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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 오정숙 선생님의 동초소리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다섯마당 완창한 최초 여명창/가사문학성 중시… 정확한 사설·정교한 너름새가 특징

○김연수소리 한평생

터질만큼 가득찬 한이 곰삭으면 그 심연에선 투명한 관능이 출렁거린다. 우리 민족은 자정할 수 없는 한을 낯선 강에 띄우고 역사의 바다에 동참한다. 우리의 상처는 소리로 거듭나고 우리의 한은 오장육부를 돌아 역사를 이룬다.

여류명창중 유일하게 판소리다섯마당을 완창한 오정숙씨(60). 동초제의 유일한 인간문화재이다. 소리·발림(연기)·아니리(사설)등 판소리가 요구하는 삼박자를 두루 갖춘 국악계의 여왕.
단단하고 밝은 소리에 다른 이보다 몇배나 긴 달우(바이브레이션)를 떠는 신비함. 오정숙은 타고난 목청과 흡인력,비상한 머리로 김연수소리를 잇는데 성공했다.

74년 국립극장소극장은 오정숙의 「수궁가」완창무대를 감상하려는 청중들로 꽉 찼다.

「춘향가」「흥보가」완창에 이어 또다시 세번째 마당에 도전하는 그의 열창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들. 그러나 오씨는 초조할 따름이었다. 공연시간이 임박해도 자신과 함께 무대에 서야할 고수 김동준씨가 나타나질 않는 것이다. 또한 객석의 동료들이 자꾸만 우는 것이 아닌가.
「수궁가」는 슬픈 소리가 아닌데도. 그의 공연이 끝나자 무대옆에 섰던 고수 이정업씨(동초선생의 지정고수)는 그제서야 두다리를 뻗대며 『갔어. 김연수가 갔어』하며 울부짖는 것이었다.

오정숙은 자신의 완창공연이 있던 날을 떠올릴 때마다 목이 멘다. 하필 그날 스승 김연수선생이 돌아가시다니. 고수 김동준씨는 스승의 빈소를 지켰고 정작 김연수선생의 유일한 후계자인 오씨는 이를 까맣게 모른 채 무대에 오른 것이다.

『생각하면 미칠 것 같아요. 아무 것도 모르고 소리에 빠져있었으니. 공연이 끝날 때까지 그사실을 숨겼던 주변사람들의 심정은 오죽 했겠어요』
김연수선생의 소리제를 위해 한평생을 바치고 있는 유일한 명창 오정숙은 간암으로 돌아가신 스승과의 어이없는 이별을 떠올리며 눈시울이 뜨겁다.

동초 김연수문하에서 소리공부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모두 곁길로 나갔고 동초제를 지켜 세상에 퍼뜨린 이는 오정숙뿐이다. 판소리는 구전돼왔는데 아무리 명창이라도 갑자기 가사가 떠오르지 않으면 붙임새를 이용해 위기를 모면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동초선생은 이런 얼버무림을 허락치 않았다.

아니리 발림 가사전달이 정확하고 마디의 맺고 끊음이 분명해야 한다는 원칙이 그의 대쪽같은 성격을 말해주기도 한다. 선생은 사설의 오자을 바로잡기위해 한학자의 자문을 받았고 「춘향가」염불대사확인을 위해 큰스님을 찾았다. 또 「수궁가」약성가를 정리할 때는 한의사를 찾았고 그가 기록한 「수궁가」약성가의 방문대로 설사약을 지었더니 그대로 나았다는 일화는 이제 전설로 남았다.

제자들에게 연극을 해야 판소리도 할 수 있다며 연기를 강조하기도 했다. 엄한 교육못지 않게 험구도 대단했다. 오정숙은 『스승의 엄한 교육을 대물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머리속에 있는 소리를 고스란히 제자들에게 구전하려니 호랑이선생이 될 수 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청중휘어잡는 연기

