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모임이라서 나오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형편이 안되어 나가지 못하겠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런지 아시는 분 손들어 보세요.
나이가 벌써 40살 넘었는데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압니다.
좀 제 얘기를 들어보실래요?
전 어린 시절을 섬소년으로 자랐습니다.
고흥반도 끝자락에 자리한 아름다운 섬이었죠.
하지만 그 시절에는 아름다운 섬인 줄 몰랐습니다.
오히려 산비탈 밭자락에서 일하다가 먼발치로 보이는 바다를 보며 밖의 세상을 동경했었죠.
일년에 몇번 어머님 손을 잡고 따라나선 육지행으로 그 목마름을 달래곤 했습니다.
그 후 소년은 고향을 떠났죠.
하지만 그 소년은 이것만은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여기 그 동영상이 있습니다.
해우할라고 여름부터 띠 베어와서 말리고 그것으로 발짱치며 시합하던 모습
아부지는 샌나꾸 꼬신다고 열심히 발 구르시고 동네 애들은 기다랗게 늘어뜨린 샌나꾸줄에 매달려 놀던 모습
동네 사장께에서 삼팔선 놀이에 나이따먹기 놀이에 해가 저물어 들어가면 어머님 정지에서 부지깽이 들고 나오시던 모습
마당에서 발 치시는 아버지와 채전밭에서 이갓잎이나 쫑지 따시는 어머님의 모습
쇠깔 베러 조락을 어깨에 메고 소 몰고 셋바께 나가는 모습
둥기미에 담겨진 해우 퍼서 구시통에 넣고 휘휘 저어 풀은 다음 발짱에 해우뜨는 어머님 모습
해우 뜬 발짱 들어내며 손이 시려 장작불 째며 다시 발짱 들어내는 모습
탈수기에서 해우물 빼고 발때로 지고 가서 건장에서 꼬잴로 해우 널던 모습
점심 먹고 나서 등트기 전에 건장에서 해우 걷어 해우 뱃기는 모습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골태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뒤집어 다시 해우 널던 모습
등터서 갈라 찢겨진 해우조각 너무 많이 먹어서 빵꾸 많이 뀌었던 모습
그 시절 오히려 대우받지 못했던 메셀 뜯어와서 메셀국 끓여먹고 맛있어 했던 모습
해우 10장씩 접어 10매로 한톳 만들면서 해우까리 나오는 모습
한톳 한통 한계의 단위로 해우 박스에 넣어 팔고 오시면서 고기 사오시던 아부지 모습
그 시절 왜 그리 이가 많았는지 따뜻한 건장 앞에 오데오데 모여 앉아 이 잡던 모습
연날리기 하다가 줄이 끊어져 멀리 날아가버린 연 찾으러 뛰어가던 모습
설날이면 큰집에 모여 집안 어르신들께 절 드리고 설돈 타서 꽈자 사먹었던 모습
보름날 깡통에 불 피워 논뚝에 불지르고 쥐도 잡고 밤되면 행님들 지휘로 옆마을하고 불싸움했던 모습
겨울방학 끝나갈 무렵 후배들이 선배들 가르침에 아짐찬하다며 대접했던 모습
학교에 등교하고 학교가 파해서 하교했던 여러가지 모습들
학교 운동장에 잔디 깐다고 잔디 캐러 가고 보리까실 도와준다고 낫들고 가서 보리 베주고 왓던 모습
그 시절 잔디씨가 돈이 된다며 산에 가서 복깨들고 가서 그것으로 잔디씨 훑엇던 모습
퇴비증산운동의 일환으로 각자에게 할당된 수량의 퇴비 만들어 등에 지고 등교했던 모습
학교 등교할 때 교문에서 두발 복장 단속에 무섭기만 했던 선도부선생님의 모습
체력단련의 일환으로 학교에서 금진부락을 돌아 되돌아 왓던 마라톤대회의 모습
겨울철이면 춥다고 때도 제대로 벗기지 않아 손등의 때가 추위에 갈라터져 쩍쩍 금이 간 모습
보리까실때는 발동기에 연결하여 탈곡하며 그 발동기의 물 끓는 곳에 마늘 넣어서 쪄진 마늘 까먹던 모습
보리가실 끝나면 감재순 거두어 밭에 두둑 치고 거기에 감재순 심던 모습
밭에 거름 준다고 똥짱군 지고 가는 아부지와 발때에 퇴비거름 지고 갔던 우리들 모습
학교선생님들께 선물 줄 게 따로 없어 해우 두톳 들고 가서 드렸던 모습
선생님께서 집에 가정방문한다고 열러와서 청소 카카리하고 선생님 오면 열러와서 얼굴 붉어졌던 모습
겨울에 방안에는 감재를 두지에 넣어두고 썩은 것은 버리고 좋은 걸로만 쪄서 맛잇게 먹엇던 모습
쥐들은 왜 그리 많앗는지 쥐 잡는다고 깔아놓은 쥐약 먹고 토지 밑에 들어가 흰 거품 토해내던 불쌍한 우리 개 독구의 모습
더운 여름철 저수똥에 가서 멱갑고 헤엄 못쳐 죽다 살아났던 모습
겨울철 건장 뒤에 숨어 잇다가 도가(양조장) 꼬두밥이 고소하고 맛있어 담장 넘어 꼬두밥 훔쳐 나오던 부락 형들 모습
가을철 나락 베러 가서 논에 새참으로 가져왔던 그 밥 너무 맛잇게 먹었던 모습
감재무광 심어 감재순 자라면 두둑에 심고 자라난 다음 감재 쟁기로 갈아 그 감재 기갈로 썰어 빽빼기 만들었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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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 어머님, 형님, 동생, 큰집 식구들, 작은집 식구들, 외갓집 식구들, 고모집 식구들, 이모집 식구들, 동네분들, 선생님들
그리고 친구들과 나의 모습이
바로 그 모습들이 세월에 다소 바랬지만 마음 속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형편이 안되어 나가지 못하겠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게 저의 마음 속 거금도인가 봅니다.
그래서 모임에 나가야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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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금중13회 윤충호님이 쓴글을 옮겼습니다.
어릴적 우리들의 모습을 넘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추억을 되새김질 해보자는 의미에서 옯겨봤습니다....
낼 모임에 많은 사람들이 오기를 바래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