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화 : 먼가래
언젠가 지리산 계곡에 있는 달궁마을에서 시작하여 반야봉을 오를 때.
새벽부터 오르는 산의 정상 부근에 거의 다 와서 마지막 호흡을 조절하면서 다리쉼을 한 곳은 누군가의 돌본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고 곳곳이 패인 오래된 무덤이었다.
우리나라의 산은 무덤이 많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그렇게 높은 곳에 무덤이 있다는 것이 나의 상식으로는 조금 의아하였다.
저기에 묻혀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누가 이렇게 높은 곳에 무덤을 썼을까?
혹시 빨치산의 무덤?
아니면 빨치산에게 희생된 사람의 무덤?
또 그것도 아니면 산을 타다가 사고를 당한 산악인? 심마니?
갖가지 추측을 해보지만 무덤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그 어떤 단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나는 새삼스럽게 오늘 다시 한 번 그 무덤이 왜 거기에 생겼는가를 유추해 본다.
돌보지 않아 곳곳이 패인 것으로 보아 후손들이 찾지 않는지 찾지 못하는지는 모르지만, 이 높은 곳까지 상여를 메고 왔을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정상적인 장례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시로 묻힌????
임시로 그 곳에 묻혔다면 죽은 장소도 그 부근????
왜 이 높은 곳까지 와서 죽었을까????
내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심마니 내지는 산악인인데 100년도 더 된 것 같은 무덤인 걸로 보아 심마니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심마니의 무덤으로 가정하고 나머지 이야기를 계속한다.
같이 온 동료 심마니는 뜻하지 아니한 사고로 죽은 심마니의 시체를 들고 산을 내려 올 수가 없다. 그래서 임시로 그곳에 매장을 하고는 그 사람의 가족에게 알려 준다.
소식을 들은 그 사람의 가족들은 죽은 남편(혹은 아버지)의 시신을 당연히 집으로 모시고 와서 장례를 치러야 했겠지만, 그럴만한 여유가 없어 차일피일 미루다가 끝내 모셔오지 못하여 이렇게 주인 없는 무덤이 되어 100여년의 세월을 풍상에 시달리며 피폐되어 간 것이리라.
전국에 이렇게 돌보는 이 없이 방치된 무덤들이 얼마나 많을까?
별스런 생각을 다 하면서 오늘의 단어를 소개한다.
이렇게 ‘객지에서 죽은 사람을 임시로 그 곳에서 묻는 일’을 ‘먼가래’라고 하며, 위 무덤과 같이 ‘오래되어 거칠게 된 무덤’을 ‘묵뫼’라고 한다. 또한 ‘오랫동안 곡식을 심지 않아 거칠어진 밭’을 ‘묵정밭’ 혹은 ‘묵밭’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관계 기관에서는 우리나라의 산이나 들 각처에 볼보는 이 없이 방치된 수많은 무덤들을 (어떤 방법으로든) 관리하였으면 한다. 그것은 바로 국토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것이기도 하면서 저승으로 가는 사람의 영혼을 편히 인도해 주는 것이기도 하니까!
먼가래 - 객지에서 죽은 사람의 송장을 임시로 그 곳에 묻는 일.
묵뫼 -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 거칠게 된 무덤.
묵정밭 - 오래 내버려 두어 거칠어진 밭. ‘묵밭’이라고도 함.
작년 말에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대문 대신 가로로 걸쳐 놓는,
길고 굵직한 나무'를 뜻하는 '정낭'이라는 단어가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정남'으로 등재되어 있어 이의 시정을 요구했었다.
그 후 인터넷에 올려진 표준국어대사전을 거의 날마다 검색했는데 이제야 '정낭'으로 옳게 실려 있다.
다행으로 여기며 소식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