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 에멜무지로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세무사자격시험준비가 한창 막바지로 향하고 있는 2008년 말쯤에 평소 우리말에 관심이 많으신 자미원 누이께서 '우리말 겨루기 예심에 두 번이나 나가서 두 번 다 필기는 합격했는데 면접에서 떨어졌다.'고 하시면서 나보고 한번 나가보라고 전화를 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때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세무사자격시험준비로 다른 어떠한 것에도 한눈을 팔 수 있는 처지가 아니어서 다음으로 미루고 말았다.
그렇지만 매주 월요일 저녁에 방송되는 우리말 겨루기 프로그램은 빼놓지 않고 시청하였다. 언젠가는 나도 저 우리말 달인이라는 고지를 향해 도전할 욕망을 키우면서.
2009년 한 여름인 8월 10일에 시행된 제46차 세무사자격시험을 끝내고부터 합격자 발표일까지는 두 달여의 시간이 있어 미루어온 우리말 공부와 글쓰기에 시간을 할애하면서 보냈지만 합격이냐 불합격이냐에 나의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드디어 발표일!
발표는 오전 9시 정각에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홈페이지에 공고를 하게 되어 있는데 이날따라 서장이 주재하는 오전 9시부터 시작된 간부회의는 오래만 갔다. 이렇게 생각하면 몇 점으로 합격! 또 저렇게 생각하면 몇 점으로 불합격! 이라면서 갖가지 경우의 수를 다 대입하면서 간밤을 불면으로 새운 나로서는 합격을 자신할 수가 없어 합격 여부가 궁금하다는 이유로 회의장을 빠져나올 수는 없었지만 나의 마음은 온통 합격자 발표에 가 있었다.
드디어 회의가 끝나고 문이 열리니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부하 직원이 뛰어 들어오면서 “계장님, 합격입니다!”하고 외친다.
이렇게 몇 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자 나의 목표는 곧 우리말 겨루기 도전으로 바뀌었다.
공부하는 방법을 잘 모르니 우선은 우리말겨루기 출연자의 모임카페에 올라있는 기출문제를 정리하고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 표준국어대사전을 정독하면서 모르는 단어를 정리해 나갔다. 말 그대로 막고 품은 식이다.
평소에도 우리말과 사투리, 속담 등에 관심이 많았는지라 꼭 우리말 겨루기 방송에의 출연 목적이 아니더라도 잘 몰랐던 우리말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그 자체가 즐거움이었는데 거기에다 방송출연이라는 동기가 덤으로 있으니 공부가 부담스럽거나 지겹지는 않았다.
우리말 공부를 하면서 틈틈이 KBS 홈페이지를 살피니 드디어 지역예심 공고가 올라와 있다.
서울정기예심 : 2009년 11월 21일
광주지역예심 : 2009년 11월 28일
나는 11월 28일 광주지역예심을 최종 목표로 하여 출제방향과 분위기 등을 파악해 보고자 서울정기예심에 에멜무지로 응시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서울정기예심일인 11월 21일은 서울에서 오후 3시에 꼭 참석해야만 할 초교동창의 자녀 결혼식이 있었고 또한 오후 6시에는 20년이 넘게 지속되어온 모임이 있는 날이어서 아무런 부담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험일인 오후 2시부터 KBS본관 라디오 홀에서 100여 명이 참가해 시작된 정기예심은 첫 시간이 필기시험이었는데 나는 운 좋게 4등을 해 첫 파트(한 파트를 6명으로 구성)로 면접에 응할 수 있었다.
응시자들은 성적순으로 면접관들의 질문에 답하였는데 다들 최종합격을 위하여 열심히 응시 동기 및 자기소개를 하였다. 나도 차례를 기다리면서 어떻게 ‘나를 잘 소개할까’를 생각하다가 내가 만든 우리말 공부 노트와 내가 펴낸 거금도닷컴의 속담을 소개하기로 작정했다.
드디어 나의 차례!
(면접관이 내가 미리 써낸 간단한 자기소개서를 보면서 묻는다.)
문 : 어떻게 공부를 하였느냐?
답 : 기출문제와 사전을 보면서 나만의 노트를 만들어서 공부하였다.
(그러면서 그 노트를 건네주었더니 한번 훑어보고는)
문 : 응시하게 된 동기는?
답 : 평소에도 우리 고유어나 전라도 사투리 및 재미있는 속담 등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 사투리와 속담을 정리한 ‘거금도 닷컴’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문 : 거금도닷컴에 소개한 재미있는 속담을 하나 말해 줄 수 있느냐?
답 : 좋다. 여기 젊은 여자 작가님들이 계신데 조금 강도가 센 것으로 해도 괜찮겠나?
문 : 상관없다. 소개해 달라.
답 : 실제 방송이 아니니 이해해 달라. “봄 보지는 쇠저를 녹이고 가을 좆은 쇠판을 뚫는다!”
이렇게 한 방 ‘뻥’ 쳐 주고는 배꼽을 잡고 웃고 있는 면접관들을 뒤로 하고 나는 유유히 시험장을 빠져 나왔다.
그로부터 4일 후인 11월 25일에 발표된 합격자 명단에 버젓이 내 이름이 올라 있었으니 에멜무지로 응시했던 당초의 생각에 비하여 망외의 소득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우리말 겨루기 도전기는 2010년 2월 18일에 녹화를 하여 2010년 3월 8일에 제307회로 방송이 되었는데 내가 운 좋게 우승하여 우리말 달인에 도전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리고 이 출연을 계기로 2010년 7월에 문을 연 나의 사무소 상호를 『달인세무사 김철용사무소』라고 하였다는 것을 2011년 12월 13일에 녹화하고 2012년 1월 2일에 방송된 제399회 우리말 겨루기(패자부활전)에서 밝혔다.
에멜무지로 - ①단단하게 묶지 아니한 모양.(거리가 가까우니 그냥 에멜무지로 안고 가도 되오./먼 길을 떠날 것이니 에멜무지로 대충 묶지 마시오.)
②결과를 바라지 아니하고, 헛일하는 셈 치고 시험 삼아 하는 모양.(한번 에멜무지로 해 본 일이 그렇게 잘될 줄은 몰랐다./에멜무지로 보내 보는 것이니 너무 기대하지 마시오.)
(2012년을 시작하면서)
참 행복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들만의 멍에가 있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이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고 웃어서 행복하다는 말을
새삼 곱씹어보면서도
억지로는 웃어지지 않으니 그게 또한 고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