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설이 지나고
마을은 정월 대보름까지 흥겨운 농악놀이에
남여노소 모두 혼을 빼앗기곤 했다
둥둥 울려대는 북소리 징소리 꽹과리 장구소리가
웃동네 목아랫골 아랫동네 내치동을 돌아
고향산천을 뒤덮고 남았다
그때는 농경사회라 한해 농사의 풍요와 안정을
기원하는 전통의식이었으리라
지금은 자취를 감췄지만 정월 대보름날은 늘
논두렁 밭두렁을 태우는 쥐불놀이가 장관이었다
이는 들판 언덕에 붙어있는 해충의 알을 태워 없애고
모든 잡귀를 쫒아 액운을 달아나게 하여
한 해 동안 무탈하게 잘 지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때를 놓칠세라 연날리기에 지쳐있던 아이들은
깡통에 구멍을 내고 불을 붙여 바다로 내달기도 했다
저녁에는 찹쌀과 밤 대추 등으로 잡곡밥을 먹고
보름달과 뛰놀던 아이들이 출출해지면 김밥을 얻으러 다니며
내 덕(더위) 사가라는 덕담도 주고 받았다
처녀바람이 불때쯤 양지쪽 아래는 겨우내 숨어있던
달래 냉이 씀바귀 등이 수줍게 올라왔다
그위에 봄을 재촉하는 가느다란 비라도 내리면
대지에 묻혀있던 생명들이 꿈틀거리는 설레임에
森羅萬象(삼라만상)은 봄바람에 춤을 출것이다
향촌의 그때를 그려보면서
빛바랜 흑백의 추억을 회상해 본다
- [2020/03/14] 말의 온도 (10)
아침 소나무 숲길을 지나다
두릅 군락을 만났다
껍질을 깨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애처로워
한참을 바라보다 내려왔다
살갗을 스치는 바람은 아직 찬데
멀리서 봄이 엉금엉금 기어오는 것 같다
입춘을 지나 햇빛이 가까워지니
밭 언저리엔 봄나물도 기지개를 켤 준비에 분주하고
일찍 든 거금도의 봄은 다도해 어디쯤에서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있을 듯 싶다
곧 봄이 오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