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화 : 자빡
1985년 어느 날.
중학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냈으며, 나의 군 입대 송별연에도 참석했으나 그 이후 연락이 되지 않았던 친구가 내가 살고 있던 여수로 나를 찾아왔다.
나도 잘 알고 있는 간호사와 결혼한 사실은 풍문으로 들어 알고 있던 터라 안부를 물었더니 지금 미국에 가 있고 자기는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모처럼 만났기에 그냥 보낼 수 없어 밤에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지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마지막으로 꺼낸 이야기는 한마디로 나보고 은행대출 보증을 서 달라는 것이다.
광주 백운동에다가 애완용 동물을 취급하는 가게를 내는데 돈이 부족하단다.
처음으로 받은 부탁이라 매정하게 뿌리칠 수가 없어 보증을 서 주었고 그 가게의 개업식에도 참석하여 축하하여 주었는데……
그러고는 몇 개월이나 지났을까?
보증을 선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광주세무서로 전근해서 근무하고 있는데 은행에서 보증한 돈을 갚으라는 독촉장이 왔다. 원금 *****원 9개월 미납이자 ****원 합계 *****원. 언제까지 갚지 아니하면 월급에 압류하겠다면서.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해 보니 연락이 안 된다.
다른 친구들에게 이리저리 수소문을 해 봐도 연락이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
나중에 알고 보니 계획적으로 접근하여 여러 친구들에게 사기를 친 것이다. 물론 그 가게는 우리를 홀리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였고.
결국 마누라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고 넣고 있던 적금을 해약하여 보증 빚을 갚았는데 결국 그런 일로 인하여 그 친구는 영원히 우리 동창들에게 나타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도 내가 생각하는 그 친구보다 더 나쁜 녀석은 자기가 그 친구에게 당했던 사기를 나에게 전가시킨 그 은행원 녀석이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그 은행원 녀석도 이전에 그 친구에게 나와 똑 같은 사기를 당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친구가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은 것을 알고서 자기의 보증의무를 면탈하기 위하여 다시 대출을 일으켜 자기가 보증을 선 금액을 상환하게 하고 그 보증의무를 나에게로 전가시킨 것이다.
뭐 나의 개인적인, 오래된 이야기를, 그것도 자랑할 것도 아닌 내용을 여기에다 쓸 이유도 없지만 굳이 쓰는 이유는 이 글의 소제목인 ‘자빡’이란 단어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자빡 - 결정적인 거절.
자빡(을) 대다(치다) - 아주 딱 잘라 거절하다.
또 한편 자빡이라는 단어에는 「공판장 같은 데서 가마니나 마대 따위에 담은 알곡을 검사한 뒤 등급을 표시하기 위하여 찍는 기구.」라는 뜻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을에 생산된 벼는 추곡수매라는 방법으로 국가에서 수매하고 있는데, 이는 농민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이중 곡가제의 일환으로 시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 수매가를 생산비에 맞게 올려 달라는 농민의 요구는 끝이 없고, 정부는 예산상의 이유로 이를 거부하고 있으니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어찌되었든 수매를 실시하면 검사원들은 벼 가마니에 등급표를 새긴 도장을 찍는데 그 찍는 기구를 ‘자빡’이라고 한다.
올 해는 아직까지 비 피해도 없고 태풍 피해도 없어 쌀농사는 유래 없는 대풍인 것 같다. 많이 생산되고 수매가도 올라가 ‘자빡’을 찍는 검사원들의 손놀림과 농부들의 마음이 훨씬 가벼웠으면 좋겠고, 그리고 남은 쌀로 북한 동포들도 도와 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자빡 - 공판장 같은 데서 가마니나 마대 따위에 담은 알곡을 검사한 뒤 등급을 표시하기 위하여 찍는 기구. (2009년 가을에)
삶(생활)이란 선택의 연속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