정정렬―김연수를 잇는 오정숙은 국악계의 작은 거인이다. 신장1백50㎝의 아담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찬 소리는 기적에 가깝다. 무대에서 청중을 사로잡는 능력 또한 그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마녀의 신비다.
오정숙은 1935년 오삼룡과 문설앵의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외가가 있던 진주에서 났지만 고향은 선친을 따라 전주다. 부친이 44세,모친이 41세때 얻은 귀한 자식이었지만 3년후 어머니의 죽음을 맞는다. 아버지는 재혼하지 않았다.
농사지으며 딸에게 전력투구했다. 평소 판소리를 좋아하고 꽹과리를 즐겨 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소리에 익숙해있던 셈이다. 일곱살부터는 남도민요를 흥얼거리며 귀동냥한 판소리사설까지 읊어댔다. 동네에선 신동한번 구경하자고 줄곧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오정숙의 운명이 현실의 무게를 싣고 굽이치기 시작한 것은 14 세때였다. 광주 박동실선생이 이끄는 아성창극단이 전주에 왔다. 『그 단체엔 지금도 활동 중인 성창순 박옥진씨 등이 활약하고 있었죠. 당시 국극계 비극의 여왕으로 불리던 박옥진씨가 부러워 아성창극단에 입단했어요. 내 운명의 화살이 시위를 떠난거죠』

박옥진 성창순씨와 함께 트로이카시대를 연 그는 이듬해 김연수창극단으로 옮겼다.
박옥진이 춘향이면 오정숙은 향단이었으니 섭섭할 수 밖에 없었다. 김연수창극단원으로 4년간 수행하는 동안 동초의 「춘향전」을 배웠다.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백일독공 7차례나

19세부터는 박보아·병기·옥진남매가 이끄는 삼성여성국극단에서 2년간 두각을 나타냈다. 21세때부터는 판소리학습에 주력했고 김소희선생의 「심청가」를 사사했다. 그러나 10년간의 순회공연에 지친 몸이 아파왔고 정신적으로도 쇄잔했다.

소리에 젖어들 수 없을만큼 허약해져 1년간 칩거했다. 오늘이 있기까지 유일한 쉼표로 꼽히는 기간이었다. 1959년부터는 동초선생의 전수생으로 본격적인 판소리수업이 시작됐다. 「춘향가」 「흥보가」 「수궁가」 「심청가」 「적벽가」등 다섯마당을 마쳤고 동초와의 백일독공도 세차례나 가졌다.

백일독공은 산중 절이나 재각등에 선생을 모시고 들어가 1백일동안 소리공부만 해야하는 처절한 배움이다. 보통 한달도 어려운 고행인데 오씨는 73년부터 완창공연이 있을 때마다 홀로 네차례나 백일독공을 시도했다. 『백일독공 한번하면 그기가 10년 간대요. 완창공연을 앞두고 백일독공을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68년 이이소라단에서 동초와 백일독공하던 때의 일. 소리의 상성이 나오질 않아 울면서 소리연습을 해댔더니 배가 붓고 허리를 구부리질 못했다. 허리가 아파 문안인사를 못하고 있는데 동초는 『자네 배가 많이 부었는가?』물었다. 오정숙은 『어휴 살았네. 오늘 좀 쉬겠네』좋아했지만 『그래도 계속하소. 중단하면 시작안한 것만 못하네』매몰찬 격려가 이어졌다.

자신의 소리제를 똑똑한 제자에게 제대로 전하기 위해 오정숙을 택한 동초의 집념과 동초제에 일생을 걸겠다는 오정숙의 각오가 의기투합했으니 70년대 오정숙의 소리격정은 장관을 이뤘다. 72년 「춘향가」(8시간30분),73년 「흥보가」(5시간),74년「수궁가」(3시간30분),75년「심청가」(6시간),76년「적벽가」(3시간)를 완창해 여창최고지에 올랐다. 동초도 생전 판소리전판공연을 가지지 못했으니 오씨의 완창은 동초제최초의 전판공연이었다. 특히 8시간30분 걸리는 「춘향가」완창은 오정숙의 인기를 예고한 신호탄이었다.

그의 맑은 소리는 다소 쉰듯한 소리가 어울리는 판소리계에 생소함을 주기도 했지만 힘있게 뻗는 소리맛과 청중을 휘어잡는 연기등 공연능력은 그를 따를 사람이 없다. 상복도 터졌다. 75년 제1회 전주대사습놀이에서 판소리장원을 한 이래 83남도문화재 대통령상, 84KBS국악대상등 수많은 판소리경창대회에서 장원하였다.
91년에는 인간문화재로 지정됐고 브리태니커레이블로 「흥보가」완창판소리판도 출반했다.

