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 성냥노리
농사가 기계화된 요즘에는 좀처럼 시골에서 대장간을 볼 수 없지만 언젠가 고흥 과역의 5일장에서 대장간을 볼 수가 있었다. 장날에만 문을 연다는 나름대로의 멋있는 빵모자를 쓴 대장장이는 촌부들이 가져온 낫이며, 호미, 괭이 등을 자동화된 풀무로 불을 피운 화로에 넣어 빨갛게 달구어서 알맞은 높이와 적당한 크기로 만들어 놓은 모루에 올려놓고 망치를 이리 두들기고 저리 두들기고 하여 새 것으로 만들어 냈다.
초등학교 시절,
지서에서 대흥으로 가는 길목의 다리 옆에 박 씨 성을 가진 대장장이를 기억하고 있다. 그 분의 성이 박 씨라고 한 것은 이름이 박옥희라는 그 집 딸이 우리와 동급생으로 같이 학교를 다녔고 나와는 같은 반도 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옥희는 보통 여자 아이들보다는 키가 컸는데 그 이유가 임꺽정처럼 덩치가 크며 얼굴이 나부대대하고 수염이 텁수룩한 자기 아버지를 닮았었나 싶다. 그 분은 노상 검정색 옷을 입고 성냥을 하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사람이 입은 옷이 검정색이 아니라 옷이 땀과 때에 절어 검정색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싶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당시의 우리 시골은 면사무소에 다니는 사람, 학교 교사인 사람, 농협에 다니는 사람 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주 수입원이 해태생산이므로 겨울이 되기 전에는 돈을 만져 보기가 무척 어려웠다. 땅 마지기나 있는 사람은 봄의 하곡(보리) 수매, 가을의 추곡(벼) 수매, 절간고구마 수매 등으로 돈푼깨나 만졌겠지만 그나마 소액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돈이 들어오기가 바쁘게 빌린 돈 갚기에도 급급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거래가 외상이다. 마을의 가게에서 마시는 막걸리 값도 외상이고 대장간에서 성냥한 것도 외상이며, 우리 마을에 달랑 하나 있는 이발소도 외상이다. 추석 때 잡은 돼지 값(이따금 소도 잡았지만)도 외상이고 녹동 장터의 김발 자재 값도 외상이었다.
그러면 이러한 외상값은 언제 갚는가?
바로 김이 시작되면 갚게 되는데 어떠한 경우에도 섣달그믐은 넘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철칙이었다.
우리 마을 이발사와 가게 주인도 대장장이와 같이 섣달그믐이 제일 바쁜 날이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
성냥노리는 ‘대장장이가 외상으로 일하여 준 값을 섣달에 농가로 다니며 거 두는 일.’이라고 했는데, 가게 주인과 이발사가 외상값 받으러 다니는 일은 무엇이라고 했을꼬?
마지막으로 ‘〜장이’와 ‘〜쟁이’의 차이점을 덧붙이고 맺는다.
풀무 - 불을 피울 때에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 골풀무와 손풀무 두 가지가 있다.
모루 - 대장간에서 불린 쇠를 올려놓고 두드릴 때 받침으로 쓰는 쇳덩이.
모탕 - ①나무를 패거나 자를 때에 받쳐 놓는 나무토막.
②곡식이나 물건을 땅바닥에 놓거나 쌓을 때 밑에 괴는 나무토막.
성냥 - 무딘 쇠 연장을 불에 불리어 재생하거나 연장을 만듦.
성냥노리 - 대장장이가 외상으로 일하여 준 값을 섣달에 농가로 다니며 거 두는 일.
성냥하다 - 쇠를 불에 달구다.(※성냥쟁이는 대장장이의 사투리임)
〜장이 - (일부 명사 뒤에 붙어)‘그것과 관련된 기술을 가진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대장장이)
〜쟁이 - (일부 명사 뒤에 붙어)‘그것이 나타내는 속성을 많이 가진 사람’ 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욕심쟁이, 고집쟁이, 멋쟁이) (2010년 봄에)
이곳 빛고을에는 봄을 재촉하듯 비가 내리고 있다.
광양 다압의 매화마을은 내일부터 매화 축제가 열린다는데
이 비가 그치면 구례 산동의 산수유도 꽃망울을 터뜨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