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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10]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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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 면회실로 가면서 누가 면회 왔는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철문을 열고 면회실로 들어갔다. 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깔끔한 정장 차림의 신사가 맞이했다. 그 신사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당신이 김일이십니까?"

 

처음 보는 사람이 내 이름를 묻는 것이 의아했다. 약간 긴장된 목소리로 "예"라고 짧게 대답했다.

 

"역도산 선생님께 편지를 보낸 사실이 있습니까?" "예."

 


pho_200605161703150105000001050600-001.jpg
↑ 역도산 선생의 신원보증으로 수용소를 빠져나왔다.
수용소를 나오며 교도관과 작별 인사를 나누던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난다.


 

역도산에게 편지를 보낸 사실까지 알고 있는 그의 정체가 무척 궁금했다. "실례지만 누구신지요?" 그제서야 그는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아, 저는 역도산 선생님 비서 요시무라 요시오입니다."역도산의 비서란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예?" 소스라치게 놀랐다. 기쁨·환희·긴장이 교차됐다. 그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픽 웃었다.
 
그 순간 '역도산 선생님이 나의 편지를 봤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면회 온 이유를 정중하게 물었다.

 

 "어쩐 일로 저를 면회오셨는지?"

 

그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역도산 선생님께서 보내셨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역도산 선생님 제자가 되고 싶은 마음에 변함이 없습이까"라며 다시 확인하는 질문을 던졌다. 매달리다시피 "예"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도 "전 역도산 선생님 제자가 되기 위해 말항했습니다. 전 한국에서 씨름을 했습니다. 꼭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애절하게 말했다.
 
그는 나의 강한 의지를 확인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신체 조건에 대해서도 물었다. 키와 체중, 그리고 한국에서 씨름을 했을 때의 전적과 프로레슬링에 대해 무엇을 아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리고 나의 고향과 가족 관계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는 마치 수사관처럼 나의 사생활을 조사했다. 이런저런 사실을 확인한 그는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납시다"라는 말을 남긴 채 휑하니 사라졌다.
 
그와 면회를 끝내고 수감방으로 돌아오는데 갑자기 짜릿한 기분이 등골을 타고 오르락내리락했다. 마치 석방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밀항한 이후 이런 기분을 맛보기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 기분도 잠시뿐이었다. 일주일이 지났는데도 그는 더 이상 연락도 면회도 오지 않았다. '그에게 실수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들었다. 무릎을 꿇고 더 간곡히 "역도산 제자가 되고 싶다"라고 청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되기도 했다.
 
10여 일이 흘렀을까. 교도관이 또다시 나의 이름을 불렀다. 그제서야 '요시오가 면회 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교도관은 대뜸 "김일 석방이다"라고 말했다.
 
깜짝 놀라 거짓말인 줄 알았다. 교도관은 웃으면서 "김일 이제야 소원 풀었네"라며 석방을 축하해 줬다. 교도관은 "역도산 선생이 당신 신원보증을 해 줬기 때문에 석방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역도산 선생이 너무 고마웠다. 주먹을 불끈 쥐고 위아래로 흔들며 허공을 향해 "고맙습니다"란 말을 수십 번 외쳤다. 수용소 생활 4개월 만에 비로소 자유인이 됐다. 굳게 잠겼던 수용소 철문이 마침내 열렸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던 교도관과 인사를 나눈 후 그 지긋지긋한 수용소를 걸어 나왔다.
 
저 멀리서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나를 면회왔던 요시오였다. 그는 "석방을 축하한다"라며 차에 태웠다. 난생 처음 타 보는 고급 승용차였다. 하늘에선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그 비는 마치 나의 석방을 축하해 주는 것 같았다. 차는 미끄러지듯 형무소를 빠져나갔다.

 

정병철 기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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