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암은 진리의 섬 (居金島) 금산면 어전리 (용두산자락) 75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으로 부터 776년전 고려 신종 3년 서기 1209년 해동 불일보조국사(海東佛日普照國師) 께서 창건하셨다.
전설에 의하면 국사께서는 모후산에 올라 터를 찾기 위하여 나무로 조각한 새 세마리를 날려 보냈는데 한 마리는 송광사 국사전에 한 마리는 여수 앞바다 금오도에 한 마리는 우리 금산 이곳 송광암에 앉았다고 하여 삼 송광이라 부른다.
보조국사 께서는 고려 불료를 중흥시키기 위햐여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수행지침으로 하여 조계종을 일으키셨다. 국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송광사에서는 매년 국제학술 세미나가 열리고 있는데 스님의 사상을 흠모하고 수행하는 사람이 해를 거듭할 수록 수가 늘어가고 있다.
송광암은 창건이래 아홉번 중창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지금의 이 모습은 서기 1989년 원공화상의 원력으로 크라운 제과 윤영주 회장의 정재와 면민들의 불심으로 복원되었다.
적대봉의 변화무쌍한 정기와 용두산록에 은은히 울려퍼지는 송암모종(松庵慕鐘) 마를줄 모르는 감로수의 시원함 반야대의 장엄한 낙조는 여기가 극락세계임을 실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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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끝나는 곳에 암자가 있다- 정잔추 著. 中에서 [송광암 편] 발췌.
송광암松廣庵은 위도상 우리 나라 최남단에 위치한 암자 중 하나이다. 다도해의 한 식구로 등재된 거금도에 자리하고 있는데, 돌산 향일암이나 남해 보리암보다도 더 남쪽에 위치한다. 그러니 송광암 가는 길은 쪽빛 다도해 뱃길에다 거금도 안의 진달래꽃 산길이 합쳐지는 독특한 코스인 셈이다.
녹동 항구를 떠나 바닷바람에 몸을 맡기니 번다한 잡생각들이 빨래처럼 헹구어지는 느낌이다. 뭍을 떠난 지 불과 몇 분밖에 안 되었는데도 혹성을 탈출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환우患友들과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어느 신부가 문득 떠올라 소록도의 등대 빛갈이 로만 컬러처럼 그윽해 보이기도 하고.
소록도에 사랑이 있다면 거금도에는 자비가 있다고나 할까. 소록도에는 다 알다시피 환우들의 재활을 위하여 신부, 수녀들이 봉사한 지 오래이고, 거금도 송광암의 스님들은 섬 어부들은 물론 다도해 물고기들을 위하여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기도를 해오고 있음이다.
암자 가는 산길은 금산면 소재지 마을 뒷밭부터 시작된다. 땀이 나면 등뒤로 펼쳐진 바다를 보며 쉬고, 진달래꽃에 눈을 맑히며 쉬엄쉬엄 걸으면 된다. 도회지 삶의 타성으로 결코 빨리 오를 일도, 서둘 것도 없다.
산자락에 얹힌 바다안개처럼 무심히 어쩌지 못한 삶의 한 사연도 접어두는 게 좋으리라.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데는 발걸음만 무겁게 할 뿐이니까.
몸이 고단하면 때로 영혼이 맑아지는지도 모른다. 비바람 맞은 여린 신록의 나뭇잎들이 저렇게 봄을 축복하는 빛깔인 듯 어느새 파래져 있지 않는가. 산길을 힘들게 오르다 보면 이런 깨침도 작은 기쁨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다다른, 풍경 소리 뎅그렁거리는 깊은 암자임에랴! 목마른 이를 기다리고 있는 옹달샘과 그 곁은 표주박이 반갑고 고마울 뿐이다.
송광암은 고려 신종 3년(1200)에 보조국사가 시창한 삼송광중 하나라고 전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보조국사가 모후산母后山에서 절터를 잡고자 나무로 만든 세 마리의 새를 날렸는데, 승주의 현 송광사와 여수 금오도金烏島에, 또 나머지 한 마리는 거금도 송광암에 날아와 둥지를 틀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법당 왼편의 국사봉國師峰을 보면 보조국사와 어떤 식으로든 인연이 있는 암자인 성싶다.
"직장을 잃은 사람들로부터 전화가 많이 옵니다. 며칠 쉬었다 갈 수 없겠는냐구요. 저는 그런 분들에게 암자의 문은 늘 열려 있다고 말합니다."
암주인 일선一善스님의 얘기이다. 직장을 잃은 것도 가슴 아픈데 마음까지 잃으면 더 큰일이 아니겠느냐며 조용히 웃는 스님을 보니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불행한 이웃이 많아진 IMF 시대 이전에도 스님은 저잣거리 사람들을 위한 선 수련회에 몇 년째 지도법사로 참여해 왔다고 한다. 여름에는 송광사로 가서 하고, 겨울에는 이 암자에서 매주 3박4일씩 열어 왔다는 것이다.
풍경 소리뿐 아니라 스님의 얘기에 머리가 맑아진다. 사람들을 만나면 문득 자신만 편하고자 암자 공간에 같혀 사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는 스님의 고백도 나그네의 귀에 남는다.
그렇다. 스님이 몇 년째 왜 선禪 수련회를 하는지 그 이유는 자명하다. 선이 주는 행복의 비결을 누구하고나 더불어 나누고자 함이다. 선이란 사람들의 마음을 편케 해주는, 지식과 빵이 대신하지 못하는 그 무엇이 아닐까.
법당 앞의 철 늦은 동백꽃들이 선의 전언傳言처럼 절절히 붉기만 하다.
전남 고흥군 녹동(도양읍)에서 금진행 배를 20여분 타고 가다가 금진에서 내려, 섬 안을 운행하는 시내버스를 타고 잠시 가다가 금산면 소재지에서 내리면 된다. 암자는 거기서부터 왼편 중촌마을 뒤 산길로 30여 분 거리에 위치한다. (전화 061-843-8488)
* 위 책 본문에 나온 사진 석장은 책 본문에 나온 사진을 디카로 재촬영한 것임을 밝힙니다.
※ 위에 내용은 책길 끝나는 곳에 암자가 있다- 정잔추 著. 中에서 [송광암 편] 에서 발췌한 송광암에 관련된 내용이며 본문글과 사진에 나오시는 '일선스님'은 ' 현재 금장마을에서 '금천선원'을 운영하시며, 전 주지스님으로 계시던 때 하셨던 수련회 프로그램을 수련전문도량 - 금천선원에서 운영하고 계십니다.
송광암과 금천선원은 별개이오니 착오없으시기 바랍니다.
▼ 참선명상 수련전문 도량 금천선원 / 참살이 향토방 수련원 - 거금도 금천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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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암에서 한자 표기 정정바랍니다
松光菴이 아니라 松廣庵입니다
빛광자 가 아니라 넓을광이며
책력암이 아니라 암자암자입니다
수정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요
--나무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