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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도전 : 박치기왕 김일 [7]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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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항을 출발한 지 20시간이 넘어서야 시모노세키항에 도착했다. 새벽에 본 시모노세키항은 여수항과 별 차이가 없었다. 항구의 주변 환경을 보면서 한국의 다른 항구에 도착한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이곳이 일본이란 사실을 깨닫게 해 준 것은 언어였다. 귓가로 들리는 일본어가 내가 일본에 왔다는 사실을 절감케 했다. 그렇지만 시모노세키항과 일본인들의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며 `여행 낭만`에 빠질 여유가 없었다. 강심장이라고 자부해 왔지만 일본 땅을 밟는 순간부터 간이 콩알만 해졌다. 혹시 체포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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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도산 문하생 시절 배 위에서 웃으며 육지를 가리키는 과거의 사진을 보니 밀항 때의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당시 나는 푸른 꿈을 안고 시모노세키항에 도착했지만 역도산은 없었고, 시련만이 나를 기다렸다.



 

밀항자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최대한 옷차림에 신경을 썼다. 그리고 여유 있는 표정을 지으려고 했다. 또 누군가 일본어로 물어 보면 일본 어디 출신이고, 이곳에 왜 왔는지 정도는 말할 줄 알아야 된다는 생각에서 답변을 중얼중얼 외웠다.

 

시모노세키항에서 시노모세키역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걸어서 10분 정도였다. 빠른 걸음걸이로 시모노세키역으로 갔다. 먼저 오사카역으로 가기로 했다. 노선과 요금표, 그리고 열차 시간표를 봤다. 일본어로 쓰여 있어 잘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오사카(大阪)로 표기된 일본어쯤은 알고 있었다. 한국서 몰래 환전했던 돈으로 기차표를 샀다. 얼마의 거스름돈이 내 손에 쥐어졌다. 대합실에서 열차를 기다린 후 마침내 열차에 올랐다. `무사히 탔구나.`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오사카까지는 무사히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긴장이 약간 풀렸다. 그 순간 배가 고픔을 느꼈다. 기차 안의 음식 냄새는 코를 자극했다. 아침이라 그런지 좌석마다 삶은 달걀, 또는 밥 먹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배는 꼬르륵 하며 밥을 달라고 요동쳤다. 기차에서 식.음료를 파는 점원이 10여 분 사이로 왔다갔다 했지만 살 수 없었다. 서툰 일본어로 식.음료를 샀다가 괜히 가격도 모르는 이상한 사람으로 오인받을까 싶어서였다.

 

차라리 굶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 속 광경을 보기 싫어 억지로 눈을 감았다. 깜빡 잠이 들었다. 얼마를 잤는 지 모르겠다. 나를 깨운 것은 역무원이었다. 그는 기차표를 보여 줄 것을 요구했다. 순간 당황했다. 기차표를 바지 주머니에 넣었는지 윗옷 주머니에 넣었는지 헷갈렸다. 이리저리 뒤적이다 겨우 기차표를 찾아 역무원에게 건넸다. 기차표를 유심히 쳐다본 역무원은 기차표에 구멍을 뚫은 후 되돌려 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속으로 `절대 자지 말고,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자`고 되뇌었다. 다섯 시간 정도 흘렀을까. 어느새 기차는 오사카역에 도착했다. 오사카역에서 다시 도쿄역으로 가는 기차표를 샀다.

 

환승하는 시간을 짬내 역 주변 가게에서 음료수와 빵 몇 개를 샀다. 마치 굶주린 사자처럼 순식간에 다 먹어 치웠다. 신세가 너무나 처량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설움이 복받쳤지만 동경에 무사히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까스로 억누를 수 있었다.

 

도쿄행 기차로 갈아탔다. 4시간이면 도쿄역에 도착한다. 기차 속에서 나는 다시 역도산을 떠올렸다. `역도산을 만날 수 있을까`, `역도산을 어떻게 찾지`. 한국에선 일본에만 가면 당장이라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으나 막상 일본에 오니 역도산은 없었다. 역도산은 내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로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 채 시간은 4시간이 흘렀고, 마침내 도쿄역에 도착했다. 혼잡한 도쿄역은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다. 역 주변 안내 표지판에 시선을 맡긴 채 두리번거렸다. 그 순간 검정색 차림의 경찰관 두 명이 다가왔다.

 

 

정병철 기자
사진=이호형 기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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