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화 : 고락
자연계의 모든 동물은 위험으로부터 자기 몸을 보호하는 본능을 선천적으로 지니고 태어나는가 보다. 물론 식물도 그러하겠지만 그 부문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것들의 보호본능에 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으니 동물로 한정하여 내가 아는 몇 가지 방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초식동물들은 보호색으로 자기 몸을 보호하는데 청개구리와 메뚜기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청개구리는 풀잎에서 뛰어 놀 때는 푸른색을 띄지만 바위 등에서 쉴 때는 그 바위의 색깔에 맞춰 변화시키며, 메뚜기는 자기가 노는 풀의 변화에 따라 겉옷의 색깔도 변화시켜 나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편, 뱀은 맹독으로 자기 몸을 보호하며(무당벌레는 자기 피부에 쓰디 쓴 액체를 도포한다고 함), 작은 물고기나 조류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것이 자기들을 보호하는 한 방법이라고 한다.(사막의 들소도 마찬가지).
꿩은 의심이 많은 동물이라 가장 안전한 곳에다 보금자리를 튼다는데 그곳은 풍수지리에서 말하고 있는 혈이 있는 장소로 아주 명당이라는 것이다.
또한 위험으로부터 새끼들(병아리)을 자기 품에 감싸 안는 닭은 밤에 잠을 잘 때도 새끼들을 품에 안고 잔다고 한다.
여우는 굴을 세 개 이상 파 놓아 미리 도망갈 곳을 만들어 놓고, 스컹크는 독한 냄새로 적을 물리치며, 도마뱀은 자기 몸의 일부를 떼어 주며 도망친다.
개와 사자는 적을 만나면 갈퀴를 세워 자기 몸을 더 크게 보이게 하고, 고슴도치는 털을 송곳처럼 강하게 세우며, 거북이는 온 몸을 딱딱한 등으로 감싼다.
이렇게 모든 동물들이 보호본능을 갖는데 그럼 우리 인간의 보호본능은 어떤 것일까? 각자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절대적으로 공통적인 것은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삼십육계 줄행랑이 아닐까 싶다.
각설하고,
지금은 치과의원을 경영하면서 여학교 영어교사인 아내와의 사이에 아들(5살) 하나, 딸(두 살) 하나를 둔 우리 둘째 누님의 아들인 현이가 지금도 어린 시절 외갓집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낚시질 이야기다.
내가 군대에 있었던 때의 일이라 나는 함께 하지 못했지만 들은 바에 의하면 나의 형과 동생이 그 조카(당시 초등학교 입학 전)를 배에 태우고 낚시를 했던 모양이다. 어린 아이였지만 조카에게도 낚시질을 하게 하였는데 어쩌다가 조카의 낚시에 문어가 한 마리 물린 모양이다.
어린 아이가 얼마나 신기했겠는가!
자기가 고기를 낚다니! 그것도 일반 어종이 아닌 문어를.
형과 동생은 한참을 웃다가 다시 낚시에 몰두했는데 아뿔싸! 배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던 그 문어가 슬금슬금 아무도 모르게 움직여서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으니!
뒤늦게야 낚아 놓은 문어가 없어진 사실을 알아챘으나 ‘나 잡아 봐라!’ 하고 물속으로 들어가 버린 문어를 다시 잡아 올릴 수는 없는 일.
그때 놓쳐버린 그 문어가 못내 아쉬웠든지 조카 녀석은 거의 30년이 다된 그 일을 지금도 만나면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문어나 낙지는 위험물로부터 도망할 때 먹물(?)을 쏘아 자기의 몸을 은폐하는데 이 쏘는 먹물을 ‘고락’이라고 한다기에 옛 추억과 더불어 소개한다.
줄행랑(-行廊) - ①대문의 좌우로 죽 벌여 있는 종의 방. ②‘도망(逃亡)’을 속되게 이르는 말.
고락 - ①낙지의 배. ②낙지의 배 속에 든 검은 물. 또는 그 물이 담긴 주머니.
추적추적 내리는 저 비는
봄비인가 봄을 재촉하는 비인가?
친한 그 누구와 막걸리라도 한잔 하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