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화 - 보꾹
내가 사투리를 정리할 때 ‘보꾹’이란 단어를 우리 고향의 사투리라고 하면서
그것을 ‘방의 벽장’이라고 풀이한 바 있는데, 우리 고향 사투리의 대가이신 자미원님께서
이 ‘보꾹’이란 사투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하여 ‘이상하다, 우리 쇠머리에서만 사용했는가?’
하고 의문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말을 나름대로 최종 정리하면서 국립국어연구원에서 발간한 표준국어대사전을
다시 한 번 정독하는 중 이 ‘보꾹’이란 단어가 ‘지붕의 안쪽. 곧 지붕 밑과 천장 사이의 빈 공간에서
바라본 천장을 이른다.’라고 풀이된 것을 발견하고는 마치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환생하신 것 같은
반가움을 느꼈다.
왜냐하면 단어(말)도 태어나서 계속 남아있는 것만 아니라 사용되지 않아 사라져 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내가 자주 사용했던(다른 사람은 잘 모르는) 그 단어가 버젓이 국어대사전에 표준말로 등재되어 있으니 말이다. 비록 그 뜻을 정확히는 모르고 사용하였으나 가만히 살펴보면 의미가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하고 자위하면서.
이 보꾹은 내게는 추억이 많은 곳이다.
가난한 어린 시절이었지만 보꾹엔 엄마가 장롱에 넣지 못한 여러 잡다한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린 호기심에 이 함도 열어보고 저 함도 열어보곤 하였는데 지금도 확실하게 생각나는 것은
여러 가지 옷감(곰팡이 냄새 비슷하면서도 싫지 않은 냄새가 나며 알록달록한)들 뿐이다.
이 옷감들을 순 우리말로 상답이라고 한다는 것도 이번에야 알았다.
또한, 그 좁은 공간은 우리들의 숨바꼭질의 숨는 장소로도 이용되었으며,
나의 비밀스런 물건을 숨기는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구슬치기로 딴 구슬도 거기에 두었고,
아버지가 만들어준 연도 거기에 보관되었다.
이렇게 어린 추억이 담긴 우리 집의 그 보꾹이 지금은 헐어져 없어졌지만,
이 보꾹이란 단어가 살아 있는 한 언제든지 내 마음은 그 곳을 향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이 보꾹과 관련하여 ‘더그매’(=지붕과 천장 사이의 빈 공간.)란 우리말도 함께 알아두면 좋겠다.
상답 - 자식들의 혼인에 쓰거나 훗날에 쓰기 위하여 준비하여 두는 옷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