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화 : 무릿매
1970년대 초반에 채 20살이 못된 시골의 젊은 청춘들은 낮에는 집안 일로 바빴지만 혼자의 시간인 밤에는 무엇을 하며 젊은 혈기를 억눌렀을까?
밤이 짧은 봄이나 여름, 가을철에는 역기와 아령으로 근육을 단련시키는 등 육체미운동으로 하루하루의 밤을 넘기곤 하였는데 긴긴밤의 동지섣달에는?
낮에 해우를 하느라고(김의 채취에서부터 시작하여 마른건장까지를 통칭함) 몸이 피곤할 법도 하지만 역시 젊음은 좋은 것!
우리는 내일 새벽 3시쯤부터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밤이면 밤마다 좁디좁으나 따뜻하게 군불을 지핀 우리 집 뒷방으로 모여들었다.
저녁으로 먹은 밥이 부족하지는 않았어도 우리는 라면 사내기 화투를 쳤으며, 굳이 술을 마시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도 막걸리 사내기 화투를 즐겼다.
때로는 마음먹고 담배 따먹기 화투도 쳤지만 시간이 많이 걸려 자주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긴긴 겨울밤을 보내는 방법 중의 백미는 가끔씩 ‘둔벙치(면사무소 소재지로 조선시대에 군사 곧, 병들이 주둔했다는 뜻의 ‘둔병치’가 맞는 표기이나 여기에서는 우리 금산에서 사용하는 ‘둔벙치’로 표기한다) 넘어 가는 것!’
우리 우두마을에서 둔벙치를 갈려면 마을 뒤의 산을 넘어 궁전마을을 거쳐서 가야 하는데 그 산을 넘어가는 길이 얼마나 가파르고 험한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달도 없는 한밤에 지척을 분간할 수도 없는 그 산길을 우리는 잘도 걸어간다.
하기야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때부터 그 나이가 될 때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다닌 길인지라 달이 없고 앞이 안 보인다고 하여 잘못 갈 리가 없는 길이었지만, 그래도 가끔은 미끄러지고 넘어지기도 하면서 잘도 넘어 다녔던 것이다.
우리가 그 춥고 깜깜한 밤에 십리 길의 산을 넘고 들을 건너 도착한 둔벙치는 그래도 비록 육지에서 떨어진 섬이자 시골의 한 마을에 불과하지만 면소무소 등 각종 관공서가 밀집해 있는 우리 금산의 중심지인지라 추운 겨울밤이라고 하더라도 몇 개의 대폿집과 몇 개의 다방에서는 불을 밝히고 오는 손님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가 추렴한 얼마 되지 아니한 돈으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는데 그 목적은 술을 신나게 마실 수 있는 건수 내지는 오늘을 즐길 뭐 재미있는 일을 찾기 위함이다.
당시는 각 마을 간에 어떤 헤게모니(?) 비슷한 것의 쟁탈을 위한 각종 암투가 많아 심심치 않게 마을 청년들 간의 패싸움도 있었고, 누가 누구에게 테러를 당했네(맞았네)하는 소문도 이따금씩 들려오곤 하였다.
우리도 어떤 마을의 청년들만 만나면 때려 줘야 하는 이유(섬인 우리 금산에서도 섬이라고 불리는 그 마을에서 개최한 콩쿠르대회를 구경 간 우리 마을의 어린청소년들이 거기에서 테러를 당했다는 것이다)가 있었는데 그 마을로는 원정을 갈 수가 없다. 원정을 가기 위해서는 밤에 배를 타고 가야하는데 어두운 밤의 뱃길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배는 탈 수 있는 인원이 한정되어 쪽수에서 밀리기 때문이지만, 더욱더 웃기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들이 타고 간 배의 노를 숨겨버리면 우리의 퇴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둔벙치로 넘어간 우리는 드디어 그 마을 청년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그 쪽 마을을 대표하는 우리보다는 쪽수가 훨씬 적은 몇 사람.
패싸움이라도 할 것도 싱겁게 끝나버린 그 날의 싸움은 차라리 ‘무릿매’를 때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그 형님들, 죄송했습니다!
(그 사건 이후 그 마을 청년들이 우리 마을 청년들을 노리고 있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먼 후일에야 들었는데 ‘무릿매’를 이야기하고자 별 꾸쩍스런 옛날이야기를 다 하고 자빠졌네야 그랴!)
무릿매 - ①노끈에 돌을 매고 두 끝을 잡아 빙빙 휘두르다가 한 끝을 놓아서 멀리 던지는 팔매. ②몰매(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덤비어 때리는 매).
지난 주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술 한잔 먹을 기회가 없더니
이번 주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술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