 졌다고 말이 많았다)
제5국(2011.04.28.) : 이세돌 승
결국 마지막 판에 가서야 이세돌의 승리로 막을 내린 이번 제3회 BC카드배 결승전은 우리나라 바둑팬들의 몸에서 엔돌핀이 팍팍 나오게 하고 이세돌의 위상을 다시 한 번 입증한 쾌거였다.
바둑하고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한번 집은 장기짝은 반드시 써야 되는 일’을 뜻한다는 ‘거드렁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고는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의 그 수많은 선택도 무를 수 없는 바둑의 착수와 같이 한결 심사숙고하여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거드렁이 - 장기에서, 한번 집은 장기짝은 반드시 써야 되는 일.
지금 이 시간에
위 두 기사는 중국에서 삼성화재배 결승전(3번기 중 첫째 판)을 치르고 있다.
명실 공히 그들은 세계 최강이자 호적수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