그의 뒤를 이은 제자들도 판소리대회 대통령상수상자들이 쏟아졌는데 수제자리일주(58·전북지방무형문화재·전주대사습놀이 제5회대통령상),민소완(학원장),조소녀(54·제2회 남도문화제판소리대통령상),은희진(48·국립창극단원),김성애, 김소영(44·전북도립창극단수석), 방성춘씨등 7명이 그들이다. 또 연극배우 강선숙(34),판소리 석사1호인 박미애(27),양명희(28)등이 그 뒤를 이었다.


○평양시민들도 울려

세계각국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나라가 없을 만큼 한국을 대표한 해외공연도 수없다. 90년10월 통일음악제에선 평양시민을 울리고 말았다. 『「심청가」중 부녀상봉대목을 부르는데 북한동포들이 울음을 참다참다 몰래 눈물을 닦아내곤 하데요. 감정을 함부로 표현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겠죠』
오씨의 안전을 책임진 기관원이 『심청이가 아바이를 부를 때 눈물이 뿍 나왔시요』라며 생소한 어투로 감명깊었음을 고백할 땐 콧날이 시큰했다.

인간문화재·다섯마당완창·제자양성·수상·해외공연등 예술가로서 누릴 수 있는 복은 모두 누린 셈이다. 또한 남편 배기봉씨(60·전북예총회장)의 뒷바라지도 오정숙소리공력의 숨은 힘이다.
그는 샘이 많다. 판소리인생45년. 남이 자기보다 소리를 더 잘하면 참질 못한다. 마치 백설공주의 계모처럼. 그의 예술은 이제 양보할 수 없는 무의식의 심연에서 투명하게 자라고 있다.〈유인화기자〉




◎동초제/우람한 동편·아련한 서편제 “융합”

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는 조선조시대의 축조물이다.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서울을 중심으로한 영·정조시대의 경제,충청지역의 중고제,경상도지역의 동편제,전라도의 서편제로 명맥을 이으며 부침을 거듭해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동편제·서편제는 섬진강의 동·서편을 중심으로 발생한 소리며 낙동강권과 남한강상류지역에도 풍진이 남아있다.

판소리의 현대적 이행인 김연수소리는 김씨의 아호를 따 동초제로 불린다. 동초제판소리는 김연수(1907∼74·1964년 인간문화재 지정)선생이 말년에 새로 짠 소리로 동편제의 우람한 소리와 서편제의 아련한 소리를 뽑아 만든 소리다. 학식이 높은 그는 다섯마당의 사설을 정리했고 오자한자를 바로잡기위해 한학자의 자문을 구했다.
임방울씨와 함께 현대판소리계의 쌍벽을 이루던 김씨는 판소리의 두 핵심인 이면(가사·문학성)과 소리(음악성)중 이면을 중시했다. 자연 소리를 중시한 임방울씨와는 끝없는 논쟁을 벌여온 것도 사실이다.

서울중동학교유학후 고향 고흥으로 내려간 김연수선생은 판소리에 발의,7년동안 유성기로 판소리를 독습했고 순천 ▦성준에게 「수궁가」,송만갑에게 「흥보가」와 「심청가」,정정렬에게서 「적벽가」 「춘향가」를 떼는 등 2년만에 다섯마당을 습득했다. 30년대 초반 여러 선생들로부터 배운 소리중에서 좋은 점만을 골라 자신의 소리로 만든 그는 판소리의 창극화를 통해 동초제를 전파했다. 특히 그의 동초제는 정교한 너름새(동작),정확한 사설,다양한 부침새 기교의 사용으로 합리성을 극대화했다. 동초는 30세에 조선성악연구회이사(1937)가 됐고 조선창극단대표(1939),대한국악원장(1957),국립국극단장(1962)등 국악계를 대표하며 판소리의 새로운 지평을 연 명창이다. [[경향신문] 1994-01-28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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