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화 : 안갚음
벌써 20년도 더 지난 1990년 11월 중순 쯤,
삼학도와 유달산으로 유명한 목포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월요일에 직원들 세 명(남자1, 여자 2)이 출근을 하지 않았다.
무슨 연유인지 몰라 이리저리 수소문을 하여 어찌어찌 알게 된 것이 지난 토요일에 전주와 대전 사이에 있는 대둔산으로 등산을 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연락도 없이 출근을 하지 않지? 조난??????!
결국 우리는 내일 아침에 수색대를 보내자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 날.
수색대의 일원으로 광주에서 이른 새벽에 나의 차로 대둔산으로 향하였는데 어둠이 막 가시고 있는 대둔산 입구의 삭막함이란!
겨울을 재촉하는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데 나무의 가지마다에 하나 둘씩 애처롭게 달려있는 낙엽의 잔해는 멋진 향연을 끝낸 무대의 쓸쓸함을 그대로 전하면서 내리는 비에 온 몸을 맡기고 있는데 아까부터 어디선가 ‘까악, 까악’ 하고 들려오는 까마귀들의 울음소리는 그날 아침의 우리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서로가 말을 아끼고는 있지만 직감적으로 오늘의 결과를 예감하고 있는 우리 일행들에게 나는 참지 못하고 말해 버리고 말았다.
‘오늘, 우리는 시체를 찾으러 온 것이다!’라고.
바로 그 놈의 을씨년스러운 날씨 때문에 말이다.
결국 도착한 지 한 시간여 만에 텐트 속에서 싸늘히 주검으로 변해 있는 젊은 청춘들의 시체를 발견해야만 했고, 그 다음 날 화장을 하여 자기들이 온 곳으로 다시 고이 보내 주고서야 우리는 집에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늦가을의 밤 추위 때문에 텐트 안에다가 가스 불을 피워 놓고 잠을 잤는데 공기구멍을 터놓지 않아 산소 부족으로 인한 질식사로 수사가 종결되었음)
을씨년스럽다 - ①보기에 날씨나 분위기 따위가 몹시 스산하고 쓸쓸한 데가 있다. ② 보기에 살림이 매우 가난한 데가 있다.
※참고 : 을씨년은 '을사년→을시년→을씨년'의 변화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말이다. 을사(乙巳)년은 일제가 1905년에 이완용 등 을사오적이라 불리는 친일 고관들을 앞세워 강제로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統監)정치를 실시한 해이다.
당시의 외무대신 박제순과 일본의 특명 전권공사 하야시 곤스케 사이에 을 사보호조약이 체결되었으며, 이 조약은 우리나라의 외교사무 일체를 일본 외무성이 관리 할 것 등의 다섯 조문으로 되어있다. 형식적으로는 1910년에 경술국치를 당하여 우리나라가 일본에 병합되었지만 실제로는 이미 을사보호조약으로 인하여 우리나라가 일본의 속국으로 된 것이다. 따라서 을사년은 우리나라 민중들에게는 가장 치욕스러운 해다. 이러한 사건으로부터 마음이나 날씨가 어수선하고 흐린 것을 ‘을사년스럽다’고 하던 것이 지금의 ‘을씨년스럽다’로 된 것이다.
이야기를 바꾸어, 위에서 날씨가 을씨년스러운 기분이 드는 이유에 까마귀 울음소리도 한 몫을 했다.
언젠가 보았던 글에 의하면 사실 까마귀는 썩은 고기를 먹음으로써 환경을 정화시키는 등 우리 인간에게 아무런 해를 주지 않은 새라고 하던데 우리네 조상들은 까마귀를 흉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즉, 그 분들의 삶이 녹아 있는 속담에는 까마귀가 등장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하나같이 좋지 않은 쪽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예를 들면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까마귀가 까치집을 뺏는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까마귀 열 두 소리 하나도 좋은 것 없다.’ 등등.
이렇게 부정적인 모습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인식되었던 까마귀도 ‘효(孝)’에 있어서만큼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으니 그게 바로 반포지효(反哺之孝)다. 즉, 까마귀는 새끼 때 어미로부터 먹이를 받아먹고 자라지만, 어미가 늙어 기운이 없으면 그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고 한다.
그런데 이 반포지효(反哺之孝)에 딱 맞는 순우리말이 있으니 그것이 ‘안갚음’이다. 이 ‘안갚음’의 뜻도 아래의 풀이와 같이 반포지효와 똑 같다.
안갚음 - ①까마귀 새끼가 자라서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일.
②자식이 커서 부모를 봉양하는 일.(=反哺之孝)
마지막으로 쓰기와 읽는 소리는 비슷하나 뜻은 전혀 반대인 앙갚음을 소개하니 안갚음과 앙갚음을 혼동하지 말고, 또한 ‘안갚음’은 하려고 노력하되 ‘앙갚음’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앙갚음 - 남이 저에게 해를 준 대로 저도 그에게 해를 줌.
(2011년 봄에)
토요일에 금산엘 갔다가 어제(월요일) 늦게서야 되돌아와
오늘 사무실에 출근해서야 컴을 켠다.
쳇바퀴 도는 듯한 인생사를 언제 탈피할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