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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11]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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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선을 다한 후 하늘의 뜻을 따른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나는 이 말을 삶의 지침서처럼 가슴속에 간직하며 살았다. 역도산을 만나기 위해 밀항한 것부터가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더욱이 수용소에 갇힌 후 역도산 주소도 모른 채 “제자가 되고 싶다”라는 편지를 보냈었다. 결국 나의 의지가 하늘에 닿았는지 역도산은 그 편지를 읽었고. 나는 마침내 석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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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도산 도장’이라 쓰인 간판 입구에서 두 팔을 벌린 후 환하게 웃고 있는 필자.
역도산을 처음 만났을 때 얼마나 흥분됐고 기분 좋았는지 모른다.


 

내가 ‘자유인’이 된 것은 운도 따랐던 것 같다. 역도산은 최고 인기 스포츠 프로레슬링을 흥행시키기 위해 유망주 발굴에도 적극 나서던 참이었다. 그때 운 좋겠도 나의 편지가 역도산에게 전달됐다. 아마도 역도산은 내가 어떤 인물인지 대개 궁궁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조선인이며. 밀항했고. 또 한국에서 씨름했다는 사실이 여러모로 자신과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한 듯싶다. ‘씨름왕’ 출신 역도산 역시 1940년 관부연락선에 몸을 싣고 혈혈단신 일본에 건너갔지 않았는가.

 

수용소에서 벗어났다. 차창 가에 떨어지는 비가 마치 ‘축복의 비’ 같았다. 요시무라 요시오에게 “어디로 가느냐”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요시무라는 “역도산 선생님 뵈러 간다”라고 말했다.


“예. 역도산 선생님을요?” 너무 놀라 까무러칠 뻔했다. 숨을 고른 후 “진짜냐”라고 물었다. 요시무라는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달리는 차에서 내려 펄쩍펄쩍 뛰고 싶었다. 고향 친구가 곁에 있으면 “나 역도산 만나러 간다”라고 자랑하고 싶었다. 그 험난했던 밀항 과정과 지긋지긋했던 수용소에서의 수감 생활도 역도산을 만난다는 기분에 눈처럼 녹았다.

 

요시무라는 “그렇게도 역도산 선생님 제자가 되고 싶냐”라고 물었다. 당연히 “예”라고 말했다. 요시오는 “정말 힘들고 험난한 과정을 이겨 내야 하는데 자신 있냐”라고 내 의지를 실험하는 듯한 질문을 던졌다. 요시오가 그 같은 질문을 반복적으로 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운동 꽤나 한다는 사람들이 역도산의 제자가 되고 싶어 자진해서 도장에 찾아왔지만 훈련을 견디지 못해 짐을 싸서 돌아간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요시오는 “투혼과 인내와 혹독한 훈련을 이겨 낼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이 요구되는 운동이 프로레슬링이다”면서 수련을 잘해 훌륭한 레슬러가 될 것을 당부했다.

 

나는 프로레슬링이 제 아무리 거친 운동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직 역도산으로부터 프로레슬링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역경을 헤쳐 나갈 자신이 있었다.


수용소를 벗어나 한 시간 정도 달렸을까. 해가 기울 때 차는 도쿄 시내로 진입했다. 차는 니혼바시(日本橋) 닌교초(人形町)의 한 건물 앞에서 멈췄다. 건물에는 ‘力道山道場’이라는 한눈에 들어오는 큰 간판이 걸려 있었다. 근처에는 일본스모협회도 있었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역도산 도장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었다.

요시무라 안내로 도장 안으로 들어갔다. 사각 링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역기·아령·폐타이어·줄넘기·샌드백 등 운동기구가 널브러져 있었다. 비릿한 땀냄새가 코에 와 닿았다.


역도산 도장은 한마디로 역사들이 힘을 내뿜는 육체의 공장 같았다. 도장 안은 세계 최고의 프로레슬러가 되려는 야망에 불타는 그들이 사각의 링과 매트를 뒹굴며 내는 기합 소리로 요란했다. 그들의 훈련 장면을 넋 잃고 쳐다보았다.

 

요시무라는 재촉하지 않았다. 난생 처음 보는 레슬링 훈련 장면을 마음껏 보도록 내버려 뒀다. 그 훈련 장면을 보면서 기대와 걱정이 교차됐다. 어쩌면 내가 상대해야 할 사람들은 저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들은 나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신체 조건이 좋았다. 나는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몸이 곯아 마른 장작처럼 되었다.

한참 뒤 요시무라는 나의 어깨를 툭툭 치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도착한 곳은 관장실이었다. 노크와 함께 방 안으로부터 “누군가”라는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직감적으로 역도산일 것으로 생각했다.

 

 

정병철 기자
사진=이호형 기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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